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 파묘 유력하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2 17:47
  • 호수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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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후손 보훈연금 중지…공적심사서류 면밀하게 조사 중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는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묘지번호 181번)에 대한 서훈 취소가 유력하다. 김씨에게 수여했던 훈장이 취소되면 파묘(破墓) 등의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은 제1350호(2015년 8월27일자)에서 가짜 김정수의 실체를 자세하게 고발했다. 그 후 국가보훈처는 문제를 인지하고 김정수 후손에게 지급하던 보훈연금을 정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훈처 공훈발굴과 관계자는 “일단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2015년부터 연금과 예우를 정지시켰다. (김정수) 후손에게 소명자료를 요청해 받은 후 지난해 공적심사위원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공심위는 김정수가 제출한 공적서류를 면밀히 검토하고, 진위여부를 확인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공심위는 총 11명의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그 뒤 보훈처는 김정수의 항일투쟁 활동을 인정해 훈장을 수여할 당시의 근거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기가 막힌 것은 김정수의 포상근거 중 하나였던 ‘가출옥 서류 455호’를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정수가 훈장을 받았을 당시 독립운동가 공적심사는 국사편찬위원회가 맡았었다. 1977년부터 보훈처의 전신인 원호처로 이관됐다.

 

그런데 김정수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던 서류가 소재파악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공적을 심사할 때의 회의록 등이 남아 있지도 않다. 때문에 ‘가출옥 서류 445호’의 사실 근거를 확인할 길이 없다. 정부의 독립운동가 공적심사나 서류관리가 얼마나 허술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애국지사 김진성 선생의 아들 김세걸씨가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파묘를 촉구하고 있다. © 사진=정락인 제공

 

차고 넘치는 가짜 김정수의 기록 

 

그러나 김정수가 가짜라는 근거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훈처에 따르면, 김정수가 공적서류를 낼 때 인우보증서 7통을 함께 제출했다. 김씨의 독립운동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증명하는 서류다.

 

보훈처는 이것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김정수의 필적과 대조해 봤다. 그랬더니 7통 중 2통이 김정수의 필체와 동일한 것으로 나왔다. 즉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한 후 자신이 써서 제출했다는 의미다. 나머지 5통의 신뢰성도 의심이 가는 상황이다. 김정수와 김정범 선생이 동일인인지 지문도 대조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일제강점기에 남아 있던 김정범 선생의 지문 원본과 해방 후 채취한 김정수의 지문을 대조해 봤으나 다른 사람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김정수의 공훈록을 보면 그의 독립운동 기록은 ‘1933년 2월8일자’ 동아일보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김정범 선생의 공훈록에도 이와 같이 동일하게 기록돼 있다. 기자가 당시 동아일보 기록을 확인해 보니 제목이 ‘참의부원 김정범 공판’으로 돼 있었다. 김정범 선생이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재판에 넘어가 검사가 징역 10년을 구형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에서 주목할 점은 ‘김정수’라는 이름이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판은 실명으로 하기 때문에 ‘김정수’를 ‘김정범’으로 잘못 적은 것도 아니다. 즉 같은 신문기사를 독립운동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은 김정수가 아니라 김정범 선생의 공판 내용이며, 김정수가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앞서 나온 동아일보 1932년 10월1일자 관련 기사에도 ‘김정범 선생’의 실명으로 독립운동하다 체포됐다고 나와 있다. ‘김정수’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그가 이명(異名·다른 이름)으로 활동했다면 재판기록 등에는 기록돼 있어야 하지만,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

 

김정수는 또 다른 가짜 독립운동가 ‘김진성’과도 연결된다. 보훈처는 1998년 애국지사 묘역에 있던 ‘가짜 김진성’을 파묘한 후 그 자리에 진짜 애국지사인 ‘김진성 선생’을 안장했다. 가짜 김진성은 진짜 김진성 선생의 공적을 가로채 30년 동안이나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돼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짜 김진성(1913년생)이 김정수(1909년생)의 동생이었다는 사실이다.

 

김정수와 김정범 선생의 공훈록에 같은 공적으로 올라 있는 동아일보 1933년 2월8일자 기사. 김정수(왼쪽)와 김정범 선생의 실물 사진. © 사진=정락인 제공

 

3대 5명 중 2명이 가짜

 

이에 대한 근거는 김정수 묘비 뒤에 있는 직계 후손들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김득봉’ ‘김현종’ ‘김득룡’이 아들로 올라가 있는데, 가짜 김진성의 묘비에는 조카로 나와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정수 일가는 ‘3대 5명’이 독립운동가로 올라 있다. 이 중 김진성은 파묘됐다. 김정수도 가짜가 확실하다. 그러니까 독립운동가 공훈록에 올라 있는 5명 중 2명이 가짜였던 것이다. 여러 근거를 종합하면 김정수의 할아버지 김낙용(1860~1905년), 아버지 김관보(1882~1924년), 큰아버지 김병식(1880~미상) 또한 가짜 독립운동가일 확률이 높다.

