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상규명은 진보·보수 아닌 상식과 정의의 문제”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1 18:33
  • 호수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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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이끈 김정호 변호사

 

5·18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의 폭동이라고 주장한 ‘전두환 회고록’의 출판과 판매가 금지됐다. 광주지법 민사21부는 8월4일 5·18기념재단 등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낸 회고록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전 전 대통령 측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 판매를 금지하는 나라가 어딨냐”며 반발했다. 또 5·18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김정호 변호사(45·33기)는 전두환 회고록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대리했다. 그는 “전두환이 회고록을 통해 역사왜곡을 집대성해 본격적으로 5·18 폄훼에 나선 것을 좌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전 전 대통령 측 이의 제기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후안무치한 언행”이라고 지적했다.

 

© 사진=김정호 변호사 제공

 

전두환 회고록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에 참여한 계기와 진행 과정은 어땠나.

 

지난 2016년 6월경 우연히 전두환·이순자 부부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당시 전두환 부부는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라며 “그 주장은 지만원이라는 사람이 하는 주장이다. 지만원의 주장을 연희동(전두환)의 주장과 연결시키지 말라”는 취지로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올 4월, 지만원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온 회고록을 출판했다. 이는 지금까지 지만원과 일베(극우 성향 인터넷 카페) 등을 중심으로 진행돼 온 5·18 역사왜곡의 내용을 집대성한 책이다. 이 책이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는 ‘뒤집힌 현실’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금지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

 

5·18 역사왜곡에 대한 허위사실을 특정해 판단을 내린 첫 번째 판결이라는 것이다. 5·18 진상규명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고, 상식과 정의의 문제이자 민주주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다. 법원이 역사왜곡에 대해 준엄한 판단을 한 것이고, 역사왜곡 세력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란다.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고 주장한 이유는 무엇이라 보나.

 

전두환이 5·18 왜곡·폄훼 세력의 주장을 회고록에 그대로 옮겨온 것은 당사자 본인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회고록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또 회고록 서문에 ‘본인과 5·18은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 ‘5·18 사태의 실체에 관한 논란’이라는 해명을 늘어놓고 있다. 기존에 한 번도 주장하지 않았던 북한군 개입설에 관해 회고록에서 다룬 이유는 5·18 당시 국군이 양민을 학살한 적이 없다는 논리를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다. 지만원 등의 허위주장처럼 북한군이 개입되면 광주시민들은 양민이 아니고 불순분자가 된다. 살상해도 무관한 대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무리수를 둔 것이다.

 

 

전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한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내용도 허위로 인정됐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과 육군항공대 관계자들은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헬기 사격이 없었으며, 시민들이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하는 1980년 5월21일경 광주에는 무장헬기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1996년과 1997년경 전두환에 대한 12· 12 및 5·18 관련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조비오 신부 및 피터슨 목사 등이 계엄군의 헬리콥터를 이용한 기총소사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 진술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16년 전일빌딩 리모델링 과정에서 발견된 총탄 흔적을 헬기 사격에 의한 탄흔으로 판정했다. 헬기 사격이 실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36년 만에 확인된 것이다. 법원은 이번 가처분결정에서도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 사실을 인정했다. 광주에 파견된 항공여단 부대 편제 및 일자별 파견장비표에서도 1980년 5월21일 광주에 무장헬기가 파견됐다는 것이 확인됐다. 다수의 시민이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그 시각, 광주에는 사격이 가능한 무장헬기 3대가 배치돼 운영 중이었다.

 

국과수는 2016년 전일빌딩 리모델링 과정에서 발견된 총탄 흔적을 헬기 사격에 의한 탄흔으로 판정했다. 전두환 회고록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광주지법 역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5월 단체 등의 주장을 인정했다. ©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자신이 5·18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도 회고록을 통해 주장했는데.

