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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우생순’ 주인공 핸드볼 임오경 “난 두 얼굴의 지도자”

여성 감독이라는 편견과 싸우는 임오경의 돌연변이 인생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2(Sat) 14:00:00 | 14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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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핸드볼의 살아 있는 전설로 꼽히는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46).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국가대표로 뽑힌 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감동의 은메달을 획득하며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을 탄생시키는 등 성공한 핸드볼 선수의 삶을 완성해 냈다(2000년 시드니올림픽은 임신으로 출전하지 못했는데 한국대표팀은 4위를 기록했다).

 

임오경은 1994년 한체대 졸업과 동시에 일본 히로시마 이즈미(현 메이플 레즈)에 입단해 2부 리그에 있던 팀을 1년 만에 1부 리그로 올려놓았고, 만 25세의 나이인 1996년 플레잉 감독 자리에 올랐다. 취임 첫해 우승을 거머쥐면서 히로시마팀에 8번의 우승을 안겼다. 2008년 7월 여성 최초로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창단 감독으로 부임했고, 부임한 지 8년 만인 지난 시즌 인천시청을 누르고 정상의 자리에 오르며 감독상을 수상했다(구기 종목에서 여성 감독으로는 최초의 우승). 올 시즌에도 SK 슈가글라이더즈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었지만 1승2패를 당하는 바람에 2년 연속 정상 탈환에는 실패했다. 

 

여성 감독의 롤 모델로 자리한 임오경 감독을 8월24일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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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2일 벌어진 2017 SK핸드볼 코리아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은 SK 슈가글라이더즈의 승리와 함께 2승1패를 이룬 SK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3차전에선 당시 SK를 이끌었던 강경택 감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외부에는 챔프전 1차전이 열리기 전날 심판들을 만난 일로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임오경 감독도 이 일과 관련이 있다고 들었다. 

 

“이와 관련해선 정말 할 말이 많다. 지금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내 감정을 추스르고 자제한 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엔 너무 혼란스럽고 멘털 붕괴가 와서 3차전까지 어떻게 선수들을 이끌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일만 없었더라면 우리 팀이 좋은 흐름을 이끌어갔을 텐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지면서 내가 흔들렸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챔프전 1차전이 열리기 하루 전날에 강태구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겸 심판부장이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 판정을 맡은 스웨덴 출신 2명의 심판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그런데 그 식사 자리에 강경택 감독이 찾아와 인사했고 합류했다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스웨덴 심판들이 내게 얘기해 줘서 알게 됐다.”

 

스웨덴 심판들이 그 얘기를 왜 임 감독에게 전한 건가.

 

“심판들은 전날까지만 해도 강 감독의 신분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경기 당일 강 감독이 SK 슈가글라이더즈 감독이란 사실을 알게 됐고, 1차전이 시작되기 전 심판들이 날 찾아와선 전날 있었던 상황을 설명해 준 것이다. 경기를 앞두고 대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상대팀 감독이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앞두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과 함께 심판을 만났다는 게 도저히 납득이 안 되더라. 경기 전 심판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강 감독은 혼자도 아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과 함께 심판을 만난 것 아닌가. 이 문제를 대회 끝날 때까지 묻어두고 가야 하는지, 아니면 공론화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결국 그 경기는 우리가 패했다. 내가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상황에서 경기를 이끌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

 

이후 대응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다음 날 조직위원장을 찾아가서 대회 마치고 이의신청을 하겠다고 말했다. 대회 중에 이 일이 불거지면 고생했던 선수들이 피해를 볼 수 있으니 대회 마칠 때까진 조용히 있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런데 그다음 날 내가 언론에 폭로했다는 얘기가 돌면서 난리가 났다. 난 오히려 대회 끝날 때까지 조용히 안고 가자고 했는데 왜 내가 언론에 이 문제를 흘리겠나. 순간적으로 이 모든 화가 나한테 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잘못은 다른 사람들이 했는데 날 타깃으로 삼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너무 고통스러웠다. 핸드볼계에서는 나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마치 내가 우승을 위해 상대방의 잘못을 흘린 것처럼 오해했다. 그런 상황에서 3차전을 치렀으니 결과가 좋을 리 만무했다. 2년 연속 챔프전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가능성이 매우 컸음에도 외적 요인으로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한 것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핸드볼이 진짜 싫어지더라.”

 

결국 강경택 감독은 SK 감독에서 물러났다.

 

“내가 혼란스러웠던 건 3차전 당일 SK 단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감독 징계를 놓고 ‘상대팀의 장외 플레이’라고 표현한 부분이었다. 그걸 보고 눈물이 날 정도였다. 잘못은 그들이 한 건데 왜 우리한테 그 원인을 찾으려 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더라. 이 부분은 구단에서도 정식으로 사과를 요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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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은 것 같다. 챔프전에서 우승한 팀도, 패한 팀도 여운이 남긴 마찬가지라고 본다.