 

김정수가 가짜라면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 부친의 독립운동 사실도 거짓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들 일가가 조직적으로 신분세탁을 해서 ‘독립운동가’로 둔갑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중국과 한국의 외교관계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김진성 선생의 경우 18살의 나이에 만주 지역 독립군 체포에 앞장선 일본 밀정을 처단했고, 1934년 일제 경찰에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48년 광복 때까지 꼬박 11년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 후 김진성 선생은 중국 심양에서 머물다 6·25전쟁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1961년 타계했다. 당시 한·중 사이에는 국교가 없어서 선생은 물론 자손들도 한국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7년 후인 1968년 ‘김재원’이라는 여자가 나타나 아버지인 ‘가짜 김진성’을 내세워 독립유공자로 지정해 줄 것을 요구해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고 현충원에 안장됐다. 이렇게 해서 감쪽같이 가짜가 진짜로 둔갑했다.

 

그러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고 양국 간 왕래가 시작된다. 1993년 9월 김진성 선생의 장남 김세걸씨(70)가 귀국해 보훈처에 부친의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가짜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미 누군가 부친의 공적을 가로채 훈장을 받아갔던 것이다. 그게 바로 ‘가짜 김진성’이었다.

 

대개 가짜는 호적을 위변조한 후 실제 인물과 똑같거나 혹은 비슷하게 만든 후 여기에 애국지사의 항일투쟁 공적을 가로채 독립유공자로 둔갑하는데, 가짜 김진성도 이와 비슷한 수법을 사용했다. 중국이나 북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이나 후손들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 가짜 김정수가 공적을 가로챈 김정범 선생 또한 중국에서 활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가짜 김진성의 묘를 파묘하고 진짜 김진성 선생의 유해를 봉환하고 있다. © 사진=김세걸씨 제공

 

애국지사 후손 울린 보훈처의 직무유기

 

정부는 독립운동가 후손에게는 매달 보훈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정수의 경우 본인과 승계자인 아내가 사망했기 때문에 아들에게 승계됐다. 매달 200만원이 넘는 독립유공자 보훈연금이 꼬박꼬박 통장으로 입금된다. 연간으로 따지면 2400만원이 넘는다. 

독립유공자로 등록된 1968년부터 연금지급이 정지된 2015년까지 47년 동안 받았는데, 화폐 가치를 감안해 단순 계산해도 10억원이 훨씬 넘는다. 여기에다 취업, 교육, 공공시설과 의료 등 각종 혜택을 받고 있다. 가짜 김진성의 후손도 30년 동안 보훈연금을 받았다.

 

문제는 가짜 독립운동가로 판명돼도 자진 반납하기 전에는 ‘훈장’의 강제회수가 안 된다. 이미 지급된 보훈연금도 자진 반납하지 않는 한 소급해서 회수할 방법이 없다. 파묘도 강제성이 없다. 보훈처 관계자는 “가짜로 판명돼도 파묘를 강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가짜 후손들에게 묘를 이장해 달라고 사정해야 할 판인 것이다. 진짜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가로챈 범죄행위인데도 처벌할 법적 근거도 마땅치 않다. 때문에 가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가짜로 판명돼도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다. 그래서 ‘독립운동가 장사’라는 말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보훈처의 직무유기다. 김정수가 가짜라고 처음 고발한 것은 김진성 선생의 장남 김세걸씨다. 1998년 우연히 김정수의 묘비 뒤를 봤더니 가짜 김진성의 조카들이 ‘아들’로 올라가 있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추적에 나섰다. 김세걸씨는 “국가유공자 공훈록에 올라 있는 김정수의 공적을 보니 ‘정범’이라는 이명으로 활동했다고 나와 있었다. 그때서야 김정수가 김정범 선생의 공훈을 가로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세걸씨는 지속적으로 보훈처에 민원을 넣거나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김정수’가 가짜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보훈처는 그때마다 ‘검토 중’이라며 오히려 짜증을 내거나 무시로 일관했다. 만약 김세걸씨가 최초 의혹을 제기했을 때 조사하고 조치를 취했다면 17년 동안 연금이 지급되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결국 보훈처의 직무유기와 늑장 대응으로 인해 아까운 혈세만 가짜 후손들에게 흘러갔다.

 

김세걸씨는 중국의 최고 엘리트 계층에 있었다. 베이징대학 의대를 나와 1970년부터 귀국 직전인 1997년까지 중국인민해방군 육군병원 주임의사(대령)로 복무했다. 그는 한국 국적 취득을 위해 연금 등 모든 혜택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모친과 5형제 그리고 딸린 식구 16명은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순차적으로 영구 귀국했다.

 

그러나 이들은 너무도 힘든 삶을 살고 있다. 김진성 선생의 미망인이자 김세걸씨 모친(90)은 보훈처로부터 임대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았을 뿐이고, 김세걸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고 있다. 김세걸씨가 사는 집의 월세는 모친이 받는 보훈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고국에서 살겠다고 보장된 삶과 혜택을 포기한 후 한국 땅을 밟았지만 남은 것은 하루하루의 힘든 삶이다. 김세걸씨 부부는 생계를 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에 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가짜 독립운동가를 찾아 시정해 달라고 했지만, 보훈처의 나 몰라라 행정에 크게 상처받았다고 한다.

 

그는 “당장 가짜 김정수의 독립유공자 자격을 박탈하고, 지금까지 받아간 보훈연금을 국고에 회수해야 한다”며 “파묘뿐 아니라 일가족들의 ‘독립운동가 사기’를 철저하게 조사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보훈처는 올해 안으로 김정수와 관련한 자료를 샅샅이 찾아서 진위 여부를 대조하거나 파악한 후 공심위를 거쳐 가짜로 판명되면 서훈 취소와 파묘 등의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가짜 독립운동가의 서훈 취소와 파묘는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역사 바로 세우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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