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옥-진희경 “욕심 내려놓으니 연기 뭔지 알겠더라”
  • 이예지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7 14:59
  • 호수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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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여배우 배종옥-진희경이 말하는 연기 그리고 내 삶

 

중년의 주름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성적표다. 50대의 배종옥과 진희경은 단단해 보였다. 작은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고, 혹여 흔들리더라도 부러지지 않고 금방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뿌리를 가진 것 같았다. 긴 세월 여배우로 사는 동안 그녀들을 흔들고 간 바람들이 이렇게 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배종옥은 무엇보다 인위적이지 않은 모습이 예뻤다. 요즘 젊은 여성도 으레 하기 마련이라는 시술도 하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얼굴이다. 그녀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주름이 예뻐 보였다.

 

“연기를 오래, 잘하기 위해선 체력이 기본이 돼야 하는데 나이 먹을수록 체력에 한계를 느끼면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살쪄서 나태해 보이는 것도 싫고요. 나이 든 내 모습을 사랑하려고 해요. 내 나이만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여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소신이 뚜렷하고, 할 말은 하고 보는 성격 때문에 ‘센 언니’ 이미지가 있는 배종옥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자신의 방을 온통 핑크색으로 꾸미는 소녀스러운 감성과 ‘렉카신’도 대역 없이 소화할 정도로 거친 면모가 공존하는 그녀. 사방으로 발달한 감수성 덕분에 배종옥은 뼛속까지 배우다.

 

“작품을 따지지 않고 아무거나 다 하는 게 배우라고 생각해요. 작품이 좋든, 싫든 이것저것 다 하면서 그 안에서 배우는 게 배우죠. 배우라면 ‘그냥’ 하는 작품도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늙어가는 나를 받아들이고,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더 많은 작품이 보이고 연기의 폭도 넓어졌죠.”

배종옥 © 사진=우먼센스 제공

 

뼛속까지 단단함으로 무장한 두 여배우

 

‘그렇다면 배우가 뭐라고 생각하나요?’라는 다소 심오한 질문을 던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입을 열었다. 배종옥스러운, 시원시원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렸을 때 이 질문을 받았더라면 똑 부러지게 대답했을 거예요. 한마디로 정의할 순 없지만 작품 안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게 배우의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배우가 될 건지, 연예인이 될 건지 노선을 빨리 정하라고 조언하죠. 배우와 연예인은 완벽하게 다르거든요. 유명해지는 것, 사람들에게 환호받는 것에 매료될 수 있는데 그 환호성은 굉장히 짧아요. 대중의 마음은 믿을 수 없는데 그것만 좇아가다 보면 상처받기 마련이죠. 배우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연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게 인기거든요. 배우가 되고 싶으면 인기를 좇지 않는 마음가짐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1989년에 출연한 드라마 《왕룽일가》를 통해 하나의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신선하고 재미있음을 배웠죠. 그 전엔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만 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배우, 되게 재미있다’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다음으로 영화 《젊은 날의 초상》에 출연했는데, 역시 그 작품 속 인물도 입체적이었어요. 연달아 즐거운 작품을 하니까 ‘나는 배우를 해야 하는구나’ 하고 마음을 굳혔죠.

‘연기 잘하는 좋은 배우’로 남고 싶다는 배종옥. 인간 배종옥이기 이전에 배우로 평가받는 게 더 좋다는 그녀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브라운관에서, 또 스크린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만들었고, 발현해 왔다. ‘연기가 아니면 안 되는 것’, 그게 바로 중견 여배우 배종옥이 사는 법이다.

 

배종옥과 비슷한 시기에 모델로 데뷔한 후 당차고 화려한 여성상을 보여주었던 진희경 역시 중견 여배우로 사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사람’이었다.

 

“언제부턴가 저보다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기게 되더라고요. 모든 게 내 중심으로 돌아갔던 과거와 달라요. 욕심을 버리니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더라고요. 저는 카메라 안과 밖에서 늘 빛나는 직업이잖아요. 오늘만 해도 그래요. 이 무더위 속에 스무 명 가까운 스태프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데, 그게 모두 저를 빛나게 하기 위함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챙기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관계를 계산하지 않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그녀 곁에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스태프가 많다.

 

“현재 소속사 대표가 18년 전 매니저와 배우로 만난 친구예요. 처음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저를 배우로, 그리고 ‘인간 진희경’으로 존중하고 응원해 주는 친구죠. 저 또한 그 친구의 마음을 고맙게 생각해요. 회사 대표가 잘되는 게 제가 잘되는 길이잖아요. 그렇게 서로 존중하다 보니 트러블이 생길 일이 없어요. 회사 대표가 하는 말은 왠지 귀담아듣게 되더라고요(웃음). 스타일리스트나 헤어·메이크업 스태프도 오래 같이 일한 친구들이에요. 성격도 좋고 능력도 있는 멋진 친구들이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그들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받고, 그 에너지를 남에게 전해 줄 수도 있으니까 좋아요.”

진희경 © 사진=우먼센스 제공

 

괜찮은 배우, 괜찮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뒤돌아보고 후회하는 성격이 아니라 낙담하거나 스트레스 받지도 않는다. 올해로 데뷔 28주년이 됐지만 여배우의 길을 걷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단다.

 

“그렇다고 평소에 어떤 목표나 꿈을 정해 놓는 편도 아니에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사실 없어요. 다만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이려고 하죠. 배우는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이에요. 콘셉트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나의 쓰임이 달라지죠. 그런 면에서 좋은 쪽으로 쓰였으면 좋겠어요. 괜찮은 사람, 괜찮은 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로 인해서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죠.”

그녀가 말하는 괜찮은 사람, 괜찮은 배우는 뭘까?

 

“상식이 있는 사람이죠. 우리가 교육받아온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상식을 지키는 사람이 좋아요. 지식의 많고 적음, 돈의 많고 적음이 그 사람의 인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돼요. 좋은 인성과 건강한 마인드, 그리고 건강한 체력까지 3박자가 갖춰진다면 괜찮은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괜찮은 배우가 되기 위해선 먼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않으면 결국 외면당하게 되어 있거든요.”

진희경은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괜찮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밝고 당찬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그 시간을 알차게 쓸 줄 아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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