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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어린 선수들 기본기 잡는데 집중...선수로 돌아갈 마음 전혀 없어”

[인터뷰] 코트로 돌아온 한국 여자농구 최고의 테크니션 이미선 삼성생명 코치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9(Sat) 16:00:00 | 14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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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자농구 최고의 테크니션, 국가대표 부동의 가드로 코트를 평정했던 이미선(38)이 미국 연수를 마치고 친정팀 삼성생명 코치로 복귀했다. 19년 프로 생활 동안 정규리그 우승 6번, 챔피언결정전 우승 4번, 아시안게임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를 차지했다. 정규리그 502경기를 뛰며 평균 10.8득점, 5.1리바운드, 4.5어시스트, 2.2스틸을 기록한 여자농구 최고의 전천후 가드가 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80년대 김화순, 최경희, 성정아부터 90년대 정은순, 박정은 등 삼성생명 스타플레이어의 계보를 이었던 이미선을 8월10일 경기도 용인 삼성트레이닝센터(STC)에서 만났다. 이제 그의 호칭은 ‘선수’가 아닌 ‘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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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은퇴한 후 그해 9월초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로 농구 연수를 떠났다가 약 1년 만에 돌아왔다. 대학농구 외에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LA 스팍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그곳 생활은 어떠했나.

 

“처음엔 대학 팀에서만 연수를 받고 오려다 미국까지 간 김에 WNBA를 경험하고 싶어 여러 군데 인턴십을 신청했다가 LA 스팍스로부터 연락을 받아 객원 코치 연수를 받게 된 것이다. 그곳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는 상황에서 지난 6월 부친상을 당했고, 서둘러 귀국했다가 이후 미국 생활을 완전히 정리했다.”

 

1년이란 시간이 짧으면 짧을 수도, 길면 길 수도 있는 시간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은퇴 후 미국으로 방향을 정한 건 어학 공부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어쩌면 로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은퇴하면 공부만 하면서 지낼 줄 알았는데 막상 부딪쳐 보니 너무 힘들었다. 샌디에이고주립대 농구팀 인턴십을 하기 전 어학원에서 영어를 먼저 배웠다. 처음엔 버텨야겠다는 마음으로 참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버틸 수 있을까 싶더라. 계속된 갈등과 향수병으로 자신과의 싸움을 벌였던 것 같다.”

 

지난 시즌 개막전에서 은퇴식을 치르기도 했다.

 

“미국에서 한창 적응하는 와중에 한국에 들어오니까 다시 나가기 싫어지더라. 이후 미국에 가서 또 한 차례 고비를 맞이했다. 그래도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준 덕분에 조금씩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농구를 시작한 이래 20년 넘게 단체생활에 익숙해 있다가 은퇴 후 갑자기 혼자 지내는 시간이 익숙지 않았나 보다.

 

“처음엔 혼자 있고 싶어서 원룸에 들어갔다가 3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혼자 있다 보니 너무 외로웠다. 이후 미국인 가정집으로 들어가 홈스테이를 했다. 어학원 수업이 끝나면 오후 2시가 되는데 그 이후론 할 일이 없었다. 어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모두 영어 배우러 오는 사람들 아닌가. 내가 어린 나이에 그곳에 갔더라면 서로 어울리고 술도 한잔씩 하면서 즐겁게 지냈겠지만 나이도 많고 술도 못하니 어울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샌디에이고주립대 농구팀에 한 달 정도 일찍 들어가서 연수를 받았다.”

 

샌디에이고주립대 농구부가 미국대학농구(NCAA) 여자부 디비전 1그룹에 속해 있다고 들었다. 미국 대학농구의 선진 운영 시스템을 배우는 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하나.

 

“대학팀인데도 경기장은 정말 좋았다(웃음). 그곳에선 한국의 이미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인사도 시키지 않더라. 하지 말라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NCAA 룰이라며 코치 4명 외엔 플로어에 들어가면 안 되고, 인턴이 볼을 만져선 안 되고, 사진 찍어도 안 되고…. 안 되는 것투성이였다. 훈련 스케줄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 조금씩 익숙해진 다음에 내가 슈팅도 쏴주고 볼도 잡아주고 비디오 미팅 시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는데 나중에 프로팀 들어가서 이전에 받았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거기선 열렬한 환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WNBA LA 스팍스 팀 말인가.

 

“그렇다. 정말 잘 대해 주셨다. 감독님이 손님 올 때마다 한국에서 왔다며 날 소개시켜 주셨다. 코치 미팅 때도 들어오라고 허락했다. 비디오 미팅은 당연히 참석했다. 트라이아웃 캠프 때부터 2개월가량 동고동락하며 정이 듬뿍 들었다.”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없었나.

