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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십자군 기사와 베니스의 상인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유럽사 편)]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1(Fri) 1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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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온난기인 ‘로마 기후 최적기’에 이어지는 한랭기에는 ‘중세 암흑기’라는 시대명이 붙어 있다. 대략 서기 500년부터 1000년까지의 기간이다. 그 직전,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던 5세기 후반, 남부 유럽 해안 지방에는 이미 비(非)기독교 문명권 사람들이 출몰하고 있었다. 

 

걸핏하면 쳐들어와 불 지르고 약탈하고 사람을 끌고 가 노예로 팔아넘기는 이 사람들은 북아프리카 서부지역의 베르베르족과, 아랍 본토에서 북아프리카 쪽으로 이주한 사람 및 그 후손들이었다. 기독교계 유럽인들은 이들을 통틀어 ‘무어(Moor)’인이라고 불렀다. 무어인들이 수시로 쳐들어와 괴롭히다가 급기야 이베리아 반도의 통수권까지 장악했다. 이런 세상은 유럽인의 입장에서 볼 때 ‘암흑기’라고 할 만하다. (물론 이 이름을 붙인 근대의 역사학자들은 그런 시대적인 차이가 기후변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를 지구 위에서 볼 수 있는 과학적인 자료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구 표면, 즉 인간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명확하게 한 시대가 가고 다른 시대가 왔기 때문에 그런 시대구분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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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오는 ‘중세 온난기’, 대략 서기 1000년에서 1400년까지 400년은 기독교계 유럽인들에게 살만한 세상이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에게 빼앗겼던 땅을 되찾으려 하는 과정, 일명 레콩키스타(Reconquista)가 진행됐다. 지중해의 패권도 빠르게 기독교 유럽인들 손으로 넘어왔다. 특히 지중해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이탈리아 남부의 베니스와 제노바를 중심으로 한 항구도시들은 이전에 없던 번영을 구가했다. 

 

그런데 이 번영의 기원을 따져보자면 그 이전 한랭기 주역이었던 아랍인들로부터 시작된다. 이전 한랭기가 끝나가는 것과 거의 때를 같이해서 이슬람 세력이 약해지고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에 독립운동이 확산되면서, 아랍인 입장에서는 배를 만들 목재를 조달받기 어려워졌다. 한편 온난기가 되어 가까운 알프스 산지에서 삼림이 더욱 풍성해졌다. 알프스 산기슭에 위치한 항구도시 제노바와 베니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DNA 안에 있는 상고대 에트루리아 시절 교역의 노하우를 십분 발휘했다. 필사적으로 배를 유지하려는 이슬람 세력에게 목재를 비싸게 팔아 엄청난 이익을 거두었던 것이다. 

 

이어서 유럽의 상인들은 알프스 산맥에서 지중해 사이의 지역을 베이스캠프로 해서, 위축돼가는 아랍세력 대신 아시아와의 교역을 장악해갔다. 목재를 파는 데서 오는 이익 외에도, 아시아에서 들어오는 향료와 비단 등을 유럽 전역을 상대로 팔아 막대한 부를 챙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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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유럽인의 교역활동에는 끊임없는 위협이 있었다. 아직도 전력(戰力)이 만만치 않게 남아 있던 이슬람계 세력들이었다. 유럽의 상인들은 이들을 제압할 수 있는 유럽 병사들이 필요했다. 마침 별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병사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여건도 형성됐다.

 

이 시기, 즉 중세 성기(High Middle Age)라고 불리는 시기는 ‘인구 폭증의 시기’라고 불릴 정도로 급격히 인구가 증가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1000년에서 1300년대 중반까지 유럽의 인구는 대략 3천5백만 명에서 8천만 명으로, 두 배 이상 껑충 뛴다.

