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왜 가장 지성적인 나라가 됐을까
  •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4 13:44
  • 호수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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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 독서율 세계 1위…공공 도서관 이용률도 1위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가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웨덴의 연평균 독서율(15세 이상 국민 중 1년에 책 1권 이상을 읽는 사람의 비율)은 90%(EU 평균 68%, 한국 73%)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거리의 수많은 공원이나 휴식 시설에서,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에서, 심지어는 정류장이나 플랫폼에서도 쉽게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스웨덴에도 거리나 지하철 등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의 독서율을 낮추지는 않는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립도서관 내부 모습.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수식이 붙은 곳이다. ©사진=이석원 제공


 

스웨덴 사람들의 독서량을 뒷받침하는 것은 공공 도서관이다. 스웨덴 전역에는 300여 개의 공공 도서관과 1000여 개의 공공 도서관 분관이 있다. 우리나라 공공 도서관이 500여 개이고, 스웨덴 인구가 우리의 5분의 1인 점을 감안하면 스웨덴 공공 도서관 수는 많다. 그래서 스웨덴의 공공 도서관 이용률(15세 이상 국민 중 1년에 1회 이상 공공 도서관에 간 사람의 비율)도 74%(EU 평균 31%, 한국 32%)로, 이 또한 세계 1위다.

 

결국 스웨덴 사람들의 독서는 공공 도서관에서 주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이 있다. 스웨덴 건축가 군나르 아스플룬드가 1928년 신고전주의와 모더니즘을 혼합해 만든, 그야말로 공공 도서관을 예술의 경지에 올려 놓은 건축물이다.

 

건물의 파사드(정면)를 통과하면 등장하는 계단. 그 계단의 끝에서 보이는 광경은 슬슬 심장 박동 수치를 올린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서서 맞닥뜨리는 것은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 속 우주 공간을 처음 접했을 때의 비현실감이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이라는 책의 책임 편집자인 마크 어빙은 이 도서관 열람실을 ‘연마 끝에 순수한 기하학의 경지에 오른 주지주의의 저장소로 오르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가장 편하게 삶의 쉼표를 찍는 공간

 

스톡홀름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이기도 한 이곳이 스톡홀름 관광 성수기를 맞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최근 스웨덴의 한 광고회사가 스톡홀름을 찾은 외국 관광객에게 ‘스톡홀름에서 꼭 가보고 싶은 건물 베스트 3’을 물었을 때 조사 대상의 79%가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을 꼽았다. 그 뒤를 노벨박물관(Nobel Museum), 스웨덴 왕궁(Kungliga slottet), 드로트닝홀름 궁전(Drottningholms Slott), 스톡홀름 시청사(Stockholmsstadshus)가 이었다. 아직 한국의 여행자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이지만 다른 외국 여행자들에겐 ‘핫 플레이스’가 돼 있던 것이다.

 

평소에는 매일 오후 퇴근 무렵이면 다양한 복장의, 다양한 연령의 시민들이 아무 절차도 감시도 받지 않는 이곳에 와서 한두 시간 동안 자유롭게 책을 읽다가 간다. 바쁜 일상에 지쳤던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삶의 쉼표를 찍는 공간으로 이곳을 꼽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책 대출도 상당히 자유롭다. 스톡홀름 시민은 물론 단순한 여행자들도 여권 등 간단한 신분 확인만 하면 자유롭게 책을 빌릴 수 있다. 반납을 굳이 본관에 와서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시내 곳곳에 공공 도서관의 책을 반납하는 곳이 있다. 시립도서관 분관은 물론 지하철역에도 책 반납을 위한 공간이 있어 그곳에 반납하면 된다. 이 모든 것은 철저히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90년 대 초반 스톡홀름대학에서 유학하던 한 한국인은 당시 이곳에서 빌린 책을 깜빡하고 미처 반납하지 못했다. 그는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1년 스웨덴을 여행하면서 그 책을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에 반납했다.

 

한국의 유학생이나 교환학생도 적지 않은 웁살라대학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은 중앙도서관인 ‘카롤리나 레디비바(Carolina Rediviva)’다. 15세기부터 내려오는 고서 수만 권을 포함한 500만 권의 책을 소장한 이곳은 사르트르 이후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는 미셸 푸코가 역작 《광기의 역사》를 집필한 곳으로 유명한데, 그런 유명한 지성인이 아니더라도 도서관 안팎에서 웁살라 시민들이 가장 많은 책을 읽으며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는 공간으로 더 유명하다.

 

스톡홀름 시립도서관 외관 ©사진=이석원 제공


 

카롤리나 레디비바도 이 학교의 학생들은 물론 웁살라 시민뿐만 아니라 웁살라를 방문한 여행자에게도 개방된 공간이다. 마음껏 책도 빌릴 수 있다. 물론 제대로 반납이 이뤄진다. 혹여 웁살라 사람에게 “그러다가 책을 반납하지 않고 그냥 가져가면 어떡하냐?”고 물으면 질문한 사람이 이상해진다. 그들은 “자기 책이 아닌데 왜 가지고 있어?”라고 되묻는다. 그 이상의 설명은 없이. 카롤리나 레디비바의 사서 잉마르 리스페트는 “날 어떻게 믿고 여권만 확인하고 책을 빌려주냐”는 질문에 “그 정도로 가난한 것 같지는 않다”며 웃는다. 질문한 사람이 겸연쩍어지는 것이다.

 

 

여행객도 여권만 보여주면 대출 가능

 

스웨덴에는 크고 작은 서점이 있다. 한국의 교보문고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톡홀름 중심가에도 대형 서점이 있고, 서울의 연남동 분위기 가득한 쇠데르말름소포(SOFO) 지구 등에도 작은 서점들이 많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GNI) 5만달러의 스웨덴 사람들은 서점에서 책을 사서 보기보다 공공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것을 즐긴다. 스웨덴 정부의 복지 예산 중 상당 부분은 이런 공공복지로 지출된다. 즉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그 세금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는 교육이나 의료, 노후 등 굵직하고 거창한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공공복지의 단면들은 결국 스웨덴 사람들의 엄청난 독서량,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똑똑한 시민’ 만들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은 과감하게 자신들의 독서 사랑을 과시한다. 답답한 집 안보다 밖에서 책 읽기를 즐기면서. 도심 속 많은 공원들, 카페들, 그리고 지하철과 버스 안. 스웨덴 사람들이 공공 도서관과 함께 책 읽기 좋아하는 공간들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스웨덴을 세계에서 가장 지성적인 이미지의 나라로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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