 

“평소 언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영어를 정말 잘하고 싶어서 시간 날 때마다 혼자 마켓 다니면서 점원한테 자꾸 말도 걸고 지나가다 사람들한테 아는 길도 일부러 물어보면서 대화를 나누려 했다. 처음부터 잘되진 않았지만 영어와 친해지려 노력했다.”

 

LA 스팍스 팀의 하루 훈련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보통 오전 10시에 시작해 2시간 반을 넘기지 않는다. 훈련도 하루에 한 번뿐이다. 오전, 오후, 야간 훈련을 소화하는 한국과는 확실히 큰 차이가 있다. 훈련량은 적었지만 개인 훈련을 하는 선수들이 굉장히 많았다. 자비를 들여 스킬 트레이닝을 배우고 슈팅을 배우기 위해 개인 레슨을 받는 등 한국에선 상상도 못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곳 선수들은 워낙 타고난 신체 조건이 좋다 보니 웬만한 몸싸움에는 끄덕도 하지 않더라. 선수층이 두껍고 농구 열정도 뛰어나고, 부러운 장점들이 정말 많았다.”

 

LA 스팍스에는 이전 신한은행에서 뛰었던 앨레나 비어드가 뛰고 있지 않나.

 

(앨레나 비어드는 2005~06년 신세계(현 하나외환)에서 활약했고, 2006년 WKBL(한국여자농구연맹) 외국인 선수 최초로 트리플더블을 작성했다. 2013~14시즌 신한은행의 지명을 받아 6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신한은행의 준우승에 기여한 후 이듬해 LA 스팍스와 계약을 맺었다.)

 

“앨레나 비어드가 나보다 세 살 정도 어린데(82년생) 정말 열심히 뛰어다니더라. 경기 끝나면 감독님이 앨레나를 제일 많이 칭찬해 주셨다. 나이도 많은데 리더십이 정말 뛰어나다면서. 3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도 빠짐없이 훈련에 참가하는 앨레나를 보고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미국 여자농구 선수들은 강철 체력들이다. 그들의 타고난 체력과 힘이 몹시 부러웠다.”

(이미선은 수피아여고 2학년 말에 이미 삼성생명과 계약을 맺었을 정도로 여고부에서 최고의 가드로 인정받았다. 1997년 삼성생명 입단 후 당시 정은순, 박정은, 한현선 등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생존 경쟁을 벌였다. 당대 최고의 센터 정은순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신인 선수인 그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전해 줬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에서 만난 박정은과 변연하는 팀의 전성기를 이끈 선후배들이었다. 정은순, 박정은, 변연하와 함께 코트를 누빌 때는 거침이 없었다. 덕분에 삼성생명은 정규리그 6회 우승, 챔피언결정전 4회 우승이라는 업적을 쌓을 수 있었다. 이미선은 스틸상 10회, 어시스트상 3회를 수상했으며 1107스틸로 현재 WKBL 통산 최다 기록 보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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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연수를 떠나기 전부터 어쩌면 이미선이란 은퇴 선수가 돌아올 곳은 삼성생명이란 생각을 했었다. 삼성생명의 프랜차이즈 스타이기 때문에 구단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해 코치직 제안을 했을 것 같은데.

 

“구단에서 그런 생각을 했을지는 몰라도 이 자리가 보장받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연수 갔다가 돌아왔을 때 그 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리가 비어 있었고, 구단에서 좋은 기회를 주신 덕분에 다시 후배들을 만나게 됐다. 사실 코칭스태프 중 막내라 부담은 없다. 내가 선수들에게 뭔가를 가르칠 만한 수준이 안 되고 감독님, 선배 코치님들한테 한 수 배우는 상황이다. 전술은 감독님이 하실 테고 난 나이 어린 선수들의 기본기를 잡아주는 데 집중하려 한다. 어느 종목이든지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지 않나. 프로 정도의 선수라면 기본기가 탄탄해야 하겠지만 종종 기본기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에 오는 선수들도 있다. 어렸을 때 고치지 않으면 나중엔 수정 자체가 어렵다.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기본기를 다져놔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난 선수들의 기본기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언젠가 한 여자농구 선수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여자 선수들이 여자 코치나 감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엔 분명한 이유가 있더라.

