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취임 100일 성적표·정치] 급한 불 껐으나, 갈수록 첩첩산중
  • 박혁진 기자·손구민 인턴기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7 10:50
  • 호수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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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노력 불구하고 야당과 대립각…4强 대사도 아직 임명 못해

‘나라다운 나라’.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선 선거운동 기간 내내 내세웠던 캐치프레이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란 헌정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상황 가운데 대통령직에 오른 문 대통령에게 취임 후 100일은 그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적임자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확인시켜줘야 하는 기간이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란 말처럼 정부 초기 내각 인사를 통해 이 정부가 대통령의 사익(私益)이 아닌 국민 전체의 공익(公益)을 위해 존재한다는 안도감을 국민에게 줄 필요가 있었다. 최악으로 치닫는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해법도 제시해야 했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리더십 공백 때문에 발생한 주변국들과의 외교문제도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제를 풀어내기 위한 소통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보여줘야 했다. 그렇다면 과연 정치·외교·안보 분야에서 지난 100일 문 대통령이 제시한 방향과 앞으로 주어진 과제는 무엇일까.

 

정치 - 소통 노력 돋보였지만, 인사 관련 말바꾸기로 생채기

문재인 정부는 여소야대의 정치적 지형에서 출범했다. 모든 정책 추진 과정에서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문 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취임 첫날 야당 대표들을 잇달아 만나며 협조를 요청했다. 5월19일에는 여야5당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전 정부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런 소통 노력에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과 G20 정상회의를 마친 7월19일에는 여야 대표를 불러 회담 성과를 설명하는 등 ‘협치’를 위한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야당과의 관계에 있어서 마찰은 피할 수 없었다. 당장 문재인 정부 첫 내각을 인선하는 과정에서 파열음이 나왔다. 엄밀하게 따지면 문제를 제공한 것은 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공약으로 5대 비리(부동산투기, 병역면탈,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에 연루된 인사는 고위공직자에서 배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지명한 상당수 장관 후보자들이 5대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났다. 갑작스러운 정부 출범으로 인해 인사 검증에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지만, 이런 의혹들에 ‘5대 비리’란 프레임을 씌워 공약을 내건 것은 대통령 자신이었다. 야당은 대통령의 공약파기라며 문 대통령을 몰아 세웠다.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는 시사저널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대통령이 인사 배제 5대 원칙을 직접 얘기하고 약속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5대 원칙을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먼저 ‘못 지킨다’ ‘어렵다’ 혹은 ‘원칙 어긋나는 부분 있으면 이실직고하겠다’고 설명해 줘야 순서가 맞다. 그런데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낙마 때도 그렇고, 충분한 설명이 없지 않았나.”

 

문 대통령은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경환 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장관 후보자들은 그대로 임명했다. 야당의 반대가 많았던 것과 달리 인사에 대한 여론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평가가 많아 보인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지지율이 출렁였던 것이 비하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인사 문제로 그렇게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문제가 많았다고 보는데 결국 임명된 것은 아쉽지만 여성장관 비율 30%를 달성한 것 등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며 “무엇보다 국민의 지지가 압도적이라면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사를 강행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다음 인사다. 문재인 정부 첫 인사는 ‘현실론’을 이유로 5대 비리 연루자의 임명을 강행했지만, 다음 인사에서도 같은 사례가 발생할 경우 정치적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문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어떻게 재발방지 시스템을 만드느냐가 이 정권에도, 그리고 공직사회에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문제 - 北 무시 전략에 뾰족한 해법 없어

대북문제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 앞에 놓인 가장 큰 난제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대북 압박 기조 속에 남북관계가 파국을 맞은 상태에서 취임했다. 이에 ‘달빛정책’이라는 대북유화책을 내세우며 관계복원을 시도했으나,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도발로 이렇다 할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문 대통령 취임 100일 동안 정부는 민간단체의 대북접촉을 잇따라 승인하는 등 물밑에서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인도적 지원과 민간교류 등에서 먼저 남북관계의 물꼬를 터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우리가 독자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았다. 당연히 북한도 호응이 없다. 북한은 6·15 남북 공동행사 제안을 제외하곤 남쪽 민간단체의 접촉 요청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공동개최도 제안했으나, 북한은 이에 대해 이렇다할 대답도 내놓지 않았다. 어렵게 이뤄진 6·15 공동행사 논의조차 성과를 내지 못하고, 남북 분산 개최로 결말을 맺었다. 당분간 민간교류는 동력을 찾기 어려운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남북 간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남한 측의 대화제의를 무시하고 계속된 미사일 도발로 자신의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다. 정권 초반 북한의 도발은 새로운 정부에 대한 북한의 기싸움 정도로 여겨지는 편이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도발은 과거의 도발과는 다른 분위기다. 특히 7월에 발사한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미국 본토까지 사정권 안에 두면서 미국 정부를 자극하고 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사드 추가 배치를 공언하는 등 강경대응을 예고하고 있지만, 오히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진보진영 내의 갈등만 격화되고 있다. 보수진영 역시 문 대통령의 안일한 대응이 ‘코리안 패싱(Korean Passing)’을 자초했다며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남한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채 미국을 직접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쓴다면 우리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데 이 정부의 고민이 있다. 또한 북한의 도발이 거세질수록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쉽지 않은 것도 고민이다. 이에 대해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시사저널에 “북한이 도발을 이어나갈수록 우리는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미·중 사이 신냉전 체제에 휘말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북한이 도발을 멈추지 않는 이상 우리가 미·중과 균형 있는 관계를 형성하긴 어렵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북핵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대북정책은 지난 100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고 교수는 “갓 출범한 정부가 지금부터 대북 정책을 구체화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며 “다만 문재인 정부가 지난 (보수정권) 9년과는 다른 메시지를 던지는 만큼 북한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치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대화를 추진하는 대북정책보다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치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30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외교 - 민감한 문제로 꼬여가는 주변국 외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발생한 외교 공백을 문재인 대통령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인 5월11일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주변 4강과 EU까지 특사를 임명해 파견했다. 그뿐만 아니라 6월 말과 7월 초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미국과 중국, 일본 정상과 회담을 가지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특사를 파견하며 4강 외교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것 자체는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그 성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많다. 워낙 상대국가와 민감한 문제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을 다시 한 번 공고히 했지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이라는 숙제를 떠안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 한·미 FTA 재협상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의도를 여러 차례에 걸쳐 분명하게 드러냈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과 이해찬 중국 특사, 홍석현 미국 특사, 문희상 일본 특사(오른쪽부터)가 5월2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 옆 소회의실에서 열린 미·중·일 특사단 간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사드 배치로 인해 악화된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도 문 대통령이 취임 100일 동안 노력을 기울인 분야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전 정권이 밀어붙였던 사드 배치의 속도를 늦추며 중국을 달랬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중국의 경제보복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이를 회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일본과는 좀처럼 관계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에서 맺은 위안부 합의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이에 대한 찬성여론이 높지만, 일본 정부는 재협상 불가 방침을 고수하며 한국 측의 성실한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일본 신임 외무상에 임명된 고노 다로는 기존 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겠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 일본 등과 각각 첨예한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란 변수까지 감안하면 동북아 주변국가들과의 외교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이 취임 100일이 다 되도록 주요 4강의 대사를 임명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현실적 고민이 반영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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