 

이렇게 유별나게 인구가 폭증한 이유로 일단 출산환경이 안정됐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 시기인 중세 전기(Early Middle Age), 즉 중세 암흑기 동안, 지중해 북쪽, 유럽의 내륙지방은 끊임없는 민족이동으로 소란스러웠다. 한랭기를 맞아 식량이 줄어든 북부 지역 사람들이 삶의 기회를 찾아 움직였던 것이다. 이들이 살만한 곳을 찾아 원주민을 힘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면 그 원주민들은 거기서부터 또 이동을 시작한다. 유명한 게르만 대이동 현상은 이때 생긴 일이다.

 

온난기가 되어 비교적 먹을거리가 안정되자 민족 대이동도 일단 안정됐다. 하지만 식량생산이 늘어나는 만큼 인구도 사정없이 늘어난다. (그런 점들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이 시기는 다른 시기에 비해 인구 팽창이 유별나게 두드러진 편이다. 흔히 역사가들은 대체로 ‘이유는 잘 모르지만’ 이라는 토와 함께 이 현상을 기술한다. 필자로선 여기에 기후변화 외에도 또 다른 거시적 환경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역시 설명이 길어지기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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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인구 압력은 이 시기에 ‘대(大)벌목의 시대’라는 별명도 가져다주었다. 식량을 증산하기 위해, 줄기차게 숲의 나무를 잘라내고 농지로 만들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잘라낸 목재로는 배도 만들었지만 건축자재, 특히 성당 건축용으로 더 많이 쓰였다. 그래서 이 시기는 ‘위대한 건축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건축물을 많이 낳기도 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샤르트르 대성당, 쾰른 대성당 등 유럽의 유명한 고딕 성당들은 대개 이때 처음 지어진 것들이다. 

 

13세기 말이 되자 웬만큼 높은 지대의 삼림까지 더 이상 개간할 여지가 없어졌을 정도로 사라졌다. 중세 후기의 혹심한 기근과 흑사병 등 질병의 창궐이 유럽 전역을 휩쓴 것은 이렇게 환경을 함부로 훼손한 결과라고 보는 게 환경역사학의 일반적 견해다. 거시적으로 보면 급격히 팽창한 인구가 어느 정도 정리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환경역사서 중에 손꼽히는 역작으로 《숲의 서사시》(1989)라는 책이 있다. ‘나무’를 중심 테마로 해서 유럽과 근대기 신대륙 흥망 과정을 풀어낸 책이다. 저자인 역사인류학자 존 펄린은 바로 이런 인구팽창과 그에 따른 생태계 파괴, 거기서 이어지는 식량부족이 ‘십자군’ 원정의 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십자군이란 1000년대에서 1200년대까지, 그러니까 거의 정확히 중세 성기동안, 유럽 기독교 국가 사람들이 지중해를 건너 이슬람국가들을 침공하기 위해 산발적으로 조직한 군사 프로젝트다. 서유럽과 중유럽, 그리고 남유럽의 이베리아 반도 및 발칸 반도 등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교도로부터 예루살렘 성지를 되찾는다는 목적의식을 맘에 품고 베니스 등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예루살렘이 있는 지중해 동쪽  해안 쪽으로 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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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왕 필립 2세가 십자군을 이끌고 지중해 동쪽 해역에 도착하는 장면을 담은 태피스트리© 사진=  위키미디어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사람은 십자군을 기획하고 조직하는 측과 거기 가담해서 동쪽으로 가는 측,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뉠 수 있다. 독려하는 쪽은 지중해 교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던 남유럽의 상인들과, 이들과 연대해서 기독교 세력을 확장하려던 종교계였다. 참여하는 쪽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갑자기 인구가 늘어나 고향인 농촌공동체에서 먹고 살 길이 없어 자의반 타의반 방출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중세 후기 온난기는 그 이전 시기인 한랭기에서 아랍인이 주역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유럽인들이 지중해의 주역이 되는 해양활동의 시대가 된다. 배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상인과 군인. 중세 성기 상황을 그렸던 두 가지 대표적 작품, 즉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과 월터 스콧의 소설 《십자군의 기사》는 이 두 유형의 인물상을 후대 사람들에게 잘 묘사해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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