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에서 이방인 취급받는 ‘조선적’ 재일동포들
  • 홍주환 인턴기자 (shotshot93@naver.com)
  • 승인 2017.08.16 17:29
  • 호수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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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무국적자로 분류, 국내 입국 까다로워

 

영화 <암살>의 후반부엔 중국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한데 모여 뉴스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이 미국에 공식적으로 항복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일본의 패망은 곧 조국이 해방된다는 의미다. 독립운동가들은 기쁨에 차 다 함께 이렇게 외친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1945년 8월15일, 해방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해방이 된 지 7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고국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적(朝鮮籍)’ 재일동포들이다. 매년 광복절이 다가올 때마다 고향땅을 밟지 못하는 이들의 설움은 커져간다. 

 

 

한·일 양국서 차별받는 조선적들

 

조선적은 해방 이후 일본 정부가 일본에 있었던 재일동포들에게 부여한 외국인 등록 상 명칭이다. 당시가 1947년이었다. 조선은 이미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 국가였고 한반도에는 1948년 남북한 정부가 각각 들어섰다. 조선적은 과거 조선이 있었던 한반도 지역을 지칭하는 말일 뿐이었다.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다수의 조선적 동포가 여러 이유로 ‘한국적(韓國籍으)’으로 국적을 바꿨다.

 

일부는 조선적을 고수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분단되지 않은 한반도의 국민이고 싶다는 이유로, 혹은 자신의 국적이 일제 만행의 증거라는 이유로 국적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북한으로의 입국이 자유로운 특성상 친척 대다수가 북한에 있어 조선적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적은 70년 동안 일본·한국·북한에도 속하지 않은 무국적자로 살았다.

 

1976년 한국을 방문해 각자의 고향에서 성묘하고 있는 재일동포한식성묘단. 당시 성묘단에는 상당수의 조선적 동포도 포함돼 있었다. ©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그동안 조선적은 일본 사회 내에서 각종 차별과 통제의 대상이었다. 1952년 조선적 경제활동인구 중 무직자 비율은 62%였고 취업자도 일용직 노동자가 가장 많은 등 사회경제적으로 차별을 받았다. 시간이 지났어도 차별은 여전하다. 조선적 동포 3세인 강주연(가명)씨는 이렇게 털어놨다. 

 

“학교를 다닐 때 일본 학생들로부터 ‘조센징’이라고 조롱 받기 일쑤였어요. 성희롱하는 일본인도 있었죠. 최근에는 아파트에 입주하려는데 조선적이라고 집주인이 입주를 거부하더라고요.”

조선적 동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같은 민족에게도 차별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국 정부가 고향을 방문하고 싶다는 조선적 동포의 방한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조선적 동포 3세인 김정범(가명·49)씨는 15년째 한국에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재일동포 선배와 한반도 역사를 공부했고 그러면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다. 

 

“민족에 대해 모르니 제가 우리 민족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느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학창시절부터 한국, 특히 재일동포 1세인 할아버지의 고향 제주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라고 말했다. 재일동포 1세의 98% 가량은 김씨의 할아버지처럼 남한 출신이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입국길 꽉 막혀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제주도에 가보지 못했다. 무국적자인 조선적에게는 여권이 발급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만, 조선적은 일본 내 한국영사관으로부터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방한할 수 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0조(외국 거주 동포의 출입보장)에는 ‘외국 국적을 보유하지 아니하고 대한민국의 여권을 소지하지 아니한 외국 거주 동포가 남한을 왕래하려면 여행증명서를 소지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문제는 여행증명서 제도가 조선적 동포 등 무국적 재외동포의 입국을 돕는 ‘다리’가 아닌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김씨를 포함한 조선적 동포 다수는 과거 잘 발급되던 여행증명서가 최근 7~8년 동안은 거의 발급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조선적 동포와 관련 단체들은 이런 현상이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조선적 재일동포 입국 실현을 위한 모임’의 한 관계자는 이처럼 설명했다.

 

“2008년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 여행증명서 발급 절차와 심사가 눈에 띄게 까다로워졌어요. 과거에는 전화로 하던 면접 심사를 최근에는 대면으로 몇 번이나 합니다.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국적 변경을 요구하는 영사관도 있습니다.”

지난해 공개된 외교부의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조선적 동포들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률은 급격히 감소했다. 2005~2007년만 해도 100%에 가깝던 여행증명서 발급률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지난해 34.6%까지 줄어들었다.

 

김씨는 최근 몇 년간은 아예 여행증명서 발급 신청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오지도 않을 텐데, 영사관으로부터 사상검증 등 불쾌한 질문을 받거나 하고 싶지 않아서 최근에는 신청을 안 하고 있어요. 다른 조선적 동포 사이에도 여행증명서 신청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죠.”

실제로 2011년에서 2016년 사이, 조선적 동포의 여행증명서 신청 건수는 100건이 채 되지 않았다. 주일한국대사관에 따르면 2017년에 신청된 여행증명서 신청 건수는 8월7일 현재까지 10건에 불과했다. 2005년에 여행증명서 신청 건수가 3329건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 시사저널 미술팀


 

“조선적이라고 ‘친북’ 낙인”

 

보수정권에서 조선적의 방한을 가로막는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적 동포 다수는 영사관이 자신들을 ‘북한 체제를 따르는 사람들’로 여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사관 측에서 불특정 다수의 조선적 동포를 ‘친북’ 혹은 친북한계로 알려진 ‘조총련계’라고 봐 단순 관광 목적의 방한이어도 입국을 불허한다는 이야기다.

