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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 교수의 진짜 일본 이야기] 공적 임무로 부모 임종 못 지킨 것 명예롭게 여겨

이인자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0(Mon) 18:31:00 | 14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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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5일 일본 히가시긴자(東銀座)에 위치한 가부키좌(歌舞伎座) 앞을 찾았습니다.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방해가 될 정도로 많았습니다. 가부키 정기공연인 《7月大歌舞伎》가 이틀 전부터 시작되었지요. 여느 공연 때보다 표를 구하기 어려웠기에 모인 사람들의 열기가 더한 듯이 느껴졌습니다. 이 공연은 주인공인 이치카와 에비조(市川海老蔵·1977년생)와 아직 네 살밖에 안 된 그의 아들이 함께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티켓 구입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 부자(父子)는 열흘 전 즈음에 사랑하는 부인을 여의고 엄마를 잃은 배우들입니다. 아직 상중(喪中)인데도 불구하고 예정된 무대에 서서 관객을 맞이한 것이지요. 에비조씨는 부인이 사망한 당일에도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3일 정도 스케줄대로 공연을 했습니다.

 

눈물로 대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기사도 언뜻 보였지만 무대 일정을 다른 날로 미루거나 파하지 않고 진행됐습니다. 관객 역시 애석하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무대를 접고 상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것이지요. 가부키좌 앞에서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차림과 표정은 애도의 마음을 엿보이기보다 꼭 가고 싶었던 파티장에 나서는 사람들처럼 밝고 화려했습니다. 저는 가부키좌 앞에서 살짝 흥분기마저 느껴지는 관객과 상중인데도 불구하고 공연을 하는 배우를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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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상중에 연예인 딸 무대에서 춤춰

 

일본 사회에 대해 밝은 분은 아시겠지만 일본은 개인적인 사정보다 공적인 면을 중시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무사도 상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적인 임무가 있어 부모의 임종을 못 지키는 것을 명예스럽게까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손님은 왕’이라는 의식이 철저한 나머지, 무대에 서는 사람이나 시합으로 관중을 모으는 운동선수 등은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직업임을 처음부터 각오한다고 합니다. 나의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것은 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보는 것이지요. 설혹 그게 부모나 배우자나 자녀의 경우라 해도 그렇습니다.

 

 과거 이와 비슷했던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1993년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입니다. 아주 유명한 40대 아나운서가 암에 걸린 사실을 알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당시로는 가족 중 암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알리지 않는 풍토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기에 본인이 방송에서 암환자임을 알리고 일을 계속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제가 놀라웠던 점은 장례를 앞둔 상황, 즉 상중이었는데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딸이 예정된 무대에서 춤을 잘 췄다는 뉴스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팬들과 약속한 무대를 지키겠다는 말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이해하기 어려웠지요.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노래를 하고 춤을 추다니…. 아무리 문화가 다르다지만 이해하길 포기하고 접어둔 사안이었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였다고 생각하는데,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마산에서 20년 넘게 살다 일본이 전쟁에 패하자 고향으로 돌아온 일본인(히키아게샤·引揚者)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상(喪)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산에서 큰 자전거 점포를 하던 집 딸이었는데 50여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일이라면서 풀어놓은 것은 조선인 점장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명석하고 부지런하였기에 아버지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점포를 그만둔다고 해 모두를 놀라게 했어요. 점장은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3년상을 치르기 위해 그만둔다는 거였어요. 그에게 많은 일을 맡기고 있던 터라 아버지는 난감해했고, 그 역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곳에서 일하면서 복(服)을 입으면 안 되겠느냐고 타진했지요. 하지만 평소엔 유하기 짝이 없던 그가 완강하게 거부하고는 집으로 돌아간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때 기억이 너무 선명해 조선인의 부모에 대한 효도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쭉 하고 있지요.”

그런 말을 어제 있었던 일처럼 회상하던 자전거점 딸은 제가 만났을 땐 이미 80대 할머니였습니다. 일본인의 조선 생활에 관한 조사였는데, 그날 이분은 3년상에 관한 이야기만 들려주셨고 약속한 시간이 초과돼 저는 돌아온 기억이 있습니다. 위의 춤을 추던 딸의 모습이나 조선에서 살다 돌아온 이분의 이야기를 20년 이상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고 듣는다면 너무도 달랐을 것 같습니다. 특히 자전거점 따님을 지금 만난다면 이야기의 폭과 깊이가 달랐을 겁니다. 그건 제가 20여 년 동안 주변을 통해 여러 경험을 하면서 일본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 출장에 아들 죽음 혼자서 감당한 아내

 

저는 석사 과정 때 일본 기업에서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국비장학금과 같은 액수의 장학금이었기에 학업에 전념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 기업은 세습제가 아닌, 사원이 그룹 사장까지 올라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당시 사장의 가족에 얽힌 일화를 우연히 들었는데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과장 정도 위치에 있을 때 출장 중에 불행히도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은 회사 직원들에게 지금은 중요한 일로 출장 중이니 남편에게 아들 소식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혼자 아들의 죽음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의 사장이 된 데는 이런 내조가 일조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있는 직장에서도 교수회의가 있던 날 동료 한 분이 부친상을 당했는데 회의를 마치고 출발하는 것을 봤습니다. 장남이며 상주인 그는 전날부터 아버님이 위독하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느 교수는 부인이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자신이 송별회 담당이었다는 점을 중히 여겨 송별회를 다 마치고 싸늘하게 주검이 된 부인을 접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런 일본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느끼셨겠지요. 저의 이런 경험들이 쌓여 에비조씨의 공연장 앞을 메운 관객들과 조금은 비슷한 눈으로 부인과 엄마를 잃은 부자의 공연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이면 조선에서 살았던 자전거점 따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다시금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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