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으로 간 탈북자들 자발적인가, 강제적인가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4 15:28
  • 호수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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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유명 탈북자 방송인 전혜성의 재입북 미스터리

 

국내에 정착했던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TV방송의 탈북자 예능 프로에 고정 출연하며 상당한 인기를 끌던 전혜성씨가 돌연 북한 대남선전 방송에 등장한 건 지난 7월16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 ‘우리민족끼리 TV’는 이날 《반공화국 모략 선전에 이용됐던 전혜성이 밝히는 진실》이란 영상을 내보냈다. 여기에는 한복 차림의 전씨가 여성 아나운서와 인터뷰 형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2년 전 북한으로 간 탈북자 출신 김만복씨도 자리해 전씨의 말을 거들었다.

 

현재 평안남도 안주에 살고 있다는 전씨는 자신이 “2014년 1월 탈북했고 지난 6월에 돌아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임지현’이라는 이름의 가명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서울 생활에 대해 언급하며 “(한국에서 방송국이) 시키는 대로 악랄하게 공화국을 비방하고 헐뜯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잘 먹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남조선으로 가 돈을 벌기 위해 술집 등을 떠돌아다녔지만, 돈으로 좌우되는 남조선에서 육체적·정신적 고통만 따랐다”고 남한 체제를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전씨는 한국에서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종합편성 채널인 TV조선의 탈북 관련 프로그램 《모란봉 클럽》에 여러 차례 출연했다. 올해 초부터는 같은 방송의 《남남북녀》에서 탤런트 김진씨와 가상의 부부 역할을 해 탈북 방송인 가운데 인지도가 높은 편이었다. 이 때문에 갑작스러운 그의 북한 선전방송 등장은 친구와 지인들에게 뜻밖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전씨가 어떤 경로로 북한에 들어가게 됐는지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주변인 탐문과 함께 거주지 압수수색과 금융거래 내역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해외로 출국하게 된 과정과 입북 경로로 유력한 북·중 국경지역에서의 행적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왼쪽 사진은 탈북 방송인 전혜성씨가 북한으로 돌아간 직후인 7월16일 북한 대남선전 방송 ‘우리민족끼리 TV’에 출연한 모습. 오른쪽 사진은 임지현이란 가명으로 국내에서 활동할 당시 모습

 

공안 당국, 강제로 끌려갔을 가능성에 무게

 

국정원과 경찰은 전씨가 본인의 의사에 반해 북한으로 유인당하거나 강제로 끌려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잠정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전씨가 자신이 생활하던 고시원의 물품을 그대로 둔 채 출국한 점에 주목한다. 특히 평소에 몰고 다니던 외제승용차를 두고 간 대목도 살펴보고 있다. 방송활동을 하는 탈북자들의 경우 수입이 괜찮은 편인 데다 신변안전 등을 우려해 자가용 차량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 관계자는 “북한 주장대로 북한에 자발적으로 돌아간 것이라면 한국 내 재산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움직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몇 달러의 돈도 북한에서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일부 자발적 재입북의 경우 한 푼이라도 더 챙겨 가기 위한 모습을 보인다는 얘기다.

 

전씨가 북한에 두고 온 부모를 위해 1만 달러(약 1120만원) 상당의 돈을 지난 4월 송금했는데, 문제가 생기자 고민해 온 정황도 드러났다. 가족들이 돈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 전씨가 브로커를 만나 경위를 알아보기 위해 중국 현지로 급히 갔다는 것이다. 탈북 인사는 “거액의 대북송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북한 공안 당국에 노출된 브로커가 유인·납치 공작에 협조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 내 가족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압박해 귀환을 종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씨는 북한이 공개한 영상에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남한에서의 생활을 언급하고 ‘참회’하는 태도를 드러내려 했다. 남한 TV에 등장해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탈북 과정을 밝히고 예능 프로를 소화하던 모습과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북한 아나운서도 어색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우리 정부 당국은 북한이 이르면 4월 입북한 전씨를 두 달 넘게 철저히 조사하고, 방송할 내용을 대본으로 만들어 완전 암기하게 한 뒤 우리민족끼리TV에 나오도록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북한이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자를 대남선동에 내세운 건 처음이 아니다. 우리민족끼리TV는 지난해 11월에도 《목메어 부르며 달려와 안긴 어머니 품》이라는 제목의 좌담회를 열어 6명의 탈북자를 등장시켰다. 통일부는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한국 정착 탈북자 입북 사례는 225명이라고 밝혔다. 3만여 명의 한국 정착 탈북자 숫자를 고려하면 극히 일부라고 할 수 있지만 숫자가 늘고 있는 추세라는 게 찜찜한 대목이다.

 

 

탈북자, 정착기간 지나면 해외여행 자유

 

국내 정착 탈북자를 대상으로 교묘하게 펼쳐지는 북한의 공작 활동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우리 국민이란 점에서다. 물론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의 경우 소정의 정착교육 기간 후 국적을 취득하면 해외여행 등에 제한이 없다. 일부 탈북자는 중국 등에 머물며 장사를 하거나 북한과 보따리상 등을 하던 채널을 재가동해 사업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입북한 탈북자를 관리하는 데 북한도 큰 골치를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남조선 물’을 먹고 온 사람을 그대로 뒀다가는 남한의 발전상이나 자유화 바람이 북한 땅에 전달될 수도 있다.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거나 처형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지만, 이미 남북한의 방송활동을 통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상황이라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북한에 돌아간 뒤 북한 당국의 강요로 대남비방 방송 등에 등장했는데도 재차 탈북해 한국에 돌아오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2015년 남한에 정착했다가 이듬해 북한으로 몰래 돌아갔던 40대 탈북 남성은 지난 6월 부인까지 데리고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남한에 정착해 살다가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자를 관리하는 문제도 예전 같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정착 탈북인들의 경우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는 생각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신변위협 때문에 해외여행을 포함한 개인 동선을 노출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착 실패로 인한 자발적 재입북인지 북한 공안 당국의 유인·납치나 가족을 앞세운 협박 때문인지를 단박에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안 당국이나 대북부처도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은 남한 정착 경험이 있는 탈북자를 내세운 대남비방과 주민 사상교양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탈북 단체장과 관련 인사들이 북한 위협에 노출된 탈북 사회에 정부 당국과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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