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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영화 흥행 담보하는 단골 소재 ‘남북관계’

올 하반기 극장가, 《브이아이피》 시작으로 《강철비》 《공작》 개봉 이어져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2(Sat) 18:00:00 | 14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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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미 CIA의 합작 기획으로 남한에 귀순한 자가 있다. 북한 고위급 인사, VIP다. 그런 그가 잔혹한 살인을 즐기는 소시오패스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건드릴 수 없는 그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잡아야 하는 존재라면 어떤 충돌이 일어날까. 영화 《브이아이피》는 이 같은 설정에서 출발한 누아르다. 영화는 소년 같은 얼굴의 살인 괴물을 둘러싸고 각 인물과 조직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풍경을 건조하고 차갑게 응시한다. 《신세계》(2012), 《대호》(2015)를 연출했던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자 《밀정》(2016)과 《싱글라이더》(2017)에 이어 워너브러더스가 투자·배급한 세 번째 한국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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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 VIP 둘러싼 가장 차갑고 잔혹한 누아르

 

‘기획 귀순’은 그간 남북관계를 다룬 한국영화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소재다. 극 중에서는 국정원과 CIA가 북한 내 정보를 손에 넣기 위한 필요에 의해 VIP를 만든다는 설정이다. 영화는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됐던 북한 내 정세를 모티브로 삼는다. 북에서 온 살인마 광일(이종석)은 장성택의 오른팔이자 자금책이었던 인물의 아들로 설정돼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남북한 분단 현실 상황이나 이를 둘러싼 국제 정치의 풍경을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권력관계가 요동치는 폐쇄된 독재사회 내에서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살인마가 탄생했다’는 설정 자체가 중요하다. 《브이아이피》는 이 괴물을 제어하는 시스템들이 복잡한 이해관계에 의해 꼬이고 오작동될 때 벌어지는 일들에 더 주목한다.

 

이 영화는 가장 차가운 방식의 누아르를 지향한다. 브로맨스 설정을 중심에 놓는 경향이 짙었던 최근 한국 누아르들과는 톤이 완전히 다르다. 극 중 인물들은 필요에 의해 서로 손을 맞잡거나 우정을 나누는 일이 좀체 없다. 국정원·경찰·CIA 등 각 기관의 알력 다툼과 체면 차리기 앞에서 안보는 뒷전에 놓인다. 남한 경찰 이도(김명민)와 북한에서 온 대범(박희순)은 살인마 광일을 잡겠다는 목표 하나만 좇는 이들이지만, 공조할 것 같았던 이들의 만남은 어쩐지 긴밀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각본 단계에서부터 의도적으로 등장인물들의 접점을 최소한으로 남겨둔 것이다. 모든 인물의 퇴장 역시 가차 없다. 인물들이 고민하는 과정,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느끼는 갈등 또한 결여되어 있다. 이 영화에는 행동만이 존재한다.

 

유일하게 내적 갈등을 겪는 인물은 재혁(장동건)이다. 그는 국정원 안에서 정당하지만은 않은 이유로 생존한 인물로 그려지며, 조직의 명령에 따라 광일을 비호해야 하는 처지다. 감독은 다섯 개의 장(場) 구성을 통해 인물과 이야기를 정리해 나가는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책임지는 것 역시 그다. 영화는 재혁이 어떤 일을 처리하기 위해 홍콩에서 홀로 CIA 요원 폴 그레이(피터 스토메어)를 만나러 가면서부터 시작된 터다. 그러나 그마저도 관객이 재혁에게 감정을 이입할 여지는 많지 않다. 감정적 호소로부터 의식적으로 계속 비껴가는 이 영화의 선택들은 과감하다. 바로 이 점이 감독의 전작 《신세계》(2012)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장르적 재미로만 친다면 《브이아이피》가 주는 만족감은 꽤 크다. 분단 상황 그 자체가 아닌 곳에 주목하는 색다른 시선, 다섯 개의 장을 통해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력, 인물의 감정을 차갑게 누르는 방식의 연출, 배우들의 호연과 액션의 쾌감이 더해진다. 다만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광일의 범죄 방식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여성 납치·강간·살해 과정은 스너프 필름(실제 폭력과 살인 장면을 촬영해 불법으로 유통하는 영상)을 연상시킬 정도로 잔혹한 면이 있다. 이 안에서 피해자를 인간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없다. 여성 피해자의 고통을 온전히 보여주어야만 인물의 행동에 설득력이 부여되는가. 그것만이 극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인가. 《브이아이피》는 이 같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단 《브이아이피》뿐 아니라 남북관계는 한국영화의 단골 소재다.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된 아이템이기도 하다. 《쉬리》(1999)와 《간첩 리철진》(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 등이 열렸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한반도에 옅은 화해 무드가 조성되던 이 시기에 영화들이 강조하던 것은 분단 체제라는 견고한 불행에 의해 희생당하는 개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총구를 겨눠야 하는 《쉬리》의 연인들, 남과 북의 이념을 넘어 친구가 되고 감정을 나눴지만 결국 비극을 감내해야 하는 《간첩 리철진》 속 간첩과 《공동경비구역 JSA》의 병사들. 이들을 통해 한국영화는 남북관계를 이야기할 때 체제의 책임을 묻고, 그 안의 개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뜨거운 가족주의를 통해 역사의 비극을 돌아보고 이제는 고통을 넘어서자는 것을 웅변하려는 목적이 뚜렷한 영화였다.

 

 

남북관계 소재 액션 장르, 꾸준한 소구력 지녀

 

비교적 최근으로 오면서 《고지전》(2011), 《연평해전》(2015)처럼 군사적 충돌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1991년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결성된 남북 탁구 단일팀의 실화를 다룬 《코리아》(2012) 같은 시도도 있었지만, 남북관계는 단연 첩보물의 단골 소재다. 《의형제》(2010), 《베를린》(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용의자》(2013), 《공조》(2017)는 휴먼 드라마와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와 혼합했지만, 결국 액션을 배경에 깔고 있다. 이들이 적게는 400만, 많게는 800만 가까이 관객을 모은 기록은 남북관계 소재 액션 장르가 대중 상업영화에서 꾸준히 소구력(訴求力)이 있음을 뒷받침한다.

 

《브이아이피》를 시작으로 하반기 극장가에는 남북관계 이슈를 다룬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변호인》(2013)으로 1000만 관객을 모은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는 남한의 정권 교체기가 배경이다. 이때 북한에서 쿠데타로 인해 치명상을 입은 최고 권력자가 북한 요원 엄철우와 함께 남한으로 숨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엄철우 역에는 정우성이, 한반도가 위기 상황에 빠진 것을 직감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대행 곽철우 역에는 곽도원이 캐스팅됐다. 지난 6월 촬영을 마쳤으며,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윤종빈 감독의 《공작》은 1990년대 북한 핵 개발 소재를 극의 중심에 놓았다. 핵 개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북으로 잠입한 남한의 인물이 주인공이다. 이를 둘러싸고 남북 첩보 전쟁이 벌어진다. 황정민이 북으로 간 남한 스파이를 연기하며, 조진웅·주지훈·이성민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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