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공정, 제대로 알아야 비판도 한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1 10:21
  • 호수 14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변방 소수민족 다룬 《절반의 중국사》 번역자 김선자 연세대 연구원

 

요즘 출판 트렌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괴물 같은 책이 한 권 나왔다. 무려 1050쪽에 달하는 엄청난 두께에 그림·사진 없이 글자만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당초 기자가 이 책을 구입하면서 출퇴근길에 틈틈이 읽으려 했다가 바로 포기해 버렸다. 너무 무거워서 휴대하기도, 들고 읽기도 불편하다. 우스갯소리지만 이 책은 두꺼워서 냄비받침으로 쓰기도 부적합하다. 베개로 쓴다면 모를까. 아무튼 독자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친절한 책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역사서인데, 우리나라 역사가 아닌 중국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것도 중국 본토가 아닌, 변방 소수민족들의 역사 이야기다. 그래서 제목도 《절반의 중국사》다. 그런데 이 책이 최근 서점가에서 은근히 일을 내고 있다. 지난 4월30일 출판된 지 3개월 만에 4쇄를 찍었다.

 

김선자 연세대 연구원 © 시사저널 이종현


 

사극이나 영화 보듯 술술 읽혀 나가는 번역의 힘

 

《절반의 중국사》의 원저자는 중국인 작가 가오훙레이(高洪雷)다. 이 책은 중국에서 2011년에 나왔다. 이번에 6년 만에 한국에서 번역돼 출간됐는데, 국내 인기 비결은 번역자인 김선자 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의 번역의 힘에 있다. 우리 역사도 아닌, 이름도 생소한 중국 변방 소수민족의 역사를 다룬 내용임에도 술술 읽혀 나가게 한다. 마치 재미있는 사극이나 영화를 보는 듯하다.단순히 중국어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역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이런 글이 나올 수 있다. 

 

이 책을 출간한 메디치미디어의 김남혁 편집자가 “중국 원서를 보는 순간, 이 책의 번역은 김선자 연구원이 딱이다”라고 생각한 이유다.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김 연구원은 국립대만대와 연세대에서 신화(神話)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국내 역사학자들도 못하는 일들을 혼자 힘으로 해내고 있다.

 

7월12일 기자와 마주한 김 연구원은 중국의 ‘역사공정’ 이야기부터 꺼냈다. 우리에겐 흔히 ‘동북공정’으로 잘 알려진 내용이다.

 

“번역 작업에 꼬박 1년여를 매달렸다. 처음엔 많이 망설였다. 드디어 중국에서도 한족 중심에서 벗어나 소위 소수 이민족을 다룬 역사책이 나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원서를 읽어나갔지만, 역시나 시각이 중국 관점에서 소수민족을 바라보는 중화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걸 번역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역설적으로 이 책이 중국의 역사공정 프로젝트 논란에 대한 관심을 국내에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 번역을 결심했다. 그래서 군데군데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보여주는 부분에 대해 모두 역주(번역자가 단 주석)를 달았다. 단순한 번역자가 아니라 연구자로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때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판단되는 내용에 역주를 달 수밖에 없었다. 그 작업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렸다.”

실제 《절반의 중국사》를 보면, 책 뒷부분 역주만 무려 160쪽 분량에 달한다.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이다. 이건 온전히 김 연구원이 번역자로서 설명을 덧붙인 글이다.

 

“물론 이 책은 중국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역사공정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 지금껏 누구도 다루지 않은 소수민족의 역사를 방대하게 다룬 것만으로 이 책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내용 중에는 중국 한나라 황제(皇帝) 무제보다 오히려 변방 흉노족 지도자의 인품이 더 인간적이고 출중했다는 등의 중국인 입장에서 보면 다소 파격적인 내용도 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중화사상이 근저에 깔려 있다. 특히 위구르·티베트 부분에 그런 서술이 많았다. 이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오훙레이 지음 김선자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 1044쪽 4만8000원


 

“동북공정만 볼 게 아니라 역사공정 전체를 봐야”

 

김선자 연구원은 중국의 역사공정에 대한 문제점을 국내 역사학자들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신화를 전공한 학자지만, 신화와 역사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지금 중국의 역사공정은 실증되지 않은 황제(黃帝)신화를 역사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데 있다. 지금 모든 중국 역사의 꼭대기에 황제(황제(皇帝)가 아닌, 전설에 등장하는 중화민족의 시조)가 있다. 중국 역사를 무려 5000년 이상 더 끌어올린 셈이다.”

