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공급량 급감…추석 앞두고 소비자물가 ‘비상’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1 10:41
  • 호수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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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달걀 사태 일파만파 식품 산업 전반으로 확산 우려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에 닭과 달걀의 수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더니 이번에는 살충제 달걀 사태가 터졌다. 특히 살충제 달걀 사태의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연간 달걀 소비량은 268개에 이른다.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달걀이 들어가는 음식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빵과 과자는 물론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에 빠질 수 없는 전(煎) 역시 달걀이 들어간다. 살충제 달걀 사태로 달걀 판매가 중단되면서 제빵·제과·요식 업체 등 영세 자영업자는 물론 소비자물가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게 됐다.

 

8월18일 농협하나로마트 서울 양재점에서 한 시민이 정부의 검사결과 적합판정을 받은 계란을 고르고 있다(위). 반면 같은 매장 내의 아직 정부 검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계란 판매대는 계란이 치워져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영세 제빵업체 “매출 절반으로 줄어”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금지된 농약인 피프로닐이 검출된 농장의 계란을 사용한 가공식품은 전량 수거해 폐기하기로 당·정·청 회의에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계란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제품의 경우 원가 상승에 따른 연쇄 가격 인상이 우려되고 있다. 과자와 빵 등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경우 ‘액란(껍데기를 깬 형태)’을 72시간 안에 쓰도록 돼 있어 오래된 달걀을 사용할 수 없고 신선도 문제로 수입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대형 업체의 경우 생산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달걀 수급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지만 살충제 달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생산 중단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영세업체들이다. 영세 제과점은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살충제 달걀 사태 이후 매출이 절반가량 떨어졌다. 빵집을 찾는 소비자 수는 그 이상으로 떨어진 것 같다”면서 “살충제 달걀 사태가 장기화하면 달걀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을 텐데, 재료값까지 오르면 버텨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달걀 포비아가 확산되면서 SNS 등을 통해 달걀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인증샷을 올리는 영세 제빵업체들도 늘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위원회가 발급한 ‘식용란 살충제 검사 증명서’를 올리거나, 달걀 공급처의 소재지 등을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제빵업체와 마찬가지로 요식업체들도 매출 급감에 울상을 짓고 있다. 달걀을 빼도 상관없는 메뉴는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전이나 오믈렛 등 달걀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제품의 경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다. 달걀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요식업체의 경우 “살충제 달걀을 쓰지 않는다”는 팻말을 내걸고 있지만 돌아선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단체급식 역시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싼 가격 때문에 대부분의 메뉴에 달걀이 들어가는데 이번 사태로 달걀을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특히 무료급식소는 한정된 단가 때문에 달걀 대체품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달걀 대신 두부 등으로 대체하고 있지만 살충제 달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무료급식량을 줄여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살충제 달걀 사태는 추석이 다가오면서 전체 물가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AI가 발생하면서 산란계가 대거 살처분됐다. 당시 공급 부족으로 달걀 가격은 한 판에 1만원대까지 폭등하기도 했다. AI 발생 전, 하루 평균 계란 공급량은 약 4300만 개였지만 지금은 70% 수준인 3000만 개 정도만 공급되고 있다. 공급량이 급감하면서 달걀 값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달걀 가격은 지난해와 비교해 약 40% 높게 형성된 상황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 공급량이 대폭 줄면서 대형 제빵업체가 일부 품목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 사진=연합뉴스

 

추석 앞두고 1만원 넘는 ‘금란(金卵)’ 나올까

 

이번 살충제 달걀 사태가 터지면서 공급량은 더욱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소비량도 줄어들면서 가격 폭등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의 계란 매출은 살충제 달걀 사태가 터지기 전보다 많게는 40% 감소했다. 문제는 추석이다. 김현수 농식품부 차관은 “당장은 달걀 수급에 문제가 없지만 추석을 앞두고는 1억 개 정도의 달걀이 필요하다”면서 “현재는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떨어지고 있는데 어느 것이 더 크게 감소하는지 하루에 두 번씩 모니터링하고 있다. 달걀을 수입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급량이 떨어진 만큼 소비량이 줄어들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던 달걀 가격이 추석을 맞아 소비량이 늘면서 폭등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7~8월 여름철에는 더위로 인해 닭들이 달걀을 평소보다 적게 낳는다. 일각에서는 AI 사태 당시를 넘어서는 1만원 이상의 금란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달걀 가격은 다른 소비자 물가지수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1.87% 올랐는데, 이 중 달걀 가격은 물가 상승에 0.14%포인트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과 폭우, 태풍 등 여름철 날씨는 다른 농수산식품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의 7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7월 신선식품지수는 12.3%나 폭등했다. 신선채소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3%, 신선과실은 20.0% 상승했다. 이 중 달걀은 약 65%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배추, 무, 감자, 파 등의 농산물 역시 20~90% 상승폭을 보였다.

 

“○○○통닭 먹고 살충제 피해를 보면 1억원을 보상하겠습니다.” 한 중견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가 내건 문구다. 한 분유업체에서는 “□□□□ 제품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우리 제품은 이번 살충제 달걀과는 무관함을 말씀드립니다”라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게시하고 있다. 이는 살충제 달걀 사태의 파장이 국내 식품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살충제 달걀 사태가 조기에 진화되지 않는다면 피해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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