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지휘부, 감찰 통해 내부 비판자 입막음”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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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경찰 대토론회 개최...“인격적 대우 받지 못하고 기계의 부속품으로 대접받고 있는 경찰”

“2017년 4월14일 인천남부경찰서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표정목 경장은 파면을 당했다. 파면의 사유는 지난 3년 동안 11번 지시 사항을 위반하거나 거부해 국가공무원으로서의 성실의무, 복종의무 및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징계의 발단은 표 경관이 페이스북에 경찰서장 등 경찰지휘부의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과도한 실적 경쟁 지시, 비민주적 조직 문화 등을 비판한 것이었다. 경찰청 감찰은 3년간의 표 경관 행적에 대해 먼지털이식 표적감찰을 통해 표 경관의 업무 처리과정에서 발생한 사소한 의견대립 등을 문제 삼아 파면이라는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렸다.”

8월19일 대전 효문화마을 대강당에서 개최된 ‘시민과 경찰의 인권개선을 위한 전국 경찰 대토론회’에서는 반인권적 경찰 내부조직 문화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토론회에 모인 150여명의 전국 일선 경찰관과 일반직 공무원들은 “인권 침해적 실적중심의 활동과 평가에 대해 경찰 내부에선 반성의 목소리가 있지만 매번 경찰 지휘부는 감찰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개인들을 징계로 입막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인권센터(소장 장신중)는 지난해 12월 '정윤회 문건' 유출 당사자로 지목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경락 사건의 진상을 밝혀 달라며 박영수 특검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 연합뉴스

  

‘인권경찰 실현 방안 : 경찰 노조의 설립 허용’에 대해 발표한 양영진 경정(진주경찰서)은 “표 경관의 파면 사례는 경찰 조직 내 소통창구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표 경관의 명목상 주된 징계사유는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복종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면서 “그러나 징계에 이르게 된 경위와 과정을 살펴보면 경찰 조직 내의 지나친 실적경쟁, 권위적 조직문화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는 점이 징계의 발단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주변 동료들의 억울한 죽음 보고도 침묵을 강요받는 경찰”


표 경관뿐만 아니다. 경찰 수뇌부가 경찰 내부 조직 문화에 비판적인 조직원들을 파면해 왔다는 의혹은 예전부터 이어져 왔다. 지난 2001년 권위주의적 경찰서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한 경찰관이 파면 당했다. 당시 차재복 경사는 과도한 징계라며 반발했다. 차 경사는 직장협의회 도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결국 차 경사는 파면됐다. 이밖에 경찰의 성과주의와 실적주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2009년에는 박윤근 경사가, 2010년에는 채수창 총경이 파면됐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대법원 판결을 통해 복직했다.

 

토론회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사례가 연이어 발표됐다.


#1. 2017년 5월18일 중앙경찰학교에서 근무하던 김학무 경감은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김 경관이 기관장과 주변인들의 부적절한 처신 문제 등에 대해 SNS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법령상 근거도 없는 1개월의 대기발령과 감찰조사를 통해 감봉 2개월의 징계를 한 후 타 지방청으로 전보인사를 단행했다.

#2. 2016년 6월22일 동두천 경찰서에 근무하던 고(故) 최혜성 순경은 교통사고 후 강압적 감찰 조사에 대한 부담감으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고 최 경관은 2016년 6월21일 오전 0시40분경 경기도 동두천 한 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다 가로등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고, 당시 최 경관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29%로 처벌 미만 수치였다. 이날은 고 최 경관이 어머니와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 위한 휴가일이었지만, 해당 경찰서 감찰은 고 최 경관에게 사고 발생 당일 오전 출석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고 최 경관은 결국 이날 오전 11시 청문감사관실에서 조사를 받았고, 다음날 오후 4시쯤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고 최 경관이 강압적 감찰조사에 괴로워하다가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감찰규칙에는 조사기일 2일 전까지 출석요구서나 구두로 조사일시·피의사실 등에 대해 통보하도록 돼 있으나 해당 경찰서 감찰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3. 2014년 12월13일,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던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최경락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최 경관은 2014년 2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이던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 파견근무가 해제되면서 정보1분실에 옮겨놓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복사해 외부로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고 있었다. 고 최 경관은 14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는데, 유서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회유가 있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고 최 경관의 형은 2015년 4월14일 “억울하게 죽은 동생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며 서울지방경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는데, 경찰청은 접수 후 한 달이 지난 5월15일에야 이 사건을 지능수사대에 배당했으며 현재까지 특별한 수사진척 사항이 없어 수사가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2년 한국 고용정보원에서 759개 직종 종사자들에 대해 실시한 ‘구성원 만족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경찰관의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27점에 그쳐, 전체 571위를 기록했다.  


양 경정은 “지나친 실적경쟁을 비판했다고 파면을 당해야 하는 경찰, 단속수치 미달로 훈방대상임에도 강압적 감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경찰, 장시간 야간 노동을 하며 스스로 생명이 단축되는 근무를 해야만 하는 경찰, 주변 동료들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도 침묵을 강요받는 경찰, 이것이 현재 경찰관들의 모습이다”면서 “조직 내에서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헌법상 보장된 노동기본권도 일체 보장 받지 못하는 경찰, 경찰서장·과장의 성과연봉제를 잘 받게 하기 위한 기계의 부속품 정도로 대접받는 경찰관들이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 시민들의 인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사간원 역할 수행하도록 감찰 제도 정비 시급


경찰조직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감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찰조직의 민주적 통제방안’의 발표를 맡은 이장표 경감(청주흥덕경찰서)은 “경찰 조직의 민주화를 위한 가장 획기적인 방안은 경찰청 내 감찰 부서를 폐지하고 별도의 시민감시위원회를 두거나 경찰위원회 내에 시민감시위원회를 운영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경찰관 1인당 담당 국민은 4~500명인데 반해, 감찰 1인당 담당 경찰관 수는 1~200명에 이른다. 이와 관련해 토론회에서는 “경찰관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비논리적인 인력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감찰이 마치 검찰처럼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억지 비위 사실로 징계 후, 징계를 위한 비위 내용이 사실과 다르게 밝혀지는 경우 담당 감찰관에게 페널티를 부여하는 감찰 책임제 명문화 ▲억지 징계를 위해 허위 또는 과장 감찰보고서를 작성했을 경우 감찰관의 위법 행위 엄벌 ▲외부위원들에게 증거 열람권을 보장하는 외부징계위원들의 활동 실질화 등의 방안들이 논의됐다.

 

이 경감은 “현재 감찰들은 집단적으로 스스로 세력화 돼 현장 경찰과 대립 구도를 공고히 하고 있어 공감 받는 감찰활동을 기대할 수 없다. 현재 감찰부서에 속해있는 직원들은 계급을 막론하고 3년 이상 근무했을 경우 전원 교체해야 한다”면서 “경찰 수뇌부들의 감찰 사유화를 통제하기 위해 감찰관의 임기 보장 및 임기 제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감찰 직원들이 조선시대 사간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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