그래서 김 연구원은 2007년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란 책을 써서 중국의 역사공정 문제점을 직접 지적하고 나섰다.

 

“중국은 하상주단대공정과 중화문명탐원공정이란 역사공정 프로젝트를 1990년대부터 계속해 오고 있다. 그 기본 바탕에 신화가 깔려 있다. 현재 갑골문자의 발견으로 상나라까지 역사로 실증되고 있음에도 중국은 신화로만 떠도는 그 위의 하나라, 그리고 그 위의 요순시대까지 역사로 만들었고, 더 올라가서 황제시대까지 역사로 만들고 있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역사는 문자·유적 등 실증이 돼야 하는데, 신화를 다 끌어다가 이건 우리의 역사고, 우리는 이만큼 오래됐고, 그래서 주변 동아시아는 모두 중국 역사 아래 있다고 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그는 국내 역사학계의 대응에 대해서도 많은 아쉬움을 표한다. “중국은 이런 심각한 프로젝트 작업들을 하고 있는데, 정작 이를 다룬 국내 학계 논문은 한두 편밖에 없다. 오히려 미국과 유럽 학계에선 난리가 났다. ‘무슨 근거로 그런 신화를 역사라고 하느냐’며 중국 학자들과 설전을 벌였다. 그런데 우리 학계는 정말 조용하더라. 그래서 신화 공부하는 내가 관련 책을 쓴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을 쓰면서도,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엄청난 물량과 인력을 동원하고 있는데, 이걸 내가 혼자 쓴다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김 연구원이 강조한 마지막 한마디는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도 중국의 역사공정 하면 ‘동북공정’만 생각하고 고구려·발해 역사 왜곡에만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그것만 봐선 중국의 역사공정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모든 중국과 변방 역사를 폭넓게 봐야 하고 다 연결 지어서 봐야 문제점이 더 명확해진다. 《절반의 중국사》를 번역하고 소개하는 게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 이유기도 하다. 이렇듯 정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아시다시피 우리네 사정은 인문학이 천대받고 있어서 그 누구도 대학원을 가려 하지 않는다. 연구자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New Book

 

발전국가

김윤태 외 9인 지음│한울 펴냄│416쪽│3만8000원

 

한국의 발전국가는 독재와 성장이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 이는 찬양의 대상이 되며, 저주받은 악마가 되기도 한다. 이제 발전국가의 성장 모델은 한계에 다다랐다. 책에서 저자들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발전국가의 과거와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했다.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바꾸는 지금, 새로운 대안적 국가 모델을 이 책을 통해 제시한다. ​ 

 

 

가족의 파산

NHK스페셜 제작팀 지음│동녘 펴냄│232쪽│1만5000원

 

 

NHK스페셜 제작팀은 고령자 가족 사례를 바탕으로 ‘인구 초고령화’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 일본을 살펴봤다. 20년 넘게 진행돼 온 노동 유연화 및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의 폐해는 현재 고령자와 그 가족들의 비참한 빈곤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가족의 공멸을 미리 본다는 점이 불편하지만, 곧 불어 닥칠 현실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오답

김용관 지음│궁리 펴냄│281쪽│1만5000원

 

 

저자는 예술·영화·문학·철학·역사 분야와 수학의 만남을 주선한 괴짜 수학자다. 수학사를 오답이 만들어낸 거대한 역사적 산물로 재구성했다. 확실한 정답만을 요구할 것 같은 수학에서 왜 오답이 중요한지 열두 가지 질문으로 제시한다. 문제풀이식 수학공부법에 지친 학생이나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인에게 색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책이다.​ 

 

 

케미스트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북폴리오 펴냄│730쪽│1만6000원

 

 

《트와일라잇》 시리즈 저자가 새로운 스릴러물로 돌아왔다. 주인공 알렉스가 생존하기 위해 이용하는 각종 지략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를 지키고 적을 처단하는 여성 캐릭터를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솜씨 좋게 다루는 한편, 저자만의 주특기인 로맨스도 빼놓지 않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