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패밀리’ 트럼프 발등 찍나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7 16:30
  • 호수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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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이방카 구설 이어 트럼프 주니어 ‘러시아 스캔들’ 연루 의혹도

 

“결국, 백악관 ‘패밀리 사단’의 문제가 터질 것이다. 딸과 아들의 스캔들은 그 전초전일 뿐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자리에 앉은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또 곧이어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가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워싱턴의 한 정치 분석가가 내뱉은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해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곧바로 ‘패밀리 사단’이 백악관을 접수했다는 말들이 나왔다. 그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올해 만 35세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였다. 그런 이방카가 각국의 정상들이 다 모이는 G20 정상회의에서 버젓이 미국 대통령인 아버지 자리를 꿰차고 앉았으니 구설에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올해 만 39세의 트럼프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초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은 최근 트럼프 주니어가 대선 기간인 지난해 6월 러시아 측 인사와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트럼프 주니어는 7월11일 당시 자신이 러시아 변호사와 나눈 이메일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것이 더 큰 화근이 되고 말았다. 트럼프 주니어는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메일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메일 내용에는 트럼프 주니어가 당시 대선 상대인 힐러리 클린턴의 약점을 알려주겠다는 말을 믿고 트럼프의 당선에 도움을 받기 위해 러시아 측 인사를 접촉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미 주류 언론들은 다소 잠잠하던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을 밝혀줄 결정적인 ‘스모킹 건(Smoking Gun)’이라며 대대적인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가 회의 시작 전 자리에 앉아 있다. ⓒ 사진=EPA연합

 

‘트럼프 주니어-이방카-쿠슈너’ 삼각 구도

 

‘러시아 스캔들’ 연루 의혹이 불거지기 전까지 트럼프 주니어는 그렇게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무급이기는 하지만 백악관 고문이라는 공식 직함과 집무실까지 얻은 이방카와는 달리 그는 아버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에 경영했던 사업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민감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트위터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등 아버지 트럼프의 정치에 깊숙이 관여해 온 인물이다. 트럼프 주니어는 자신의 동생인 이방카가 대통령 자리에 앉은 사실이 밝혀진 당일에도 트위터에 “그녀는 매우 똑똑하고 우아한 인물”이라며 이방카를 적극 옹호했다. 그러면서 “나는 2년여 동안 옳은 일을 하지 못하는 전문 정치인한테 공격받기를 좋아했다”며 “그녀는 당신들의 수준이 아니니, 손을 떼라”고 글을 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내용을 트위터에 올린 다음 그가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여론이 급속히 악화돼 강력한 공격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민주당의 브래드 셔먼 하원의원이 7월12일 ‘사법 방해’ 혐의로 의회에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것은 그 방증이다.

 

트럼프 주니어와는 달리 그의 여동생인 이방카는 이미 대선 전부터 아버지인 트럼프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는 등 실세 노릇을 톡톡히 해 왔다. 특히, 대선 과정에서 ‘여성 차별’ 문제로 낭떠러지에 몰린 트럼프를 구원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일등 공신’이 됐다. 트럼프 그룹의 부사장이기도 했던 이방카는 지난해 후보 지명을 위한 미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마지막 찬조 연설자로 등장해 아버지 트럼프에게 쏟아진 여성 차별 논란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그녀의 유창한 설득력이 지지층을 묶어놓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셈이다.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존재감 사라져

 

트럼프는 친딸인 이방카를 찰떡처럼 자신의 옆에 두면서 공개적으로도 실세 자리를 지키게 하고 있다. 어쩌면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가 자리를 비운 사이 대통령 자리에 이방카를 앉게 한 것은 트럼프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백악관 공보국장과 선임고문을 지냈던 댄 파이퍼 정치 평론가가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의 중요한 점은 정부의 권위가 혈통이 아니라 국민에 의해 부여된 것”이라고 꼬집을 정도로 이방카의 행동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악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방카가 백악관 실세로 등장한 다른 배경은 바로 백악관 최고 실세로 자리 잡은 재러드 쿠슈너를 남편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방카는 2009년 개신교에서 유대교로 개종까지 하며 쿠슈너와 결혼했다. 이후 쿠슈너는 트럼프의 핵심 측근으로 부상했고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트럼프가 가장 신뢰하는 인사로 손꼽혔다. 대선 후 백악관 고문으로 입성한 후에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배석하는 등 트럼프의 가장 중요한 일정은 물론 의사결정 과정에서 실세 역할을 하고 있다. 백악관 직원들 사이에서는 “쿠슈너를 화나게 하지 말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으며, 모든 인사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쿠슈너를 통하지 않고는 트럼프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굳어진 형국이다. 심지어 쿠슈너는 ‘모든 것의 장관(secretary of everything)’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 때문에 이방카 부부가 백악관의 모든 권력을 차지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이방카는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 트럼프의 딸이 아니라, 트럼프와 이혼한 전처의 딸이다. 그녀의 오빠인 트럼프 주니어 역시 마찬가지다. 멜라니아는 최근에야 백악관으로 자신의 외동아들을 데리고 이사하는 등 트럼프와 불화설이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이방카 부부의 전횡에 멜라니아가 큰 불만을 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이른바 백악관 ‘패밀리 사단’ 중에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사람도 멜라니아가 아니라 이방카 부부라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 준다.

 

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트럼프 주니어와 러시아 측 인사의 접촉 과정에서도 쿠슈너가 동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방카는 G20 정상회의에서 대통령 자리를 꿰찼을 뿐만 아니라 각종 여성 문제를 다루는 회의에도 참석해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결국, 트럼프 주니어-이방카 트럼프-재러드 쿠슈너로 이어지는 거대한 백악관의 삼각 패밀리 권력 구도에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의 존재감마저 사라져버린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스스로 가꾼 ‘삼각 거물’이 자신의 발등 찍기에 이어 목을 조르는 도화선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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