 

“경기인 출신들은 앞으로 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세상은 변했다. 라인 타서 올라가려 하지 말고 상대가 잘하면 존중해 주고, 노력해서 단계를 밟아 올라가야 한다. 핸드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그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면 정리하고 가는 게 맞다. 대회 기간 중에 모든 일이 알려진 건 안타깝다. 나도 원치 않았던 부분이고, 그로 인해 심적 고통이 컸다. 그러나 언젠가는 알려졌어야 할 일이었다. 지도자라면 더욱 조심하고, 더욱 세심히 살폈어야 한다. ‘클린 스포츠’는 핸드볼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서 추구하는 목표 아닌가.”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감독이란 수식어 앞에 ‘여자’ ‘여성’이란 말이 붙는다. 이 단어에 남다른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사실 가끔은 내가 여자라는 게 싫다. 여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여자라서 주목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코트에서만큼은 남녀가 아닌 감독으로만 평가받기를 원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의견을 내놓으면 여자가 말이 많다고 수군거리고, 심판 판정에 어필하면 잘난 척한다고 손가락질 받는다. 구기 종목에서 8년 넘게 잘리지 않고 한 팀을 이끄는 감독으로 갈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 아닌가. 그 점을 인정해 주는 대신 핸드볼과 관련 없는 얘기들로 날 몰아가는 게 서운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더 지독하게 준비하고 노력하고 결과를 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잘못하면 ‘여자는 안 돼’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 경기에 나가려고 한다. 이 악물고 어려운 일들을 이겨냈고 여기까지 왔다.”

 

이건 선수들한테 들은 얘기인데 임 감독은 팀을 이끄는 방식이 다른 감독과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 시즌 중에도 주말에는 외박을 허락하는 게 사실인가.

 

“난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코트에서의 모습과 코트 밖에서의 모습이 완전 다르다. 코트에선 최대한 집중해서 선수들을 가르치고, 코트 밖에선 선수들 사생활에 터치하지 않는 편이다. 선수들은 시즌 시작하면 5개월 동안 개인생활을 하지 못한다. 그 점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토요일 경기를 마치면 무조건 외박을 허락했다. 토요일 나가서 월요일 훈련 시간 전까지 들어오라고 한 것이다. 

 

한번은 경기에서 패한 날 선수들이 외박 나갈 생각을 하지 않더라. 이유를 물었더니 죄송해서 못 나가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무조건 나가라고 했다. 약속을 한 건 지켜야 한다. 외박을 주겠다고 해 놓고 경기에 졌다고 안 내보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약속도 하지 않는 게 맞다. 다른 팀들은 시즌 마치면 일주일 정도 휴가를 보냈다. 난 이 휴가를 2주일로 늘렸다. 대신 복귀할 때는 개인적으로 몸 관리 잘해서 돌아오라고 부탁했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2주일 휴가는 더 이상 줄 수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결혼한 선수들은 집에서 출퇴근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깜짝 놀라는 반응이었다. 이전에는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 숙소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선수 이전에 한 남자의 아내이고 며느리다. 그런 사적 생활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선수들도 여자이고, 여자로서 누려야 할 삶도 있는 법이다. 단, 이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걸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2주간의 휴가를 누리고, 시즌 중 외박을 감행하고, 기혼자들은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자신의 몸을 완벽히 만들 줄 알아야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무너지면 사적 영역의 존중이 조금씩 줄어드는 걸 이해시켜야 했다.”

 

구단에선 임 감독의 이런 지도 방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나.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가 그만뒀을 것이다. 감독의 지도 철학을 부정하는 구단에 내가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팀 훈련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이 숙소 밖에서 개인 훈련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선수한테는 토요일 외박이 일요일 외박으로 바뀌었다. 즉, 이틀 동안의 외박이 하루로 줄어든 셈이다. 결과에 스스로 책임지라는 의미였다. 선수들이 이런 상황을 느끼고 공감해야 한다. 그걸 가이드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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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그리 정신’을 대표했던 여자핸드볼이 지금은 국제무대에서 이전과 같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선수들의 정신력이 약해진 건 사실이다. 과거에는 운동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운동이 힘든 게 아니다. 강약 조절을 해 줘야 한다. 선수들에게 당근만이 아닌 동기 부여를 안겨주는 것도 중요하다. 난 대표팀 전력에 대해 절망보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충분히 다시 올라설 수 있다고 믿는다.”

 

혹시 대표팀 감독을 맡을 생각은 안 해 봤나.

 

“작년에 팀을 우승시키면서 협회로부터 제안을 받긴 했는데 정중히 거절했다. 태극마크를 달면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지금도 힘든데 대표팀을 맡으면 날 너무 못살게 굴 것 같아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임오경 감독은 최근 정형외과를 다녀왔다. 팀 에이스인 권한나가 슬럼프에서 탈출하게끔 도우려 3주간 운동화를 신고 권한나와 함께 훈련을 했다가 무릎 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은 것이다.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그래도 그는 권한나가 자신과 함께 훈련한 이후 슬럼프에서 완벽히 벗어난 모습을 보인 게 굉장한 감동과 보람을 안겼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강하고 책임감이 큰 감독의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사람 냄새 나는 감독이고 싶다. 그걸 선수들이 이해하고 알아주는 게 재미있다. 선수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상황이 행복하다. 내가 가르치는 선수들한테 대한민국 여자핸드볼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 아닌가. ‘왜 나와 같은 선수가 안 나오지?’라고 생각지 말고 선수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성장·발전시키는 감독이 되고 싶다.”

 

스타 선수에서 감독으로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특히 여성 감독으로 정상에 오르는 건 더더욱 어렵다. 임오경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 생활을 하는 지금도 이런 편견과 싸워왔다. 선입견을 깨고 싶어 더 악착같이 팀을 이끌었다. 독함과 부드러움을 품고 선수들을 이끌며 ‘핸드볼계의 돌연변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서울시청을 이끌며 국가대표 전·현직 선수 모임인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 사무총장과 대한체육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임 감독. 대표선수들의 권익 향상과 스포츠 발전을 위해 행정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그는 누구도 가지 못하는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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