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 매각說 솔솔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6 16:52
  • 호수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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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고위 임원들 주택사업팀 인수 타진

 

삼성물산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來美安)’의 매각설이 나오고 있다. 진원지는 전직 삼성물산 임직원들이다. 건설업계 전·현직 최고경영자(CEO)들과 고위 임원들로 구성된 이들은 최근 래미안 브랜드 인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 활발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계기는 래미안이 자칫 사장(死藏)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로 그동안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의 주택사업 철수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신규 수주에 나서지 않으면서, 조직과 인력을 대폭 축소해 왔기 때문이다. 이는 주택사업이 ‘이재용 체제’의 사실상 지주사인 삼성물산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삼성물산 출신 OB들은 래미안 인수에 성공할 경우, ‘윈-윈’ 구도가 만들어질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주택사업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리스크는 자신들이 떠안으면서, 사업을 통해 발생한 수익을 삼성물산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만간 구체적인 인수 방안과 향후 사업계획을 수립한 뒤 정식으로 삼성물산에 인수 의사를 타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수년간 서울 노른자위 개발 사업에서 발 빼

 

래미안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2000년 국내 최초로 브랜드 아파트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탄생했다. ‘미래(來)를 내다보는 공간, 아름다움(美)이 있는 공간, 편안(安)하고 안락한 공간’이라는 의미다. 이후 래미안은 각종 브랜드 평가에서 아파트 부문 1위를 독식해 왔다. 특히, 래미안은 국가고객만족도(NCSI) 아파트 부문에서 20년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명실상부한 국내 1위 아파트 브랜드로 자리매김해 온 것이다.

 

이런 위상과 달리, 삼성물산은 최근 몇 년간 재개발·재건축 신규 수주가 거의 없었다. 오랜 침체기를 거친 국내 주택 분양시장은 2014년 하반기부터 활기를 띠었다. 주요 건설사들은 경쟁적으로 수주에 나섰지만, 삼성물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2014년 이후 수주한 사업은 2015년 신반포3차 재건축이 유일하다. 그마저도 재건축조합이 자체적으로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선정해 사업을 맡긴 것이다. 심지어 수주를 회피하기도 했다. 2014년 잠원동 신반포6차 재건축조합이 시공사이던 두산건설과 계약을 해지하고 삼성물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시공사 선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수년 전부터 직원들도 계속해서 정리해 오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인 2015년 3분기 말 기준 건설부문 정직원은 7087명. 그러나 이후 삼성물산은 수차례에 걸쳐 건설부문 희망퇴직을 진행, 정직원 수가 지난해 1분기 말 6129명으로 958명, 올해 1분기 말 5239명으로 890명 각각 줄었다. 퇴직한 직원들 대다수는 핵심인력인 20대에서 40대 직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주택사업 수주 경쟁력은 상당히 약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조직의 위상도 축소가 거듭됐다. 당초 부회장이 총괄하는 ‘주택부문’에서 ‘주택사업본부’로, 지난해엔 ‘주택사업팀’으로 격하됐다.

 

업계에서 삼성물산의 주택사업 철수설이 빈번하게 회자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해에는 래미안을 중견 건설사 KCC에 매각한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물론 삼성물산은 이를 공식 부인했다. 동시에 조직을 정비한 뒤 다시 주택사업에 나서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그러던 올해 5월 삼성물산이 방배5구역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에 참여하면서 재건축사업 복귀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결국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업계에서는 삼성물산 주택사업 철수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삼성물산은 여전히 주택사업에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최근 서울 서초동 서초신동아재건축조합 시공사 선정 입찰과,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에 불참했다. 특히 반포주공1단지는 서울 강남권 최대 재건축사업장으로 꼽히던 곳이다. ‘대어’를 낚기 위해 주요 건설사들이 총출동했지만, 삼성물산은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는 삼성물산이 주택사업에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결정적인 ‘사건’으로 평가됐다.

 

이러는 사이 삼성물산의 주택사업 수주잔고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2014년 말 13조1810억원에서 올해 1분기 말 10조230억원까지 감소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수년 내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래미안 브랜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일련의 과정은 ‘이재용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밑그림 작업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을 지주사로 전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작업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 현재 삼성물산은 그룹의 사실상 지주사 위치에 올라 있다. 그런 삼성물산에 주택사업이 자칫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사업 축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주택사업은 그룹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입주자들의 시위나 각종 인허가 비리 등으로 글로벌 기업을 추구하는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도 주택사업을 비주력 사업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향후 전자·금융·바이오 등 3대 축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부문은 축소하거나 정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래미안은 그동안 각종 브랜드 가치 평가 아파트 부문에서 불변의 1위를 지켜왔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인허가 등 잡음, ‘깨끗한 이재용 체제’ 걸림돌

 

삼성물산 출신 OB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키워낸 래미안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인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택사업팀을 삼성물산에서 분할한 뒤, 이를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전·현직 직원들이 회사를 운영해 나갈 계획이니만큼 사업이나 내부 화합 측면에서도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인수나 사업을 위한 로드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재건축·재개발사업 특성상 수백억원대의 입찰보증금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삼성물산 OB들은 삼성물산에서 분사 이후 입찰보증금 등 금융편의를 제공하면 계속해서 수익을 낼 수 있으며, 5년 뒤에는 독자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삼성물산과 나누는 식으로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삼성물산 출신 관계자는 “래미안이라는 브랜드를 사장시키는 것보다 분사를 통해 리스크를 줄이면서 수익은 공유하는 식으로 ‘윈-윈’ 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는 주택사업팀 임직원들과 삼성물산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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