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고동넷을 아십니까?”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4 18:16
  • 호수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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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넷 유사 사이트 증가 추세…“디지털 성범죄 퇴치해야”

 

고동넷이라고 있다. 여성들 사이에 은밀히 회자되는 이 사이트에는 성행위 중인 남성들을 찍은 동영상과 남자용 공중화장실에 설치한 몰래카메라(몰카) 동영상들이 올라온다. 남자들이 모르는 비밀은, 남자들도 몰카에 찍힌다는 사실이다. 요즘 같은 스마트폰 시대를 남자라고 피해 가지는 못한다. 가장 많이 올라오는 동영상은 ‘거시기 엑스포’라고 해 헤어진 남자친구의 섹스 동영상을 폭로해 망신을 주는 것들이다. 이런 동영상이 폭로될 때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 세간의 통념은, 조롱하고 모욕하는 악성댓글에 시달리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면서 틀린 것으로 증명됐다. 이 고동넷은, 출연자의 신원이 쉽게 파악되고 협박용으로 사용될 우려가 매우 크다는 이유로 쉽사리 단속 대상이 됐고, 사이트가 폐쇄되고 운영자가 처벌되는 일을 여러 차례 당한 끝에 지금은 해외로 서버를 옮겨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잠깐, 고동넷이라고? 처음 들어보는데? 당연하다. 그런 사이트는 없으니까. 위 이야기는 상상해 본 것에 불과하다. 고동넷이란 말은 소라넷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았던 일부에서 대체용어로 쓰거나,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패러디한 적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소라넷을 들어본 분은 많을 줄 안다. 한때 사용자 수가 100만 명에 달했다는 얘기도 있을 만큼 성업을 한 음란물 사이트다. 이 사이트에는 흔히 말하는 ‘국산야동’이 마구잡이로 올라왔는데, 어느 날 이 소위 ‘국산야동’ 중 일부에 이름이 붙었다. ‘리벤지 포르노’. 복수를 위한 포르노라는 말이 된다. 헤어진 연인과의 섹스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상대 모르게 올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사이트의 범죄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소라넷은 결국 폐쇄됐지만, 이와 유사한 사이트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피해를 입은 여성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모 탤런트가 교제하던 남자와 헤어지게 되자 그 남자가 성관계 동영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한 일이 알려지면서, 이런 범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유포된 동영상을 삭제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한 일도 있다. 그러나 동영상이 퍼지는 속도에 비해 삭제하는 속도가 느리고, 한계가 있다. 여성가족부의 조치는 당장 물에 빠진 사람에게 구명조끼를 주는 일이기는 해도 근절책이 되지 못한다.

 

성폭력이 성관계가 아니듯, 이런 동영상도 ‘야동’ 또는 ‘포르노’가 아니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이름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이름을 바로 부르는 데서부터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생겨나므로, ‘리벤지 포르노’가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라고 제대로 부르기로 하자.

 

© 일러스트 정재환

 

‘리벤지 포르노’가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

 

포르노는 포르노그래피의 줄인 말로, 사전적 정의는 매우 단순해서 ‘인간의 성적(性的) 행위를 묘사한 소설, 영화, 사진, 그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네이버 어학사전)이다. 그러나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면 포르노란, 차마 내놓고 말하거나 보이기 어려운 것을 말한다. 때문에 사회의 자유로움의 정도를 포르노 허용의 정도로 설명하는 담론도 있고, 성의 해방이 인간 해방의 최종단계라고 말하는 담론도 있다.

 

그러나, 소위 리벤지 포르노는, 가장 초보적인 차원에서조차 포르노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즉, 소설, 영화, 사진, 그림을 줄여서 말하는 ‘창작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표현의 자유니 검열 거부니 하는 말과 붙어 다닐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개인적 기념이라는 차원에서 비록 촬영에 가담하거나 협조했다 하더라도, 이를 공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를 디지털 성범죄라 불러야만 이런 행위가 얼마나 큰 범죄인가를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다. 이를 공개하는 일, 공개된 동영상을 보는 일, 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 등 이런 동영상과 관련된 매 단계의 행위가 모두 범죄를 구성한다. 자신이 찍힌 동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들 중 상당수가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도 있다. 일종의 직·간접 살인인 셈이다. 나도 그렇게 유포되는 동영상 중 하나를 친구의 카카오톡(카톡)에서 얼핏 본 일이 있다. 한 독신 중년여성을 찍은 것인데, 그 등장인물의 결혼한 딸이 문제의 동영상을 시댁어른들이 보게 되면서 자살했다는 처절한 소식과 함께였다. 도대체 왜 이런 영상이 카톡으로 돌아다닌다는 말인가. 그것도 비극적 결말까지 전달하면서. 친구와 나는 남의 일이라고 재미로 퍼뜨리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고동넷으로 돌아가 보자. 소라넷 유의 디지털 성범죄 사이트에 대한 방어로 고동넷을 만드는 일은 왜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고동넷이 불법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어떤 긍정적 효과도 얻을 수 없고, 소위 미러링을 하기엔 사안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사적이며 고통스러운 작업이고, 전혀 페미니즘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주로 남성 사용자들이 이용하는 소라넷은, 그리고 그 유사 사이트들은 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소라넷의 문제는, 음란물 또는 포르노에 대한 극도로 저급한 인식으로부터 발생한다. 남들의 사생활에 해당하는 성행위를 보는 것이 과연 즐거운 일일까? 리벤지물뿐 아니라 강간, 스와핑, 기타 범죄적인 행위들을 성적 자극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심리적인 질병일 뿐 아니라 그 당사자의 성적 불능을 초래하는 육체적 질병이기도 하다. 이러한 병적 인간들이 늘어나는 일은 사회 자체의 불건강과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분노할 일이 아니라 국가질병관리본부가 다뤄야 할 병리적 현상이다.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다뤄야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피해자가 주로 여성이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이 극도로 더디다는 점.

 

 

‘디지털 성범죄 처벌법’ 빨리 만들어야

 

진선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른바, 리벤지 포르노 처벌법)은, 발의된 지 1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여전히 위원회 심사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이 법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피해 정도에 비해 처벌이 미약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아직 통과도 안 된 법이지만, 뜻있는 의원들이 힘을 합쳐 법률 재개정에 나서 주시기 바란다. 근본적으로 당사자 동의 없이 유포된 모든 동영상은 운영자가 발견 즉시 삭제하고, 사이트 운영자와 유포자 및 악성 소비자를 모두 처벌하도록 하며 자신이 유포한 횟수에 비례해 처벌의 강도를 높이며, 삭제에 드는 비용을 유포자가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법률을 번개의 속도로 만들어주시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이름을 바꿔주시기 바란다. 리벤지 포르노 처벌법이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 처벌법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접하게 된 모든 분께 당부한다. 당신이 피해자에 대해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당신을 가해자로 만든다. 찍힌 피해자가 수치스러운 게 아니라 문제의식 없이 보는 사람이 수치스럽다. 당신 주변에 그런 동영상을 유포하거나 보았다고 소곤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그 당당함을 위해 페미니즘이 이렇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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