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 작가 “한국은 나무에 대한 ‘리스펙트’ 사라졌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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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나무’ 사진작가 배병우, 엘튼 존과 버락 오바마가 작품 소장

 

“제 작품의 9할이 소나무다. 사진을 찍은지 40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사진찍기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반백의 머리.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해진 피부. 한 쪽 어깨에 올려 맨 캐주얼백. 크고 거침없는 제스처와 목소리.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거장(巨匠)’의 에너지는 남달랐다. 올해 67세. 사진작가 배병우다. 

 

그의 이름 석 자가 사진을 잘 모르는 기자와 같은 일반인들에게까지 알려진 것은 아마도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열린 한미 정상회담 때문일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사진작품이 그의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영국 가수이자 세계적인 미술품 수집가인 가수 엘튼 존이 그의 작품을 산 것으로 알려진 것 역시 그의 유명세에 한 몫 했다. 그는 한국 사진작가 가운데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를 수식하는 말 중 가장 많이 쓰이는 건 역시 ‘소나무’다. 198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소나무를 찍던 그는 외국에 이름이 알려지면서부턴 국내외 가리지 않고 나무와 숲을 렌즈에 담아왔다. 경주 소나무 숲, 프랑스 왕들의 쉼터였던 샹보르 성, 프랑스 칸, 루이비통의 고향마을인 앙쉐, 제주 오름 등이 오랜 기간 그의 피사체가 돼왔다.

 

시사저널이 그를 만난 건 7월25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원장 최정화) 주최 행사장에서였다. 배 작가는 CICI가 매년 개최하는 문화소통포럼(CCF)에서 주관한 사진․영상 콘테스트에 심사위원장으로서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이날 시상식엔 대상을 수상한 강병인 캘리그래퍼(동영상), 스위스 르로제 보딩스쿨 재학생 엘로디 불라동(동영상 우수상), 주한 라트비아 대사 페테리스 바이바르스(사진 우수상) 참석했다. ‘렌즈를 통해 본 한국’라는 주제로 열린 콘테스트엔 총 101개 작품이 참여했다. 

 

사진작가 배병우 © 시사저널 이종현

 

이번 CICI 콘테스트에서 생애 첫 심사위원장을 맡으셨다고 들었다.

 

제가 이런 평가하는 것이 싫어서 교수직도 관뒀는데.(웃음) 최근 전 심사는 잘 안 다녀봐서 경향은 잘 모른다. 하지만 대체로 공모전은 내는 사람이 내기 때문에 진부한 경향이 있다. 

 

CICI의 공모전은 처음 시작해서인지, 작품들이 참신했다. 또 한국에 머무는 외교 사절들, 한국에 와 있는 다국적 기업 대표 등 참가자들이 현재 시점에서 한국 사회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고 본다. 

 

 

심사 기준 문화소통포럼인데 특별히 ‘문화적 이미지’에 신경 썼는지?

 

앞서 참여자들이 진부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사실 그들의 피사체는 어찌보면 진부할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이것을 다시 거꾸로 말하면 진부해보여도 그 안에 한국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제가 스무살 때부터 사진 찍기를 시작했다. 당시가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나오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기치가 막 나오기 시작하던 때다. 당시 외국잡지에서 사진 촬영 의뢰가 왔었는데 내가 찍었던 남사당패 사진을 보더니 극찬을 하더라. 우린 그게 너무 한국적인 것이어서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들 눈엔 그게 특별해 보인 것이다.

 

 

외국인의 눈을 통해 오히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을 수 있었다는 말로 들린다.

 

제 사진도 그랬다. 제가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소나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 한국인들은 ‘깔리고 깔린 게 소나무인데 그걸 왜 찍냐’ 그랬다. 당시의 한국은 실험 사진이 유행하던 때였다.

