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중정원 ‘프롬나드 플랑테’, 세 번의 변신
  • 파리=윤주 지역전문가/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 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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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상징물→도시의 골칫덩이→도시 재생의 첨단물

 

프랑스 파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지난달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일어났던 테러의 여파로 잔뜩 움츠러든 파리를 상상하며 파리에 도착했지만, 센강(Seine River)과 멋진 풍경이 스쳐지나가면서 그 염려가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필자의 파리 방문기간이 ‘파리 패션위크’라는 특정기간과 겹치기도 했지만, 신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기운까지 더해져인서지 파리는 더 멋지고 활기차 보였다. 

 

스쳐지나가는 풍경도 ‘낭만적인 예술의 도시’ 느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역시,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라는 표현이 맞는 듯싶다. 그래서인지 파리 거리를 다니다보면 파리라는 도시가 지닌 아름다움을 그려낸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중 파리를 배경으로 한 ‘비포 선셋’ 이라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는 파리 곳곳을 돌아다닌다. 파리의 모습을 아름답게 담아냈던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많은 화제가 되었고, 영화 속에 등장했던 장소들은 파리의 여행객들에게 들러봐야 할 명소로 손꼽히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길게 이어진 아름다운 산책길에서 두 사람이 거닐던 그곳이 바로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é)’이다. 프롬나드 플랑테는 영화 속의 멋진 배경이지만, 도시재생의 한 획을 남기며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건네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서울의 ‘서울로 7017’이 개통이 되면서 공중정원의 원조격인 프롬나드 플랑테가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을까하는 궁금증에 직접 찾아가보았다.

 

프롬나드 플랑테는 옛 바스티유역에서 뱅센(Vincennes) 을 거쳐 베르뇌유레탕을 이었던 옛 벵센철도 위의 공중정원이다. 이 노선은 1969년 12월14일 운행을 종료하며 바스티유와 벵센 사이의 구간이 폐쇄되었다. 관리자도 없고 사람이 찾지 않게 되면서 근대화 된 도시의 상징물이자 문화유산이었던 고가철도의 폐선부지와 인근 지역은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하게 되었으며, 범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우범지역이 되고 말았다. 

 

프롬나드 플랑테엔 곤충과 새를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스프링쿨러 옆에서 더위를 식히는 비둘기, 벌들이 물을 마시기 용이하게 설치된 구조물, 곤충호텔​(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 윤주 제공

 

폐선된 철로 위에 꽃 핀 변화의 시작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이 산업유물은 전체 면적이 길이가 4.7km나 되는 골칫덩이였다. 긴 선형으로 공중에 떠 있는 이 공간의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파리시는 1980년대 초반까지 이곳을 방치했다. 지상에서 10m 높이 위에 설치된 철길과 이를 지탱해온 아치형 구조물을 철거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 교통문제, 환경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81년 취임한 미테랑(Francois Mitterrand) 대통령의 문화정책 ‘그랑 프로제(Grand Projects)’와 연결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개발 초반에는 고가철교 윗부분을 산책로로 조성하고자 하는 의견과 고가철교를 철거하고 구간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새로운 건물을 건설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일관성 없는 새로운 건물들을 신축했을 때, 파리가 가진 도시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최종적으로 산책로를 조성하자는 계획안이 채택되었다. 1983년 바스티유역은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의 설립을 위해 철거되었고, 이어 프랑스 국유철도회사가 모든 화물 운송 활동을 전면 재편성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지역이 협의개발지구로 설정되면서 본격적인 재생사업이 시작되었다. 

 

보존 결정에 따라 파리시 주도하에 버려진 고가 철교를 철거하지 않고 세계 첫 공중정원으로 재탄생시키면서 이 지역은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도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긴 구간에 녹지공간과 휴게공간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은 휴식공간을 얻었으며, 고가철교 바로 밑 공간은 지역 예술가들의 공방과 갤러리, 아트숍, 카페 등이 있는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슬럼화 되었던 지역이 휴식과 즐거움을 주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6월말 프롬나드 플랑테 공중정원의 모습. 영화 '비포 선셋' 속에 등장하는 이곳은 이제 파리의 명소가 됐다. ​ⓒ 윤주 제공

 

세계 최초 도시를 가로지르는 공중 정원의 탄생

 

폐선부지가 도심 속 공원으로 재탄생되자 주민들의 삶도 점차 변화됐다. 철로 주변의 지역은 서서히 활력을 되찾았고, 지역주민 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관광효과를 올리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지역의 가치는 올라갔다. 버려진 철길을 녹지공간과 산책로로 변모시킨 이 프로젝트가 지역주민들의 삶을 바꿔놓은 것이다. 고가아래 옛 아치를 그대로 활용한 ‘르 비아뒥 데자르(Le Viaduc des Arts)’에는 현대적 디자인을 가미한 공간들이 조성되었다. 어두컴컴했던 고가 밑 공간은 문화와 예술이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지역경제를 주도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세계 최초의 공중 정원 프로젝트는 변화의 시간을 맞으면서 그곳만의 색채를 담은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주민들과 상권의 자연스러운 변화와 함께 파리시도 공원 조성에서 멈추지 않고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 공중정원의 건강함을 위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각종 생물들이 좋아하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었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던 6월말, 한창 더운날씨에 목마른 새들과 벌들이 프롬나드 플랑테에서 물도 마시며 행복한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식재된 후 세월이 더해져 어우러진 공중정원의 호스트가 된 생물들과 찾아 온 사람들이 함께한 모습이 더 없이 좋아보였다. 문득, 서울로 7017이 떠올랐다. 식물의 뿌리를 가두어 놓은 화분과 콘트리트가 우리의 기대와 세월의 아름다움도 담을 수 있을까.

 

아치형 구조물을 그대로 살린 고가 아래에 자리잡은 '르 비아뒥 데자르', 프롬나드 플랑테 앞 카페, 프롬나드 플랑테 라인과 붙은 건물면을 활용한 포토존(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 윤주 제공

 

도시 재생의 힘, 지속 가능한 생명력

 

프롬나드 플랑테는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남달랐다. 그러한 과정과 결과는 다른 많은 도시재생사업에 영감을 주고 있다. 뉴욕에는 하이라인 파크가 생겼고, 서울의 서울로 7017가 뒤를 이었으니 말이다. 뉴욕의 하이라인이 팬시(fancy)한 느낌의 핫(hot)한 공중정원이라면, 프롬나드 플랑테는 도시의 숨길이 된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쇠퇴된 공간이 지역의 활력소가 되어 사람, 숲, 곤충, 새 모두와 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격이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프롬나드 플랑테는 낙후된 지역을 활성화시키면서도 도시가 가진 흔적을 보존하고 가치 있게 활용하는 효과적인 도시재생의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의 흔적은 역사적 자산이 되고 기억되어 도시의 정체성과 뿌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분위기는 이벤트성으로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대상 지역에 대한 깊은 성찰과 시간의 흐름 속에 사람들의 참여가 함께 조화를 이뤄야만 되는 것이다. 프롬나드 플랑테는 산업유산의 뼈대를 남겨 그 가치와 정체성을 보존하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과 방문객들이 산업유산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프롬나드 플랑테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후대에도 파리의 중요한 랜드마크 중 하나로 기억되고 사랑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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