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무현 정부 때 검찰개혁안 이미 만들어졌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7 09:33
  • 호수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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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법무부 변화전략계획’에 상세히 담겨 前 검찰 고위간부 “文정부에서 활용할 만한 가치 있다”

 

청와대는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후임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 역시 하마평만 무성하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인 ‘검찰개혁’은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하고 있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집권 초기에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데, 장관 인사청문회에 발목이 잡혀 개혁의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와중에 최근 기자와 접촉한 검찰 고위간부 출신 인사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법무·검찰 개혁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일단락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검찰에서 ‘대형사건’을 터뜨려 여론의 관심을 그쪽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검찰개혁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조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또 검찰개혁의 적임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첫째, 법무부와 검찰 내부 구성원이 승복할 수 있는 인사여야 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법조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인사가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 검찰 내부 시스템을 잘 아는 인사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검찰의 특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인사는 자칫 시간만 허비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개혁의 칼을 뽑지도 못한 채 개혁이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우려도 섞여 있다.

 

특히 이 인사는 “법무·검찰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내년 지방선거 이전까지다. 그 시간은 아주 짧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정부 때 이미 만들어진 법무·검찰 개혁안을 적극 활용하면 개혁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며 “당시 만들어진 개혁안 가운데 극히 일부는 실행됐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2006년 7월) 그만두면서 개혁안도 잊혀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2005년 6월29일 청와대에서 신임 천정배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소병철 검사·최병모 변호사 ‘개혁안’ 수립

 

이 인사가 언급한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법무·검찰 개혁안’은 2006년 2월21일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에서 발표한 ‘법무부 변화전략계획’(변화전략계획)이다. 이 변화전략계획은 336쪽 분량의 《희망을 여는 약속》이란 제목의 책자로 묶였다. 이른바 법무·검찰의 중장기 개혁 로드맵이었던 셈이다. 법무부는 2005년 6월 천 장관 취임 직후부터 ‘변화전략계획’ 수립에 착수했고 7개월 이상 작업을 거쳐 완성했다.

 

법무부는 당시 소병철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을 주책임자로 한 실무그룹을 꾸렸다. 실무그룹에는 소 단장을 포함해 백창현 법무부 재정기획관, 우병우 법조인력정책과장 등 18명이 배치됐다. 실무그룹에서 작성된 개혁안은 개혁 성향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법무부 정책위원회에서 심의했다. 정책위원회 위원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낸 최병모 변호사였다. 최 변호사는 1999년 우리나라 최초로 특별검사제가 도입된 옷로비 사건의 특별검사였다. 최 변호사를 포함해 정책위원회에는 김두식 한동대 법대 교수, 서기석 서울행정법원 수석 부장판사, 양현아 서울대 법대 교수,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등 13명이 참여했다.

 

당시 만들어진 변화전략계획 가운데 정부법무공단(일명 국가로펌) 설립, 재소자 처우 개선 등 일부는 시행됐다. 하지만 대부분은 빛을 보지 못한 채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다. 이에 시사저널은 당시 개혁안 가운데 문재인 정부에서 활용할 만한 사안들을 들여다봤다.

 

우선 공정한 검찰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내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었다. 여기엔 인권 수호의 권리장전으로 ‘인권 보호 수사 준칙’을 전면 재정비하고 구속 수사를 최소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수사 중 변호인 참여를 확대하고 가족 등이 동석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또 피의사실 사전 공표로 인한 인권 침해를 방지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200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금품을 전달해 파문이 일었던 ‘박연차 게이트’ 때도 피의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사전에 알려지면서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박연차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이 얽힌 피의사실이 ‘공표’되면서 노 전 대통령 측이 대검 중수부에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피의사실 공표는 현재도 논란거리다.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인권 침해 소지도 다분하다. 그럼에도 유·무죄가 확정되기 전에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피의사실이 알려지는 행태는 시정되지 않고 있다.

