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서 유행하는 ‘무자극’ 콘텐츠
  • 김예린 인턴기자 (yerinwriter@naver.com)
  • 승인 2017.08.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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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세지는 자극적인 콘텐츠에 피로감…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과 행복감 느껴

 

최근 젊은 층에서 저(低)자극주의가 유행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TV 프로그램, 기사 등에 선정적이고 과장된 표현이 많아지면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저자극 콘텐츠가 주목을 받고 있다. 자극에 재미를 느꼈던 청년들이 과장과 왜곡, 약자혐오 등 점점 세지는 자극에 피로감을 느끼면서 일상적이고 소소한 콘텐츠를 찾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에서는 에이에스엠아르(AS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

se·자율감각 쾌락반응) 콘텐츠를 전문 제작하는 채널 ‘데이나 에이에스엠아르’와 ‘미니유 에이에스엠아르’의 구독자 수가 30만~40만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ASMR은 속삭이듯 작고 반복적인 소리로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이다. 비와 바람 같은 자연 소리부터 글 쓰는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 등 일상의 흔한 소리들이 힐링의 소재가 된다. 이런 경향은 시각적으로도 나타난다.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tvN 《삼시세끼》와 《섬총사》, JTBC 《효리네민박》 등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아예 저자극 콘텐츠만 다루는 페이지도 생겨났다. 일상 속 사소한 장면들을 피사체로 담아내는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가 인기를 끌고 있다.

 

소 카테고리 ‘정신 건강 서비스’로 분류되는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 페이스북 페이지 © 시사저널 미술팀

 

‘무자극’에 반응하는 청년들

 

“자극으로 가득 찬 우리들의 페이스북 뉴스피드. 이 페이지를 통해 조금이라도 무자극의 여유를 느끼시길 바랍니다.”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 페이지에 대한 운영자의 소개 글이다. 카테고리 ‘정신건강서비스’로 분류되는 이 페이지는 일상의 사소함에 주목한다. 얼마 전 갔던 카페 벽면, 문고리, 뼈다귀해장국집의 앞접시, 지하철 구석 자리 등 평소 생각 없이 지나치는 장면과 물건들을 찍어 올린다. 감정과 의견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보정은 하지 않고 사진 설명에도 형용사 사용을 자제한다

 

사진만 올리는 게 아니다. 독자들의 댓글에 답변하고 매주 100~200개씩 들어오는 제보 사진을 정리해 게시한다. 연구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팔로워들 반응을 분석한 ‘무(無) 리포트’도 낸다. 반응은 뜨겁다. 지난 6월말 개설됐는데 2개월 만에 2만3549명이 팔로우하고 있다. 팔로워들은 대부분 SNS를 많이 접하는 20대다. 이들은 페이지에 4.9점(5점 만점)의 높은 평점을 주고 리뷰를 달며 페이지가 가진 참신함과 소소함에 주목했다.

 

이 페이지를 만든 운영자의 의도는 뭘까. “자신의 개인적인 부분과 연관되면 페이지의 의도가 훼손될 수 있다”며 익명을 요구한 운영자를 8월22일 직접 만났다. 20대 후반의 남성인 그는 평소 페이스북을 즐겨 찾는다고 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페이스북에 ‘낚시성 제목’의 기사들과 과장·왜곡된 게시물, 광고 등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걸 보면서 문제의식을 느꼈다. “덜 자극적인 일상 속 장면들을 게시해 자극적인 콘텐츠로 가득한 뉴스피드의 균형을 맞추고 싶었다.” 뉴스피드를 내리다가 덜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면서 잠깐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운영자의 의도는 통했다. 게시물마다 1000개 이상의 ‘좋아요’와 1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지하철 구석 자리의 사진을 올린 게시물에는 3000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다. 대부분 편안함을 느낀다는 반응이다. 페이지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애독했다는 직장인 김보성씨(남·26)는 “다른 콘텐츠들은 더 자극적인 요소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두려 했다면 여기는 자극을 지양해 주목을 끌고 편안함을 준다”면서 운영자의 의도에 공감했다. 독일에서 유학 중인 대학생 김현씨(남·25)도 “과장이나 욕, 자극적인 표현 없이 일상 언어로 일상을 표현한 게 좋았다. 온라인 게시물 댓글을 보면 편 나눠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갈등을 조장하지 않고 잠시나마 웃음을 줘 편안하다”고 밝혔다.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다는 이들도 있다. 운영자에 따르면, 유럽 여행 중인 한 팔로워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 페이지를 보니 한국에서 찍어 올리는 일상적인 사진도 의미가 있는데,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있는 나는 그걸 못 보고 지나쳤다는 걸 깨달았다. 유럽의 거리가 새롭게 보인다”는 글을 올렸다. 김현씨도 “항상 피로를 느끼며 사는 우리가 잠시 일상을 둘러보게끔 만든다. 일·학업으로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그 사이의 여유를 멀리서가 아닌 일상에서 찾게 된다”고 했다.

 

누구나 공감하는 건 아니다. 반박하는 이들도 많다. “의자시트의 때가 자극적이다” “빨간색 불빛이 자극적이다” 등 비판적인 댓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자극’이라는 게 존재하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운영자는 이에 “무자극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자극이라기보다는 피로감을 유발하지 않는 편안한 자극이란 뜻”이라고 답했다. 그는 “의도에 100% 공감하는 분들은 많지 않을 수 있다. 가끔가다 ‘이런 게 있었네’ ‘편안해지네’라고 생각해 주시면 성공이라고 보는데 그런 분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꾸준히 게시물을 올려서 나중에 사진첩을 내는 게 목표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피상적·수동적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서 벗어나 잠깐 쉬어가셨으면 좋겠다.”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오는 게시물들


 

아날로그적 감수성에 대한 갈망

 

그렇다면 젊은 층에서 저자극주의 문화가 유행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엽기나 공포, 선정성, 폭력성 등 자극적인 콘텐츠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면서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에 자극에서 탈피하려는 욕구가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빌딩에 시선을 빼앗기다가도 고즈넉한 자연 풍경을 보면 편안해지는 것처럼 자극을 피했을 때 여유와 힐링을 느낀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또 “SNS로 타인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면서 얻는 박탈감이 심한 사회다. 화려하게 꾸며지거나 가공된 것보다 평범한 콘텐츠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에 대한 갈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문명의 급속 발전으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 나온다. SNS도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려는 하나의 흐름으로서 이 속에서 혼란과 피로를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위한 니치마켓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곽 교수는 이러한 경향을 긍정적으로 봤다. 그는 “물질적이고 외향적인 것이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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