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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시론] 노인 한 분을 돌보려 해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5(Fri) 12:00:00 | 1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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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일찍 시작된 폭염 탓인가, 한여름을 지나는 동안 정정하던 마을 어른 서너 분이 돌아가셨다. 이장님은 그때마다 마을 확성기를 통해 부고(訃告)를 알려주셨다.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해마다 고추·들깨·가지 농사 알뜰히 지으시던 자그마한 할머니 모습이 어른거렸고, 부인 앞세우신 후 술로 외로움을 달래시다 반 년 만에 부인 곁으로 가신 할아버지의 야윈 모습도 눈에 선해 왔다.

 

우리 집 농장이 있는 시골 마을 어귀엔 앞마당과 뒷마당에 심어놓은 대추나무·감나무가 참으로 멋들어진 집이 있다. 그 집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신데, 마을 분들이 전해 준 이야기로는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후, 온갖 궂은일 마다 않으며 아들 둘, 딸 하나를 남부럽지 않게 거두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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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도시로 나간 아들딸들이 서로 모시겠다는데도 “사지(四肢) 멀쩡하고 건강하니 내 몸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일 나갈란다”고 고집 부리시며, 올봄까지도 부지런히 인근의 인삼밭이나 복숭아 농장에 나가시곤 했다. 아들딸 모두 제 앞가림을 하고 손자손녀들 건강하게 커가는 모습 보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시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본 것이 불과 석 달 전이었다.

 

농사짓는 솜씨도 전문가급(?)이라, 감나무·대추나무 적시에 가지 쳐주고 때맞춰 약 쳐주고 열매 솎아주는 덕분에 마을에서 가장 탐스러운 열매를 듬뿍 수확하시곤 했었는데, 지난달 중순경부터 할머니 모습이 통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폭염을 피해 집에서 쉬시려니 했는데 낌새가 이상해 이웃 할머님께 여쭤봤다. “쯧쯧쯧, 급성 치매가 와서 딸하고 사위가 모셔갔어” 하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래도 서로 문 열어놓고 사는 농촌 마을에선 어느 분이 돌아가셨는지도 알게 되고, 옆집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있는 시골 동네에선 누가 편찮으신지 귀동냥이라도 하게 되니,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현관문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웃과 단절되는 도시생활에선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운 일 아닌가.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어쩌면 한 어르신을 (성심껏) 보살피려 해도 온 마을이 필요할 것 같다.

 

서구에서 산업화 및 도시화와 더불어 부부 중심 핵가족이 출현하게 되자 당시 전문가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가족의 중심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성인기 부부로 이동할 경우, 가족 내 약자로서 돌봄을 받아야 할 어린이와 노인들이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뿐만 아니라 ‘사회=약육강식의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무대’요, ‘가족=무자비한 세상 속의 천국(haven in a heartless world)’으로 이분화될 경우, 가족의 돌봄 기능은 오히려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리란 예측도 있었다. 당시의 우려가 오늘의 현실이 됐고 예상했던 돌봄의 위기가 날로 심화되고 있음을 그 누가 부인하랴.

 

가족은 이웃을 향해 활짝 열려 있을 때 건강하게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고, 활용 가능한 친족 관계망이나 사회적 네트워크를 풍성하게 갖추고 있을 때 문제 해결 및 위기 대처 능력이 높아질 수 있음을 기억할 일이다. 더더욱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유년기·청년기를 지나 성인기·노년기를 거쳐가는 법이기에, 세대와 세대 사이엔 필히 ‘돌봄의 순환(care circulation)’이 이뤄져야 함 또한 명심할 일이다.

 

할머니·할아버지는 모두의 미래 모습일진대, 이제부터라도 우리 동네 우리 이웃의 할머니·할아버지께서는 누구랑 살고 계신지, 손자손녀는 몇을 두셨는지, 혹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는지, 관심을 기울여봄은 작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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