 

제 작품은 외국에서 먼저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는 한국과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이 다르다. 우리가 평범하게 봤던 것들이 어쩌면 한국의 ‘정수’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콘테스트에서도 그렇지만 자기 세대, 자기가 보는 시각에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가 계속 한국에서만 활동했으면 지금처럼 인지도가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하다. 주로 새벽, 동 트기 전에 작품활동을 하신다고 들었다.

 

사진작가나 사실주의 화가 등 사실을 묘사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광선이 있다. ‘빛의 마술사’라 불렸던 화가 렘브란트도 사선 45, 높이 45도 각도에서 비추는 빛을 좋아했다. 소위 ‘렘브란트 라이팅(Rembrandt Lighting)'이라 부르는 거다. 

 

제가 좋아하는 광선은 이른 아침 피사체 뒤편에서 올라오는 광선이다. ‘백라이팅(back lighting)’이다. 어떤 피사체든 백라이트를 받으면 ‘아이콘(icon)’이 된다. 제 오브제(object)인 소나무 역시 아이콘이 될 수 있다. 배경이 화이트로 처리되는 것도 백라이팅을 즐겨쓰는 이유다. 

 

 

주로 찍으시는 사진이 소나무, 숲, 바람과 같은 자연풍경, 그리고 건물 같은 공간이다. 그런 작가님을 향해 보다 현실참여적인 태도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작가가 많은 걸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일부 작가들은 유행을 많이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사진작가든, 다큐멘터리필름 작가든 각자의 작품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 또 그를 통해 이 사회에서 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작가 배병우 © 시사저널 이종현

 

그렇다면 작가님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내가 하는 역할은 인간의 삶 속에, 우리 지구에 숲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무 사진을 통해 그것을 나 스스로 학습하고 타인에게 학습시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무’야말로 선진국의 지표가 아닐까 한다.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일수록 대지 면적 대비 숲의 비중이 높다. 

 

한국의 산에 나무가 이 정도라도 우거지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전엔 다 민둥산들이었다. 그래서 한국엔 나무는 많아도 오래 된 나무, 오래된 숲이 귀하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작가님의 작품이 외국에서 인기있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제가 20년 전 독일에서 전시를 할 때의 일이다. 전시회 근방에서 나무가 죽어가고 있었다. 독일 사람들이 저에게 ‘나무가 왜 죽어가냐’고 물어보더라. 아마도 내가 나무 사진을 많이 찍고 그래서 뭔가 나무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때 내가 한 대답이 이랬다. “나무가 외로워서 그렇다.” 원래 숲이란 게 여럿이 더불어 사는건데 나무가 점점 줄고 그러다보니 혼자인게 외로워서 죽어가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었다. 그때 독일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굉장히 놀라워하면서도 공감했던 기억이다. 제가 가진 그런 정서를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면서도 좋아하는게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질문은 저도 많이 한 질문이다. 서양 사람들에게 ‘내 사진이 왜 좋냐’고 물었었다. 그랬더니 일단 제 사진에선 사진 속 숲의 정령이 나올 것 같아서 좋다더라. 동양의 산수화 전통을 사진으로 이어가고 있는 듯해서 좋다는 이도 있었다. 

 

 

숲, 자연에 대한 애착이 있으신데.

 

인간은 100년을 살지만 나무는 2만년을 살아간다. 미국만 봐도 레드우드, 세콰이어, 파인트리 등 2000년 된 것이 많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된 나무들은 지금도 성장한다. 

 

숲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상상력의 원천이 돼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선 나무에 대한 ‘리스펙트(respect)’가 사라졌다. 큰 나무도 없다. 큰 나무, 오래된 숲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다. 수많은 생명체가 더불어 사는 하나의 온전한 ‘세상’이다. 

 

외국 자연을 담는 사진을 많이 찍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우리의 자연에 가장 애정한다. 남해, 제주, 경주, 설악…. 모두 기가 막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자연을 부스러뜨리기만 해온 것 같다. 이토록 많은 길을 낸 대지를 찾기도 힘들 지경이다. 이제 우린 천천히 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무가 인간에 주는 상상력이라는 선물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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