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들은 왜 詩 낭독회에 열광하나
  • 홍주환 인턴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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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카페 중심으로 소규모 시 낭독회 인기…SNS 타고 커진 시에 대한 관심 반영

 

7월27일 저녁 7시. 금세라도 비가 올 것 같은 여름밤이었다. 기자는 신촌역 근처의 카페인 ‘카페 파스텔’로 들어섰다. 카페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시집이 우선 눈에 띄었다. 한켠에 마련된 작은 무대 앞에는 좌석에 앉아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가운덴 기자처럼 혼자 온 이도 보였다. 심보선 시인의 신간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문학과지성사) 출판을 기념한 작가의 시 낭독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8시 정각, 심 시인이 무대 위에 올랐다. 관객석은 조용했다. 박수를 치는 사람도 없었다. 관객들은 무대 위 의자에 앉아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는 오늘의 주인공을 가만히 바라봤다. ‘시’라는 단어가 주는 정서만큼이나 차분한 분위기에서 낭독회는 시작됐다. 

 

이날 심 시인은 자신의 시 15편을 낭독했다.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에 수록된 신작들이었다. 낭독회는 시인이 연달아 시 5편을 낭독하고 5분의 휴식시간을 갖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관객들이 앉은 곳에서 시인이 있는 무대까지는 열 발자국 남짓한 거리. 기자가 앉은 가장 뒷줄에서도 시인의 표정, 손짓이 모두 또렷이 보일 정도였다.

 

노인은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은 살 수 있었다고 

최고의 악동은 살아남는다고 

지구 어딘가에서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반드시 만날 거라고 

 

...(중략)

 

낮엔 젊었고 밤엔 늙었다

낮에 노인을 만났고 밤에 그 노인이 됐다

 

밤은 날마다 좋은 밤이었다

 

-‘좋은 밤’, 심보선

7월27일 신촌에서 열린 심보선 시인(왼쪽)의 시 낭독회 모습. © 사진=송혜경 제공

 

‘읽는’ 시에서 ‘듣는’ 시로 트렌드 변화

 

시 낭독회가 신촌·합정·연희동의 독립서점‧카페를 사이에 조용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심보선 시인처럼 ‘인기 있는’ 작가의 낭독회 같은 경우는 좌석 예약을 하기도 쉽지 않다. 유희경 위트앤시니컬 대표는 “유명시인의 낭독회는 매진이 빨리 된다”고 말했다. 기자 역시 이번 낭독회 자리를 구하기 위해 일주일 전 주최 측인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간신히 예약에 성공했다. 낭독회 티켓은 순식간에 ‘완판’됐다. 

 

최근의 시 낭독회의 인기몰이는 한국 서점가에서의 ‘시’의 인기가 고스란히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 새 시집 판매량이 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시집 판매량은 23만9000권이다. 전년 동기(18만8000권) 대비 27.1% 증가한 수치다. 2016년 한해 시집 판매량 역시 전년 대비 36% 정도 증가했다. 강윤정 문학동네 편집자는 “노래에 관심이 생기면 가수를 직접 보고 싶듯, 시에 대한 관심도 시인의 인기로 이어진다”며 “시인을 만날 수 있는 낭독회가 인기를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독립서점‧카페를 중심으로 열리는 시 낭독회는 대체로 소규모로 진행된다. 대부분은 시인을 포함해 10~20명 정도의 사람들만 모인다. 6월 연희동 독립서점인 ‘밤의서점’에서 열렸던 시인이자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나희덕의 시 낭독회 역시 참가자를 10명 내외로 제한했다. 사람들은 소규모 낭독회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었다. 김미정 밤의서점 점장은 “기존의 문학단체‧기관이 주도하는 낭독회나 ‘작가와의 대화’는 규모가 커 참석자들이 강의를 듣는다는 딱딱한 느낌을 받는다”며 “사람이 적으면 시인을 가까이서도 볼 수 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낭독회 관객들 역시 작은 규모가 주는 편안함을 즐기는 분위기다. 평소 시 낭독회를 자주 다닌다는 박수빈씨(24)는 낭독회를 ‘일상이 지칠 때 갖는 휴식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심보선 시인의 낭독회에서 만난 황지혜씨(23)는 “‘읽는 시’에서 얻는 감동과 ‘듣는 시’에서 얻는 감동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시를 눈으로 읽는 것보다 음성으로 듣는 데서 위안을 얻는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친구가 위로를 해줘도 문자로만 해줄 때랑 직접 전화로 해줄 때랑 받는 감동의 크기가 다르지 않냐”며 “글로만 시를 읽었을 때보다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시를 들으면 더 위로가 된다”고 설명했다.  

 

시 낭독회의 주요 참여층은 여성이다. 사진은 6월 연희동 독립서점 '밤의서점'에서 진행한 나희덕 시인(왼쪽 가운데)의 시 낭독회 모습. © 사진=밤의서점 제공

 

시 낭독회 주소비층은 2030 ‘여성’

 

시와 낭독회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게 된 데엔 SNS의 역할이 컸다.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이 자주 읽히는 SNS는 비교적 단문인 시에 적합한 플랫폼이다. 실제로 SNS에서는 많은 시가 공유되고 있다. 7월27일 현재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검색창에 ‘#시’라고 검색해 나오는 게시물만 58만8337개였다. ‘#소설’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물은 12만개 정도에 불과했다. 해시태그만으로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은 시가 공유되는 수가 상당하단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보니 낭독회의 주요 참석층은 20~30대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친숙하게 사용하는 세대가 새로운 시 소비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심보선 시인의 낭독회에 참석한 관객 대부분이 2030 세대였다. 심보선 시인도 SNS에서 시구가 자주 공유되는 시인이다. 

 

시 낭독회가 전 연령층의 찾는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잡기엔 가야할 길이 멀다. 무엇보다 시를 소비하는 성별 편중 현상이 심하다는 게 한계로 지적되곤 한다. 홀로 심보선 시인의 낭독회를 찾은 남성 관객 김상명씨(35)는 “친구 중에 시를 좋아하는 남자는 저 뿐”이라며 “낭독회에 오면 왠지 모를 유대감이 들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에게 낭독회는 숨겨뒀던 시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는 기회이기도 한 셈이다.

 

기자가 찾은 낭독회에도 50명의 참석자 중 남자는 8명이었다. 남자 관객의 대부분은 혼자 온 경우였다. 심 시인도 낭독회 중간에 “남자들은 시를 잘 안 읽는다”며 “시집 시장을 버티는 건 여성 독자들 덕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2016년 교보문고 통계에 따르면 2011~2016년간 시집을 가장 많이 구매한 독자층은 ‘20대 여성’이었다. 독자층도 여성이 63.2%로 36.8%인 남성보다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연령대별로 비교했을 때 남성이 여성보다 비중이 큰 연령대는 60대 이상뿐이었다. 시․낭독회가 남자에겐 아직 낯선 문화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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