 

조선적 동포인 정소현(가명)씨는 자녀가 조총련 산하에 있는 조선학교에 다녀 조총련 주관 조선학교 행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정씨에 따르면 그가 수년 전 여행증명서 심사를 받으러 갈 당시 영사관은 정씨가 어떤 행사에 갔는지 등을 이미 알고 있었다.

 

“조총련에서 일한 적도 없고 조선학교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말을 배울 수 있는 곳이어서 자녀를 보냈을 뿐이에요. 그런데 영사관은 조선학교 행사도 조총련과 관련이 있다고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면 쉽게 한국에 간다고 회유했어요.”

정씨는 국적 변경을 거부했고 그해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지 못했다.

 

기자가 만난 조선적 동포 중 대부분은 영사관이 조선적 동포와 조총련 간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 한국 정부는 재일동포의 일본 내 영주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협정영주’를 일본 정부와 약속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영주 자격의 대상을 ‘한국적’ 등록자로만 한정했다. 조선적 동포는 배제된 것이다. 북한은 수년 전부터 조선적 동포를 해외공민으로 포섭하려 했던 상황이었다. 조선적 동포는 북한과 조총련에 의존했다. 정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조총련은 조선적 동포가 민족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조선학교를 설치하는 등 지원을 했어요. 많은 조선적 동포가 사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로 조총련과 관련돼 있어요. 하지만 영사관에서는 이런 현실은 모른 채 지인 중 조총련과 관계된 사람만 있어도 문제를 삼습니다.”

이에 대한 영사관 측의 답변은 간결했다. 영사관 관계자는 ‘조선적 동포의 방한 목적, 국가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하고 관계기관의 의견을 수렴해 발급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 방한 길 열어줄지에 기대감

 

기자가 만난 조선적 동포들은 조선적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범씨 역시 그런 경우다.

 

“조선적을 유지하는 사람 중에는 우리 민족은 본래 하나라는 증거가 자신의 국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국적을 바꾸면 민족이 둘로 단절됐음을 인정하는 것 같아 그럴 수가 없어요.”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2016년 12월 기준 3만2294명의 재일동포가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김씨가 한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김씨는 문재인 정부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한층 대통령 선거로 뜨거웠던 5월, 많은 조선적 동포가 대선에 집중했다. 김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소식을 알았을 때 기대를 걸었다. 한국행의 문턱을 문재인 정부가 낮춰줄 것이라고 말이다.

 

문재인 정부에 전할 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인 대부분은 조선적을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어요. 저희가 살아온 역사가 한국인과 많이 달라서 그럴 수 있지만 오해는 언젠간 풀어야 하잖아요. 오해를 풀기 위해선 일단 만나야죠. 저는 한국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이번 정부는 이념보다 민족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문재인 정부에 조선적 입국 문제 해결 바란다”

 

지난 5월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후 조선적 재일동포 사회는 한국 입국 문제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여행증명서 발급률 증가 등의 가시적인 변화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주일한국대사관 측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8월 7일까지 여행증명서 신청건수는 10건이었고 이중 여행증명서가 발급된 것은 3건이었다.

 

‘조선적 재일동포 입국실현을 위한 모임(조선적 입국 모임)’ 소속의 송상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조선적 입국 문제까지 손을 대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최근 외교 당국에도 문의를 해보니 ‘지침에 따라 여행증명서를 발급하겠다’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교부 여권과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조선적 재일동포와 관련한 새로운 정책이나 계획은 따로 없는 상태다.

 

조선적 입국 모임의 관계자들은 조선적의 한국 입국과 관련한 제도 보완을 주장하고 있다. 송 변호사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정권 성향에 따라 조선적 동포의 방한 문턱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경희 성공회대 교수는 “영사관은 여행증명서 발급을 불허해도 이유를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여행증명서 발급 심사 방식과 승인 여부도 명확한 기준 없이 영사관의 재량에만 맡겨져 있다. 명확한 기준과 합리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조선적 동포의 입국과 관련해 국회에는 ‘여권법 일부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2017년 3월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이 발의한 법안했다. 조선적 등 무국적 재외동포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 심사 완화와 여행증명서 유효기간 연장 등이 주요 골자다. 강창일 의원실 측은 올해 9월 정기국회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여권법 개정안이 조선적 동포의 입국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제한할 수 있다는 개정안 내 신설 조항 때문이다.

 

조경희 교수는 해당 조항이 조총련과 관련이 있다며 조선적 동포의 입국을 막는 명분으로 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경희 교수는 “재일동포 사회 내에서 일명 ‘조총련계’와 ‘비(非) 조총련계’를 칼로 무 자르듯 가를 수 없다. 해당 조항의 안보논리가 재일동포 전체에게 과도하게 적용될 소지가 있다. 제도를 만들기에 앞서 재일동포 사회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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