 

“나도 그 선수가 어떤 이유를 들었을지 짐작이 된다. 여자 코치, 감독은 여자 선수들의 심리를 훤히 꿰뚫고 있다. 자신들도 다 그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선수들의 움직임을 쉽게 파악한다. 남자 감독, 코치들이 큰소리를 칠 때는 그런가 보다 하는데, 여자 선생들이 하이톤의 목소리로 선수를 야단칠 때는 듣기가 싫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도 나왔다. 지금은 내 색깔을 내세우기보단 하얀 도화지 안에 많은 것들을 채워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은행의 전주원 코치처럼 여자농구에서 여자 지도자들도 좋은 역할을 하고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1998년 여자프로농구 출범 후 삼성생명은 매번 정상의 자리를 다퉜다. 우승도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농구 명가’로 군림했던 삼성생명이 2011~12 시즌부터 4위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다시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정상의 자리는 이미 우리은행에 내줬고, 스타플레이어의 부재로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는 의견도 있다.

 

“난 삼성도 삼성이지만 여자농구가 한발 더 위로 올라갔으면 좋겠다. 1년 정도 한국을 떠나 있다 오니까 여자농구가 침체기에 놓인 분위기다. 지금은 배구한테도 밀렸다. 선수들이 모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데 그 짐의 무게에 억눌려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농구로 털고 일어나야 한다. 모두가 지금의 상황에 책임감을 갖고 팀만이 아닌 여자농구 전체의 부흥을 위해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 그에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선수 시절을 떠올렸을 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면.

 

“2005년 여름리그 개막전에서 오른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당했었다. 수술을 받고 일본에서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흔히 뼈를 깎는 고통이란 표현을 쓰는데 그때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이라 그 상실감은 배가 됐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든 재활을 거쳐 1년 만에 다시 코트에 섰다. 2006년 여름리그 개막을 이틀 앞두고 남자 고등학교와 연습 경기를 치르다 왼쪽 무릎 부상을 당했다. 1년 전 부상당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또 수술을 받았고 또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두 번째 부상을 당했을 때는 농구를 그만두려 했었다. 다시 재활을 해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1년 사이에 또 부상을 당한 건 농구를 그만두라는 신의 계시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미선은 두 차례의 무릎 부상과 수술, 재활을 거치며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을 경험했지만 그 과정에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이미선을 가장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봤던 삼성생명 농구단 최진영 사무국장과 2010년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이미선이 어린 나이에 삼성생명에 입단해서 절치부심하고 있을 때, 절정의 시기에 부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낼 때, 그리고 재기에 성공해 다시 농구 코트를 뛰어다닐 때 최진영 사무국장은 지근거리에서 이미선을 지켜봤고 돌봐줬다. 물론 처음에는 프런트 직원과 선수의 관계였지만 이미선이 부상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자연스레 사랑이 싹텄고 여자농구에서 유례없는 커플로 탄생했다. 이미선으로선 농구 덕분에 영원한 동반자를 만난 셈이다.)

 

 

농구 선수는 항상 부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부상 경험이 있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부상 관련 조언을 많이 해 줄 것 같다.

 

“현재 우리 팀의 윤예빈 선수가 한쪽 다리에 십자인대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난 양쪽이었지만 그 선수는 한쪽에만 두 번이라 회복 시간이 더딜 수밖에 없다. 재활 과정이 얼마나 피 말리는 고통이었겠나. 그걸 알기 때문에 심리적인 도움을 주려 노력 중이다. 부상당한 선수들이 생길 때마다 마치 내가 아픈 것처럼 속상하고 안타깝다.”

 

이건 좀 다른 질문인데 얼마 전 NBA 슈퍼스타 스테판 커리가 방한했을 때 이벤트 대회에 출전하면서 커리와 함께 농구를 했다. 그때 이미선 코치의 모습을 본 농구 관계자들의 반응이 한결같았다. 다시 선수 생활을 시작해도 손색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지원, 주희정도 함께 참여한 미니 농구대회였다. 스테판 커리를 보러 온 팬들이 엄청났다. 그들의 함성이 커리를 향한 함성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응원에 도취한 나머지 정말 열심히 뛰었다. 5분도 못 뛸 줄 알았는데 스테판 커리를 막으려 힘든 줄 모르고 뛰어다닌 것 같다. 관중들 응원에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물론 그 응원이 나를 향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좋은 평가를 해 주신 듯하다. 선수로 돌아갈 마음은 전혀 없다.”

 

은퇴한 걸 후회한 적이 있나.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25년간 농구를 했던 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출전 시간이 줄어들었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재미가 급감했다. 작년에 굳이 은퇴하지 않았어도 됐다. 주위에서도 1년만 더 뛰라고 강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여기까지라고. 이젠 지도자로 농구의 새로운 재미를 배우고 싶다.”

 

현 삼성생명을 이끄는 지도자는 임근배 감독이다. 이미선은 임 감독 밑에서 코치 수업을 받고 있다. 세상은 돌고 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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