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엄마 품과 영웅(英雄)의 길, 모자멸자(母慈滅子)
  • 한가경 미즈아가행복작명연구원장·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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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경의 운세 일기예보 (3)]

 

오래전 일이었다. 절에서 자두 모종 세 포기를 구해와 집에 옮겨심었다. 그중 두 포기는 충분히 자라날 공간이 되겠다 싶은 큰 감나무 아래 심었다. 마당에 잔디를 깔아놓았기 때문에 나머지 한 포기는 더 심을 데가 없었다. 버리려니 아까웠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담벼락 쪽에 심었다. 나중에 보니 감나무 아래 심은 두 포기는 잘 크지 않았다. 햇볕을 받지 못해 그랬던가. 식물이 힘이 없어 보였다. 빛깔도 어두침침했고, 단 한 개의 자두 열매도 열리지 않았다. 반면, 앞집과의 경계선 비좁은 곳에 심은 한 그루는 잘 자라나 무성한 가지에 수백개의 자두가 열렸다. 뜻밖이었다. 

 

어머니 A씨와 중학교 3학년 아들 B군이 수원에서 함께 찾아왔다. 둘은 필자 사무실까지 오면서 얼마나 다퉜는지 분위기가 냉랭했다.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중학생 아들은 외모는 물론, 성미 급하고 두뇌도 명석한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생년월일 중 태어난 날이 사주의 중심. 일간(日干) 바로 턱밑 일지(日支)에 앉은 어머니의 기운이 강했다. 

 

일지는 원래 배우자궁.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결혼해 아내로부터 바로 마마보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어머니가 일일이 쫓아다니며 강한 모성으로 자식을 챙기지만 정작 자식 입장에서는 제발 나서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안 그래도 될 일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으로 여겨져 짜증나기 일쑤인 형국인 것. 엄마 사랑도 지나치면 자녀를 망친다. 이 경우를 ‘모자멸자(母慈滅子)’ 사주라고 한다. “반에서 1등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우등생 아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A씨가 B군의 진로와 관련해 “너는 일반대학에 진학하지 말고 육사나 가라”고 벌써부터 강권해 싫다는 아들과 어머니가 싸우다 방문했다는 것. 필자는 어머니 A씨에게 설명했다. 

 

© 사진=연합뉴스

 

“더 이상 어머니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아들은 가출이라도 하고 맙니다. 가만히 놔둬도 아들은 서울법대에 갈 성적이 될 것이구요. 군인이 되건 공무원이 되건 무엇이든 고교 진학 후 아들이 공부해보고 스스로 결정해 원하는 길을 기도록 두십시오. 모범생 아들이 제 갈 길을 잘 찾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부모의 기쁨이 되지 않겠습니까?”

상담이 길어졌다. 따라다니며 챙겨주지 않으면 아들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라는 A씨의 반발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완강하던 A씨는 “결코 아들이 망하기를 원하는 어머니는 아니다”며 끝내 물러섰다. 다투며 사무실을 방문했던 두 사람은 사이좋게 손잡고 돌아갔다. 필자는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한 고교 진학을 권유했고 A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굳이 육사를 가지 않아도 좋다고 마음을 바꾼 어머니가 집에서 가깝다며 희망한 수원의 고교가 아닌 지방에 있는 한 명문고교로의 입학도 웃으며 허용했다. 이에 아들이 뛸듯이 기뻐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비슷한 예는 많다. C씨는 아들 D군을 알뜰히 챙긴 어머니였고, 아들은 ‘방콕’ 게임을 좋아했다. 하라는 공부는 전혀 않고 밤 새워 컴퓨터게임에만 몰두하자 어머니는 군 입대를 권유했다. 군대에는 잘 적응할까. C씨가 걱정했던 D군은 군대생활을 잘 하고 병장 제대했다. 집으로 돌아온 D군은 어머니에게 효도하겠다는 말도 했고,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자 아들은 군입대전과 똑같이 나태해졌다. D군은 자신의 방 바깥으로는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밤에는 게임을 하고 낮에는 밥도 거른 채 잠만 자기 일쑤였다. C씨는 하는 수 없다며 밥상을 차려 방에 갖다줬다. 어머니가 차려다주는 밥을 먹고  D군은 다시 종일 리니지게임에 빠졌다. C씨는 꾹 참고 아들을 지켜보았지만 아들의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분통이 터지고 홧병 날 것 같다며 필자를 찾아왔다. 

 

필자와 만난 어머니는 “아들이 밥을 먹지 않고 버티면 엄마가 못 이긴 채 밥상을 차려다 줄 것이라고 미리 ‘통빡’을 재고 있었던 것”이라며 “남들처럼 직장생활도 하고 결혼도 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야 아들 생활이 바뀔까요”라고 문의했다. D군의 사주도 마찬가지. 일간 바로 밑 일지에 어김없이 어머니에 해당하는 오행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군대까지 갔다온 D군은 뜨거운 모성(母性)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으니 한심할 정도로 방자한 생활을 하는 상황이었다. 

 

필자는 해법을 단호하게 일러줬다. 즉 C씨가 아들을 살리려면 독한 마음으로 집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집에서 어머니가 따뜻이 챙겨주니까 의존하는 마음이 커 그런 것이며 집에서 쫓아내 자립심을 키워야 한다는 말에 C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자는 아들이 편의점 알바를 하건 막노동을 하건, 혹은 원룸에서 생활하건 PC방에서 생활하건 개의치 말고 속마음을 숨기고 좀 냉철히 아들을 대하라고 당부했다. 그것만이 아들을 오히려 살려내는 길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자멸자(母慈滅子)’ 사주. 이는 예컨대 무(戊)토(土)사주라면 일지 등에 인수(印綬)인 화(火)기운이 너무 강하게 팀을 이뤄 사주의 주인공이 되려 실패의 길을 걷는 명조이다. 인수는 일간을 생조하는 오행으로 사주 전체에 없거나 부족해도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세력이 강해도 문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마찬가지로 큰 나무는 작은 나무를 키우지 않는다. 가지 많은 큰 나무 아래에서 작은 나무는 고사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웅은 챙겨주는 엄마 치마폭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물이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떨어져 벌판에서 외롭게 말 달리고 큰 웅지(雄志)를 키우며 때로는 넘어지고 일어서며 나온다. 나무는 가능한 한 씨앗을 자신으로부터 멀리 날린다. 큰 나무 바로 아래에 씨앗이 떨어지면 자식 나무는 잘 자라지 못한다. 홀씨가 바람의 흐름을 타고 윤택한 땅에 도달해야 정착에 성공한다. 이 또한 운(運)이다. 

 

아무튼 자식이 멀리서라도 홀로서기를 통해 크고 튼튼한 나무가 되어라는 것이 어미 나무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우리도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배워야 할 터. 목종지패(木從之敗)라는 말이 그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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