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로봇세 도입’은 정말일까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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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로봇세’ vs ‘기업 세액 공제 축소 흐름’

 

IT전문매체인 지디넷(ZDNet)의 그렉 니콜스 기자가 8월9일 한국에 관한 기사를 하나 썼습니다. 기사 제목은 이렇습니다. ‘한국, 세계 최초의 로봇세를 검토하다’ 말로만 듣던 ‘로봇세’를, 그것도 우리가 시행하다니 놀랄 일입니다. 그래서 내용을 한 번 살펴봤습니다.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로봇세라는 세금을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 법이 실현되면 한국은 세계 최초로 대규모 로봇 도입에 따른 자동화가 기술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세법을 변경한 나라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가 제안하고 있는 세법 개정은 로봇에 직접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화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의 축소다.」

 

그러면서 이 법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이것이 기업의 자동화 기술 도입을 억제하는 시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자동화에 따른 향후 실업의 확대가 한국의 세수를 크게 후퇴시킬 정도의 규모가 될 지 모른다는 예상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이런 세금 공제에 따른 인센티브를 줄여 소득세의 세수 감소를 상쇄해 사회복지나 생활보호 등의 재원 확보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를 축소하면서 한국형 로봇세 도입의 첫발을 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로봇세'가 아닌 기업에 대한 과도한 세액 공제를 줄여나가는 과정이란 지적도 있다. © 사진=연합뉴스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 → ‘초기 로봇세?’

 

‘로봇세’는 해외에서 꽤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논의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선진적인 논의가 국내에서 조세 제도로 적용된다니 놀랄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로봇세가 적용된다는 얘기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내 기사들을 검색해봤습니다.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를 축소하면서 한국형 로봇세 도입의 첫발을 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내 기사의 한 대목인데 여기에서 로봇세의 단초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8월2일 기획재정부는 ‘세법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이중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란 게 있습니다.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는 첨단 기계에 투자하면 대기업의 경우는 투자액의 3%, 중견기업은 5%, 중소기업은 7%를 공제해줍니다. 그런데 이 3·5·7의 법칙을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1·3·7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원래 이 제도는 2017년 12월31일을 끝으로 사라질 혜택이었습니다. 이런 걸 ‘일몰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를 2019년까지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조세의 이해와 쟁점, 조세지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제도를 통해 기업이 받는 세제 혜택은 총 2437억원 규모입니다. 혜택이 줄어든다는 건 기업이 그만큼 세금을 더 내게 된다는 뜻입니다.

 

3·5·7의 룰을 1·3·7로 바꾸는 세법개정안의 일부 조문이 ‘로봇세’로 해석된 것입니다. 기획재정부의 코멘트도 기사에 달렸습니다. 기재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를 축소하는 것은 자동화 시설에 대한 세제혜택을 줄이는 것으로 초기 단계의 한국형 로봇세라 할 수 있다.”

원래 로봇세는 로봇과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실직에 따른 세수 감소가 우려돼 등장한 개념입니다. 미래에 닥칠 세수 감소의 해결책으로 ‘로봇세’가 등장했습니다. 기재부 관계자의 말은 로봇에 직접 물리진 않더라도 생산성 향상시설(로봇도 여기에 포함되겠죠)에 대한 세제 혜택을 줄이고 그만큼 세금을 더 내게 하는 것이니 초기 단계의 로봇세라고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로봇 탓에 생길 수 있는 세수 감소를 인지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는 건 정부의 몫이다. © 사진=Pixabay

 

“기업에 대한 과도한 세액 공제를 줄여나가는 과정일 뿐”

 

세계 각지에서 논의되는 로봇세를 한 번 볼까요. 미국과 유럽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 적용은 쉽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로봇’에 대한 정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올해 2월 ‘쿼츠’와 인터뷰를 한 빌 게이츠의 의견을 보죠. 그는 아주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공장에서 5만 달러의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가 있다고 치자. 그의 수입에서는 소득세와 사회 보장세 등 다양한 세수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후 로봇이 등장해 그 사람과 똑같은 일을 한다면 로봇에도 동일한 과세를 하면 된다.”

그런데 로봇연구자들은 더 복잡합니다. “로봇이란 무엇인가”라고 그들에게 물어보면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미국 보스턴 노스이스턴 대학의 하누만트 싱 교수가 생각하는 로봇은 복잡한 행동을 작동하거나 감지하는 시스템을 포함합니다. IT전문매체인 ‘와이어드’는 싱의 대답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싱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자율주행차도, 자동비행 모드를 설정한 보잉747 비행기도 로봇이다.”

로봇 과세 반대 진영은 이런 ‘로봇’에 대한 정의가 모호한 점 때문에 과세하기 곤란하다고 주장합니다. 로봇세라는 명목 자체가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의견도 주된 근거입니다. 미국에는 자동화추진협회(Association for Advancing Automation)가 있습니다. 첫 글자 A가 3개라서 ‘A3’라고 부르는 단체입니다. 단체 명칭에서 보듯 이들은 로봇세 도입에 반대합니다. 로봇세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젊은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의 경쟁 상대가 될 중국은 국가 주도 아래 로봇산업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로봇세는 한가로운 얘기입니다. 

 

이처럼 선진국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로봇세를 비록 초기단계지만 우리나라가 도입했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저쪽은 빌 게이츠까지 참전하는데 우리는 그런 논의조차 없던 상황이니까요. 그런데 국회 관계자는 “과도한 해석”이라고 말했습니다.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가 있다. 생산성 향상시설 세액공제가 있고. 안전설비 세액공제. 환경보전시설 세액공제 세 가지가 있는데 생산성만 손대는 게 아니라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모두 다 줄어든다. 3·5·7에서 1·3·7로 바뀌고 환경 보전만 3·5·10에서 1·3·10으로 바뀐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있었던 시설투자에 관한 세액 공제 축소 흐름

 

이번 세액공제 축소는 로봇세라기 보다 기업에 대한 과도한 세액 공제를 줄여나가는 과정이란 설명입니다. 실제 이런 시설투자에 관한 세액 공제 축소 시도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있었습니다. 2015년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은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생산성 향상시설 세액공제의 3·5·7 비율을 2·4·7로 바꾸자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시설 투자에 혜택을 줬더니 고용창출은 되지 않고 세수도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2012년 개정안에서는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 시설 중 자동화시설을 세액 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 분쇄 기계, 절단 기계 등 고용을 대체하는 시설을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국회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세액공제 축소를 ‘로봇세’라고 한다면 그 이전의 축소 흐름도 ‘로봇세’라고 봐야하나.” 

하지만 로봇세라는 단어가 정부 관계자의 입에서 나왔다는 건 의미 있는 일입니다. 로봇의 정의가 무엇인지 따지는 과정은 ‘철학적’인 문제지만, 막상 로봇세는 곧 다가올 지도 모를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특히 로봇 탓에 생길 수 있는 세수 감소를 인지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는 건 정부의 몫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실업자가 증가하면 공동체 전체의 기능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로봇 보급에는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고 지적했습니다. 로봇의 등장으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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