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면 “적폐세력이 현 정권에 코드 맞추려한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8.0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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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1일째 복직 기다려.... “복직은 투쟁의 끝 아닌 시작될 것”

 

노종면 YTN 해직기자는 유독 사원증에 대한 ‘맺힘’이 깊다. 갓 입사한 사원들도 저마다 목에 걸고 다니는 별 것 아닌 사원증 하나가 지난 시간 그에겐 설움이었다. 해직자 신분이 돼 출입증을 빼앗긴 후로 그는 9년 째 사옥 1층 안내데스크에서 일일 방문증을 받아 드나든다.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아들 때마다 묘한 외로움, 씁쓸한 굴욕감을 맛본다고 한다. ‘복직 후 첫 출근을 상상해본 적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잠깐 생각하던 그는 “사원증을 목에 건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답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7월31일 해직 3221일째를 맞은 노 기자는 지난 시간 오랜 일터를 오가는 ‘방문객’이었다.

 

계절이 서른 번도 더 바뀌는 동안 그는 일터를 되찾기 위해 멈춤 없이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복직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지난달 문재인 정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중 해직언론인 복직이 포함됐고 사측과의 복직 협상도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 말한다. 지난 9년 동안 무너진 언론을 일으키고 신뢰를 회복하는 데 앞으로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토록 바라온 복직이 싸움의 끝이 아닌 시작인 이유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 © 시사저널 최준필

 

6월11일 YTN 사장 응모한 직후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공모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당시엔 이런 결과 전혀 예상 못했나.

 

초반엔 못했다. 사실 탈락이다 아니다 생각 자체를 않고 도전을 결정했다. 하도 내 결정이 갑작스럽다보니 주변에서 “이미 (사장 되는 걸로) 얘기가 다 된 거지?”라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다.

 

 

탈락 통보는 어떻게 받았나. 이후 진행될 재공모에 지원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곧장 내린 건가.

 

문자로 탈락을 통보 받았다. 통보 받고 거의 바로 결단을 내렸다. 주변 사람들 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사장 지원도 노사가 8년 만에 합의해 부활시킨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 제도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를 견제하고 감시하려 한 의도가 더 컸다. 

 

 

이번 공모 무산 자체가 노 기자를 떨어뜨리기 위한 계획된 스텝일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나 역시 그렇게 보고 있다. 1차 서류에 합격한 4명 중 누굴 사장으로 뽑더라도 YTN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졌을 거다. 일부 위원들이 담합으로 나를 0점 처리한 부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누가 되든 구성원들이 용납하지 않았을 거다. 공모는 막바지로 가는데 나를 뽑긴 싫고 이 상황을 벗어날 길은 없으니 그냥 판을 엎어버린 거다.

 

 

0점을 준 위원 3명의 교체를 강하게 요구했다. 교체 가능성 얼마나 있나.

 

비관적이다. 이번에 사추위 실무를 총괄한 사람이 YTN 기획조정실장이다. 그런데 그가 공모 무산 이후 사내 회의 자리에서 이번 사추위는 아무 문제없었다고 발언했다. 이는 이들 위원들을 대변하고 우리의 교체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거다. 그가 이후 재공모 과정까지 진행한다면 또다시 정당성은 확보되기 힘들 거라 본다. 

 

 

재공모에서 기대에 어긋난 인사가 이뤄지면 어떡하나.

 

첫 공모가 이렇게 엎어지면서 사장 선출에 더 큰 국민적 관심이 쏠린 상태다. 그 마당에 또다시 장난을 치겠나. 다만 재공모 땐 응모에 일정한 자격 제한을 둬야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첫 공모 때 자격조건이 아예 없다보니 장난으로 지원한 듯한 후보들도 있었다. 미디어에 전혀 이력이 없는 열아홉 살 무직의 후보자가 사장에 응모하기도 했다. 

