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론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 이예지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4 17:22
  • 호수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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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론 20주년 앨범 《We Are》로 다시 무대 위에 선 강원래와 구준엽

 

1996년 6월, 여름 가수를 외치며 대한민국을 《쿵따리 샤바라》 열풍의 도가니에 빠트렸던 클론. 이후 《도시탈출》 《돌아와》 《초련》으로 4년간 한국 가요계를 점령했던 클론이 17년 만에 다시 새로운 음악을 들고 대중 앞에 나섰다. 20주년 앨범 《We Are》를 들고서. 1969년생 동갑내기 친구인 강원래와 구준엽. 그들에겐 위기가 곧 기회였다.

 

2000년 강원래가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일 정도의 큰 사고였다. 구준엽은 절망에 빠진 친구의 곁을 지켰고, 강원래는 자기 때문에 한순간에 인생이 바뀐 친구 구준엽을 채찍질하고 응원했다. 위기를 딛고 일어난 강원래는 안무가로 제2의 인생을 살며 강연에서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구준엽은 39살 늦은 나이에 음악 공부를 시작하더니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DJ로 꼽힌다.

 

© 사진= 우먼센스 제공

 

“쟤가 나 같고, 내가 쟤 같은 그런 사이”

 

강원래와 구준엽은 올해로 30년째 우정을 자랑한다. 미술학도였던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만나 서로 다른 점에 끌려 친구가 됐고,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같은 추억을 공유했다. 겪지 않아도 될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그들은 단단해졌고, 위기를 극복하며 하나가 됐다. 30년 전 고등학교 동창으로 처음 만났던 강원래와 구준엽은 그중에 20년을 ‘클론’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다.

 

“사람들이 ‘너희는 대체 무슨 사이냐?’고 물어봐요. 우정이나 의리를 생각하면서 관계를 맺은 게 아니라, 우리 사이를 정의하기가 참 어렵네요. 여학생들한테 인기 좀 얻으려고 그 앞에서 춤추다가 원래를 알게 됐고, 그게 계기가 되어 클론을 만들었죠. 그렇게 30년을 함께 보냈네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같이 견뎌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죠. 우린 굳이 설명할 필요도, 설명할 이유도 없는 ‘그냥’ 친구예요.”(구준엽)

“30년 동안 이렇게 우정을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 30년을 잘 흘려보냈을 뿐이에요. 시간은 당연히 흐르는 거니까 우리의 시간도 자연스럽게 흘렀고, 그 시간을 공유했고, 그 안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냈을 뿐이죠. 그냥 인생의 한 부분이랄까요? 쟤가 나 같고, 내가 쟤 같은 그런 거요.”(강원래)

20대 초반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댄스가수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리다가 불의의 사고로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말 그대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징글징글한’ 사이라는 거다. 직선적이고 다혈질인 강원래와 달리 극단적으로 소심한 구준엽.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지만, 이제는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함께 가야 한다며 웃어 보인다. 

 

“서로가 서로에게 톱니바퀴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준엽의 빈 곳을 제가 채워주고, 저의 부족한 부분을 준엽이가 채워주는 식이죠. 만약에 고등학교 친구가 아니라 사회생활 중에 만났더라면 이렇게 오래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강원래)

새 앨범 《We Are》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루 18시간 이상 작업실에서 곡 작업에 몰두했던 구준엽이 앨범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앨범은 모두 구준엽의 손때가 묻은 곡으로 채워졌다. 

 

“저는 원래보다 잘하는 게 없어요. 춤도 노래도 원래가 월등히 잘했죠.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의 재능을 따라갈 순 없었어요. 제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인내심이니까 힘들어도 참고 작곡 활동에 몰입했고, 그러던 중 작년에 우연히 제 작업실에 들른 제작자 김창환씨가 ‘클론 앨범으로 내보자!’고 하는 거예요. 클론이 데뷔한 지 정확히 21주년이 되는 해에 제가 작업한 곡을 세상에 들려줄 수 있다니 얼마나 의미 깊은 일이에요. 뿌듯하고 기분 좋아요.”(구준엽)

“밤이면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느라 연락도 잘되지 않던 준엽이가 혼자서 이런 곡을 만들었다는 게 놀라웠어요. 사실 그동안은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듯 ‘DJ로 성공했구나’ 정도였지, 준엽이가 무슨 일을 하는지 크게 관심 없었거든요. 어느 날 술 마시고 준엽이 작업실에 갔다가 노래를 들었는데 ‘이건 되겠는데’ 싶었죠. 준엽이 덕분에 ‘아직 살아 있는 클론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이 이뤄진 것 같아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 있는 가수로 기억되고 싶거든요. 준엽이가 그 꿈을 이뤄준 셈이죠. ‘클론이 멈추는 바람에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이 끊겼다’는 평가를 들으면 기분 좋아요. 앞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댄스 문화를 이끌어갔던 클론이고 싶어요.”(강원래)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같은 추억을 쌓아온 강원래와 구준엽은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같은 방향이었다. ‘꿈’이었다. 

 

“지금은 연애보다 일이 더 좋아요.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곡 완성됐을 때 그 희열은 마약 같죠. 좀 더 나이 먹으면, 해 보고 싶은 게 많아도 나를 찾아주는 곳이 없을 테니 지금 더 열심히 해야죠. ‘구준엽이 만들면 된다’는 인식이 생길 때까지 앞만 보고 달릴 겁니다.”(구준엽)

“2004년부터 ‘꿈’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어요. 제가 꾸는 꿈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저는 어떻게 꿈을 키워왔는지를 전하죠. 클론 활동 당시로 돌아가고 싶었고, 아이를 갖고 싶었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다 이뤘어요. 앞으로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거예요.”(강원래)

강원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고 싶은 건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은 대화 곳곳에도 묻어 있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여자의 남편, 한 아이의 아빠로 살고 있는 강원래. 그가 꿈꾸는 완벽한 미래의 마지막 퍼즐은 바로 가족이었다. 

 

“저는 보통 남편, 보통 아빠예요.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평범하게 살았으면 해요.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산다고 하잖아요. 우리 가정도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리고 평온하게 흘러갔으면 좋겠어요. 클론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이유도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금수저’예요. 다 가진 남자거든요(웃음).”(강원래)

진정한 의미의 ‘벗’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각기 다른 두 남자가 만나 평생 친구가 된 강원래와 구준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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