 

전두환은 ‘5·18사태의 발단에서부터 종결까지의 과정에서 내가 직접 관여할 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면서 자신의 책임을 부인했다. 그러나 전두환의 내란죄는 유죄로 인정됐다. 내란의 수괴로서 관여한 사실이 인정된 것이다. 또한 내란목적살인죄가 인정된 1980년 5월27일의 살상행위와 관련해, 최소한 전두환이 관여한 작전의 실시명령에 작전의 범위 내에서 사람을 살해해도 좋다는 ‘발포명령’이 들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외에도 상황 보고를 받고 연행자 조사를 지원하는 등 주도권으로 자위권 발동을 주장한 회의 내용 기록 자료,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해 줄 것”을 당부하는 메모가 있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내용과 현실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하시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영화의 내용보다 5·18은 더 참혹하고 비참하다. 영화는 작품성과 흥미성, 관람자의 나이 등을 고려해 시민에 대한 살상행위를 완화시켜 표현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등장하는 독일인 외신기자 힌츠 페터가 촬영한 영상을 기반으로 한 동영상, 5·18의 실록이라고도 평가받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 최근 전남대학교병원이 출판한 《5·18 10일간의 야전병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5·18 당시 기록물 등을 살펴본다면 더 현실적인 역사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힌츠 페터를 통해 보도됐던 내용들 중 가장 공분을 샀던 것이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광주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980년 5월21일은 계엄군의 사격이 공식화된 날로 기록되고 있다. 5월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의 집단발포를 시작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 사격과 조준사격이 전개됐다. 전남대학교병원 의무기록실의 ‘전남대병원의 진료기록지, 수술대장, 마취장부 등을 분석한 223명의 5·18민주화운동 사상자 분석자료’ 등을 통해 전체 사상자 중 총상환자가 91명이라는 것이 간접적으로 확인됐다. 5월21일 전남도청 주변에서 계엄군의 집단발포행위로 인해 사망한 시민들은 6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재수생 임정식(18세)은 총탄파편으로 다리에 부상을 입은 외삼촌을 집으로 데려오던 중 총을 맞고 사망했다. 완도수협 직원 김재평씨(29세)는 막 출산한 딸을 보기 위해 완도에서 광주로 올라왔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고(故) 김재평씨의 사연은 올해 제37주년 5·18기념식에서 그가 사망한 날 태어난 딸이 ‘슬픈 생일’이라는 제목의 추모사를 하면서 알려졌다. 어린이들에게조차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방광범(13세)과 전재수(10세)가 총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광주지법 민사21부는 8월4일 5·18단체 등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 사진=연합뉴스

 

전 전 대통령 측은 불가피한 교전이었고, 시민을 향해 총을 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들에 대한 조준사격이 있었다는 진술은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5·18 조사결과 보고서에도 등장한다. 금남로에 산발적으로 시위대가 나오면 공수부대원들이 조준사격을 했고, 부상자들을 부축하기 위해 나오는 시위대에게도 사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우리 국군은 국민의 군대다. 결코 선량한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눌 일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이고, 명백한 역사왜곡이다.

 

 

특히 《택시운전사》가 이슈가 되자, 전 전 대통령 측은 영화 내용에 왜곡이 있다면 법적 대응을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계엄군이 광주 시민을 겨냥해 사격하는 장면을 날조된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두환 측의 주장은 반성하지 않고 책임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후안무치한 언행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의 조준사격 장면은 1980년 5월21일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실제 일어난 사실을 바탕으로 묘사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집단발포 당시 광주 시민들은 비무장 상태로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당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전직 대통령이 쓴 회고록에 출판금지 가처분을 하는 나라가 어딨냐”며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헌법 제21조 4항이 규정하는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장돼야 한다.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금지는 원칙적으로 허용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표현내용이 진실이 아니거나, 공공의 이익이 목적이 아닐 경우, 피해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가 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허위사실을 기재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사건에서 법원이 밝혔던 기준이기도 하다.

 

전두환 회고록에 기재한 내용은 허위의 사실이고, 그에 따른 피해자들의 명예훼손의 정도도 중대하다. 결코 기본권의 보호영역 내의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전두환은 민주주의 사회를 전제하기 이전에,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관계를 기재했어야 한다.

 

 

왜곡된 주장을 지속적으로 펴고 있는 전 전 대통령 측에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법원의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결정이 났지만, 법률적 대응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5·18 역사왜곡행위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앞으로도 해결할 숙제가 많기 때문이다. 전두환과 지만원 등을 중심으로 독버섯처럼 제기되고 있는 5·18 역사왜곡행위에 대해 가처분, 손해배상청구, 형사고소 등을 통해 끝까지 법률적으로 대응하겠다.

 

독일처럼 반인륜범죄 및 민주화운동을 부인하는 이른바 역사적 사실 부인행위를 형사 처벌할 수 있는 법률조항(홀로코스트법)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이기도 한 5·18정신의 헌법전문 수록, 발포명령자 등 남은 문제들을 규명할 수 있도록 진상조사활동에도 힘을 모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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