 

2008년 9월25일 전국언론노조 YTN지부 조합원들이 경찰 출두를 앞두고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원을 고소한 구본홍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사내 개혁 방해 세력 여전히 존재한다”

 

노 기자는 사장 공모 탈락 직후 올린 SNS 글에 자신의 사장 도전을 방해한 사내 존재를 ‘X’로 지칭해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낳기도 했다. 그는 “X라는 표현으로 궁금하게 한 책임은 있지만 그 존재를 특정하고 찾아내는 숨바꼭질로 이어지진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저 YTN 내부에서 여전히 개혁을 방해하고 있는 ‘세력’을 지칭한 것으로 받아들여달라는 것이다. 

 

 

지난 9년, 비단 사장 한명만이 아니라 ‘X'로 지칭한 세력들이 사내에 번질 대로 번졌을 텐데.

 

누가 적폐였는지, 누가 이 개혁에 지금도 반대하고 있는지 모두 분명히 밝히고 가야 한다. 그동안 보직을 누려왔던 분들이 시대정신 맞게 알아서 퇴각해주면 좋을 텐데 여전히 누리려만 하고 있다. 여기에서 ‘변종 적폐’가 시작되는 거다. 이들부터 반드시 책임을 묻고 넘어가야 한다. 그 과정을 마치 핏물 뚝뚝 떨어지는 보복으로 묘사하는 세력이 있는데, 이 역시 개혁을 방해하려는 의도다. 

 

 

역시 오랜 기간 경영진과 싸워온 MBC 상황은 어떻게 보는가.

 

MBC는 우리보다 상황이 더 어렵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선 훨씬 더 힘들었다.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노조를 탄압하고 방송일선에서 배제시켜버리는 게 다반사 아니었나. MBC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좀 있다. 방송에선 경쟁자지만 싸움에선 늘 동료였다. 한때 이런 생각도 했다. 이러다가 우리가 이 꺾인 무릎을 다시 못 세우는 것 아닌가 하고. MBC도 YTN도 지금 다시 꺾인 무릎을 세우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언론 다루는 방식과 전략에 차이가 좀 있었나.

 

본질은 같다. 단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계승자였다. 이명박 정부 때 이미 촘촘하게 장악을 해놨고 말 안 듣는 경영진들은 가차 없이 바꾸는 아주 폭압적인 구조를 굳혀놨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특별히 더 손을 안 대도 되는 상황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구본홍·배석규·조준희 세 사장을 거쳤다. 누가 가장 맞서기 힘들었나.

 

굳이 한명 꼽자면 5년 이상 역임한 배석규 전 사장이다. 그를 언론의 악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2009년 그가 사장이 될 무렵 국무총리실에서 작성한 민간인 사찰 보고서가 2012년 뒤늦게 공개된 바 있다. 그 안에 배 전 사장은 ‘현 정부에 충성심이 돋보이는 사람’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그는 정말 충성심 있게 회사를 일사천리로 장악해갔다. 그나마 형식적으로 있던 사추위도 없애고 반발하는 후배들은 지방으로 유배 보냈다. 지금도 자리를 옮겨 지위를 누리고 있다.

 

 

현재 케이블TV방송협회장 역임하고 있다.

 

희한하게 토사구팽(필요할 때 쓰이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린다) 당한다는 말이 유독 YTN 출신자들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의미겠나. YTN이 그만큼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기여한 바가 컸다는 거다. YTN이 선제적으로 정부에 복종하고 방송을 바쳐 이후 MBC, KBS 언론장악의 모델이 돼줬다.

 

(왼쪽부터) 현덕수,조승호, 노종면 YTN 해직기자가 지난 겨울 촛불집회 현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2008년 YTN 사장 낙하산 인사에 반발해 해고된 YTN 6명의 기자 중 이들 3명은 지금까지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 사진= ytn 노동조합 페이스북

 

“정권 교체 되니 복직 협상 먼저 제안해 와” 

 

해직 3221일째다. 그만하고 싶은 순간 있었을 텐데.

