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차량 교환 앞서 비밀유지 합의서 내민 쌍용차
  • 배동주·김성진 시사저널e. 기자 (ju@sisajournal-e.com)
  • 승인 2017.07.26 16:52
  • 호수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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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소음 결함 G4렉스턴, 새 차로 교환해 주면서 “이 사실 유포 시 민·형사상 책임”

 

쌍용자동차가 브레이크 간섭 소음이 발생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4렉스턴’을 새 차로 바꿔주면서 차주에게 차량 교환 사실에 대해선 함구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쌍용차는 합의서를 만든 뒤 차주에게 건네고, 만약 비밀이 새면 민·형사상 책임을 지우겠다는 조건도 더했다. G4렉스턴의 브레이크 소음 결함 수습을 위한 무상 수리 결정을 내리기 전 벌어진 일이었다. 쌍용차가 지난 4월 출시한 G4렉스턴은 나오자마자 품질 논란에 휩싸였다. 차량 우측쏠림과 조수석 풍절음이 빈번했다. 브레이크 간섭 소음은 보다 광범위했다. 쌍용차가 G4렉스턴 하위 트림에 적용한 ‘5링크 서스펜션’ 장착 차량을 중심으로 브레이크 부분에서 심한 소음이 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이에 대한 쌍용차의 대응은 결과적으로 고객 차별과 결함 은폐라는 악수(惡手)가 되고 말았다.

 

시사저널e가 단독 입수한 교환 합의서에 따르면, 쌍용차는 브레이크 소음을 겪고 있는 차주에게 G4렉스턴 동급 신차로 교환한다는 조항과 함께 비밀유지 조항을 적시했다. 쌍용차는 합의서 제3조에 ‘합의서 사본 등을 3자에게 공개하거나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과 ‘교환 사실 유포로 쌍용차에 피해를 끼쳤을 경우 민·형사상 일체의 책임을 진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쌍용차가 교환 합의서를 작성한 시점은 지난 6월말이었다. 쌍용차는 7월6일 전국 정비소에 관련 문제에 대한 무상 수리 지침을 전달했다. 이후 쌍용차는 “브레이크 패드와 디스크 사이 간격이 다소 좁아서 생기는 간섭 소음으로 확인됐다”며 “주행 안전과 관련한 결함은 아니지만, 무상 수리를 택했다”고 밝혔다. 비밀유지 조건 제시 이후에야 무상 수리를 결정한 셈이다.

 


 

“바꿔줄 테니 입 닫고 있으라는 것 같았다”

 

업계에서는 쌍용차가 G4렉스턴 브레이크 소음 결함 은폐에 나서다 고객 차별에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월말 차량 교환 제의를 받았다는 김아무개씨는 “쌍용차가 공식 수리지침을 내놓기도 전에 교환 제의를 먼저 해 왔다”면서 “사용자 과실, 사용 기간에 따른 추가 비용 청구는 없었지만, 상위 트림으로 교환하는 대신 차액을 지불하는 것이 조건이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결국 차량을 교환하지 않았다. 김씨는 “애초에 쌍용차가 제시해 온 상위 트림 차량과 다른 5링크 서스펜션을 알고 선택한 차량이니만큼, 해당 트림을 유지하고 싶었다”면서 “무엇보다 합의서에 적힌 비밀유지 조항을 보고 교환을 관뒀다”고 말했다. 그는 “민·형사상 책임이라는 말로 고객에게 겁을 준 뒤, 바꿔줄 테니 입 닫고 있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비밀유지 조건으로 제안받은 G4렉스턴 상위 트림 차량은 5링크 서스펜션이 아닌 ‘멀티링크 서스펜션’이 장착된 차량이다. 이에 쌍용차가 브레이크 소음 관련 원인이 5링크 서스펜션 설계에 있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실제로 차주들은 7월초부터 “쌍용차가 하위 모델의 근본적 결함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한 전문가는 “차도 사람이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지만, 그랬다면 쌍용차가 상위 트림이 아닌 5링크 서스펜션이 적용된 동일 차량으로 교환해 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초 쌍용차는 “브레이크 간섭은 모든 차에서 생기고 또 소리가 나는데, 차축 일체형인 5링크 서스펜션에서 간섭 소음이 증폭된 결과”라고 밝힌 바 있다.

 

박병일 자동차 명장은 “차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다른 장치도 아니고 브레이크에서 소음이 난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어느 순간 브레이크가 정상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 명장은 특히 “조향장치·에어백·브레이크 등은 안전과 직결된 장치”라며 “소음 심화에 따른 브레이크 변형은 제동기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관련 소송을 전담해 온 한 변호사는 “기업이 이익을 위해 합의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안전상 문제가 되는 요소를 숨긴 채 이익에 매몰되는 것은 중대한 문제”라면서 “결함 은폐가 소비자 협박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도 상당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쌍용차가 고객에게 제시한 합의서 전문


 

무상 수리해도 결함 여전…“사태 진화용 불과”

 

실제 쌍용차가 꺼내 든 합의서에 고객들 상당수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G4렉스턴 ‘프라임 트림’에서 ‘마제스티 트림’으로 차량을 교환한 이아무개씨는 “3자에게 사본 등을 넘기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밀유지 조항을 봤음에도 합의서를 작성했다”면서 “차량을 교환받은 게 맞고, 일단 교환을 받았으니까 가능하면 이 이야기가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이에 대해 쌍용차 관계자는 “수리를 받고도 개선되지 않는 차량이라고 판단돼 고객 관리 차원에서 지속적인 수리가 아닌 차량 교환 절차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합의서는 물론 교환 관련 비밀유지 조항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쌍용차가 제시한 합의서 하단에는 “‘갑’ 쌍용자동차주식회사와 대표이사 최종식”이라는 서명란이 대리인 위에 적시돼 있다.

 

한편, 쌍용차는 7월6일 무상 수리에 나섰지만, 여전히 소음 결함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쌍용차가 전국 사업소에 하달한 공식 수리지침에 따라 수리를 받았음에도 소음이 발생하는 차량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대구시 동구에 거주하는 이아무개씨는 “지침대로 수리를 받았지만, 2~3일 후 다시 소음이 나기 시작했고 점점 빈번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씨의 차량은 G4렉스턴 하위 트림인 프라임 모델이다. 이씨는 6일 공식 수리지침이 내려온 당일 서대구사업소에서 수리를 받았다. 이씨는 “쌍용차 본사 기술팀이 내려와서 직접 수리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쌍용차가 이번 G4렉스턴 브레이크 소음 결함의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사태 진화를 위해 급조된 미봉책을 내놓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쌍용차는 당초 7월20일로 예정했던 수리지침을 14일이나 앞당겨 내놓기도 했다. 브레이크 소음 결함을 겪고 있는 또 다른 G4렉스턴의 차주는 “정비소에서 이번에 새로 개선된 부품도 80%의 결함 제거 성공률을 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쌍용차 관계자는 “80%만 결함이 잡힌다는 쌍용차 정비소 설명은 사실무근”이라면서 “G4렉스턴 브레이크 디스크와 패드 간 간섭을 최소화하는 무상 수리가 충분히 진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결함 개선 성공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쌍용차는 7월초부터 G4렉스턴 하위 트림에서도 멀티링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트림을 조정했다. 쌍용차가 소음 문제의 근본 해결책을 내놓는 대신, 옵션 조정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한다는 소비자들의 지적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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