 

 

검찰 통제 강화한다고 했지만…

 

변화전략계획에는 ‘권위적, 폐쇄적, 불친절’ 등 검찰의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도 제시돼 있다. 공안자문위원회, 항고심사회, 검찰시민옴부즈만제, 시민검찰 모니터제 활성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국민 참여와 소통을 강화한다는 취지였는데 아직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검사 선발 방식도 대폭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성적 위주가 아닌 인성·사명감·가치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경력 변호사 임관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상당히 미진하다고 지적한다.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감찰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검찰에 대한 외부 감찰을 엄정하게 수행하기 위해 2005년 감찰관실을 신설했다. 변화전략계획에선 ‘법무부 감찰관 직위를 외부에 개방하고, 고의적인 비위에 대한 감찰 결과를 공표하고 감찰위원회에 감찰개시요구권을 부여하는 등 감찰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변화전력계획이 나온 이후에도 검사들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불거져 빈축을 샀다. 대표적으로 2012년 성추행 검사 파문과 2016년 스폰서 검사 사건, 최근의 ‘돈봉투 만찬’ 사건 등이 거론된다.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감찰이 얼마나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사건들이다. 법무부가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비위 검사에 대한 감찰 결과도 부실했다는 지적이 많다. 처벌 역시 ‘솜방망이’에 불과했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형제 존폐 논란도 현재진행형이다. 사형제 존치와 폐지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사형제 존폐에 대해 각종 여론조사에선 “존치해야 한다”는 견해가 더 많은 것으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0년 이상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어 ‘사형 폐지국(國)’으로 분류돼 있다.

 

‘법무부 변화전략계획’ 수립을 주도한 소병철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왼쪽)과 최병모 변호사 © 연합뉴스·뉴시스

 

사형제 존폐 논란 언제까지…

 

2006년 2월 발표된 변화전략계획에도 사형제 존폐 문제가 언급돼 있다.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에 대해 법무부에서 예단 없이 심층적 연구·검토를 거친 후 최선의 정책을 입안·추진’한다는 구상이었다. 또한 ‘사형제 존폐 여부에 관계없이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절대적 종신(終身) 도입의 타당성 분석, 현재 사형이 법정형으로 규정된 86개 조문의 개별적 타당성, 충실한 사실·양형 심리를 전제로 신중한 사형선고가 이뤄지도록 재판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성은 없는지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변화전략계획이 나온 지 11년이 지난 현재까지 사형제 존폐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6월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인간의 존엄성, 오판의 위험성 등에 비춰볼 때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형사소송법상 사형 판결 확정 이후 6개월 이내에 집행해야 한다. 김 후보자는 이에 대해서도 “현재 10년 이상 사형이 집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을 단순히 위헌적이거나 위법적인 상황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구체적인 형벌조항에서 사형제를 존치할 것인지 여부는 근본적으로 국민 의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면서 “(사형제가 폐지된다면) 그 전에 가석방이나 감형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이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또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었다. 변화전략계획에 따르면, 법무부는 당시 범죄 유형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수형자에 대해 선거권 등 자격을 박탈하거나 정지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봤다. 이에 일부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연구해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일본과 미국의 일부 주(州), 캐나다 등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국가 실태를 조사한 후 과실범 등 일부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연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미완(未完)이다. 1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거나 잔여 형기를 마치지 않은 가석방자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공직선거법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헌재는 6월8일 결정문에서 “선거권 박탈은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형사적 제재의 연장”이라며 “수형자 자신을 포함해 일반국민에게 시민으로서의 책임성을 함양하고 법치주의 존중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변화전략계획에는 이 밖에도 △법무부 검사 직위 개방, 자체 전문인력 양성 △과거사 진상규명 △보호관찰제도 개선 △양극화 해소·민생안정을 위한 법제 정비 △소년사법 대혁신 △불법도청 근절 △국가송무 내실화를 위한 송무 체제 개편 등 법무·검찰 개혁안이 상세히 담겨 있다.

 

앞서 언급한 검찰 고위간부 출신 인사는 “변화전략계획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넘었다. 따라서 시대 흐름에 맞게 부분 수정한다면 현 정부에서 추진하려는 검찰개혁 방안으로 충분히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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