 

솔직히 말하면 크게 없었다. 2012년 대선 개표방송 보면서 비슷한 감정이 잠깐 들긴 했다. ‘다음 대선인 2017년에도 언론개혁과 반(反)하는 세력이 정권을 다시 잡는다면 그때 난 어떨까’ 떠올렸었다. 못 버틸 것 같았다. 2016년 총선 결과를 보고 결단하자 생각했다. 그런데 다행히 그 결과에서 희망을 봤다. 조금씩 기대를 키워가며 대선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왔다. 2012년 대선 직후 그 잠시가 최대 고비라면 고비였다.

 

 

얼마 안됐지만 새 정부 들어 변화 분위기 감지되나.

 

YTN 내 적폐 세력이 현 정권 코드에 맞춰 자리보전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MBC는 정권이 바뀌어도 기존의 방식을 밀어붙이며 여전히 자기들의 성을 지키려 한다. 그런데 YTN 경영진들은 정권이 교체되기도 전에 자기들 살기 위해 지난 9년 간 한마디 없던 복직 협상을 먼저 제안했다. 그때 인간적인 자괴감이 들었다. 최소한 ‘늦게 제안해 미안하다. 이제라도 잘 해보자’라고 한마디라도 하는 게 기본 아닌가. 정치적 의도가 뻔히 보였다.

 

 

복직이 우선이지만 그게 끝은 아닐 것 같다.

 

언론개혁을 위한 치열한 투쟁은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다. 복직이 목표의 전부였다면 해직 초반 이명박 정부에서 ‘반성문 쓰면 다시 들여보내준다’고 했던 그 때 이미 들어갔을 거다. 

 

오랜 일터는 잃었지만 지난 9년 간 그는 언론활동을 쉬지 않았다. ‘뉴스타파’, ‘국민TV’, ‘일파만파’ 등 대안미디어 필드에서 앵커 혹은 대표이사로 ‘열일’했다. 그 때문에 지금 그가 가진 대안 미디어의 비전과 한계에 대한 고민도 남다르다. YTN 복직을 대비해 현재 대표로 있는 ‘일파만파’에 인력을 충원하고 운영 교육도 진행하는 등 언론으로서 숨통을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나와서도 YTN 뉴스는 계속 챙겨봤나.

 

한때는 모니터링 하느라 일부러 챙겨봤고 한때는 일부러 안보기도 했다. 최근엔 좀 챙겨봤다.  

 

 

보면서 어땠나. 제대로 된 보도가 되지 않는다는 걸 느낄 때 많았나.

 

비중 있게 다뤄야 될 것을 중간에 툭 끊어버리고, ‘보도의 다양성’이라는 명분 아래 민감한 이슈를 회피하는 모습이 너무도 많이 보였다. 중계 연결해 보여줘야 하는 현장을 보여주지 않거나 보여주더라도 재빨리 끊어버리는 모습, 그리고 김무성 전 대표 사위 마약 의혹이 터졌을 때 ‘딸 가진 아빠의 심정 이해한다’는 발언을 한 진행자가 이후 계속 방송을 진행하는 이런 모습들이 지난 몇 년, 바로 YTN의 민낯이었다.

 

 

기존 미디어가 보인 이러한 문제 속에서 바로 대안미디어가 탄생했다. 국민적 관심은 높지만 수익 면이나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을 텐데.

 

대안 미디어는 대체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수익 내기 어려운데 또 제작비가 안 들어가는 건 아니고. 대안 미디어 탄생이 보수정권 9년 간 기존 공영 미디어가 제 역할을 못해 이뤄진 만큼, 앞으로는 기존 미디어에서 이들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미디어가 주도해 이들과 상생하는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하며, 그 책무를 가장 무겁게 갖고 있는 매체 중 하나가 바로 YTN이다.

 

 

상생의 방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볍게는 공동 프로그램 제작하거나 공동 사업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시청자나 독자가 미디어 환경에서 주체가 된 지 이미 오래지 않나. 기존 언론이 이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식을 바로 대안언론에게서 배워야 한다. 대안언론은 시민들과의 교감 속에서 성장해왔다. 기존 언론이 이를 배우면서 동시에 대안 언론을 견인해가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먼저 시도하는 기존 언론사가 이후 미디어 시장에서 단연 앞서 가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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