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경찰 면죄부, 또 다른 살인진압 명분 됐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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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2010년∙2012년에도 인권경찰 선언…“진상규명 없이 인권경찰 어림없다” 비판

 

경찰이 최근 정부로부터 '인권 친화적 경찰'로 거듭날 것을 주문받은 후 갖가지 대안 마련에 나섰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역시 용산 참사와 백남기씨 사망 사건을 언급하며 경찰에 인권 침해 개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경찰은 대안 중 하나로 6월16일 민간위원으로 구성한 경찰개혁위원회(경찰개혁위)를 출범시키고 인권보호와 자치경찰, 수사개혁 등에 대한 개선책을 자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경서 경찰개혁위 위원장의 “고(故) 백남기씨 유족이 이철성 경찰청장의 사과를 수용해 화해와 용서의 길을 모색했으면 한다”는 발언으로 인해 ‘인권경찰 개혁’은 초반부터 비판에 직면했다. 백남기투쟁본부는 “경찰에 제기되는 인권 침해를 비롯한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를 보여주기보다 경찰 개혁의 장밋빛 미래만을 강조하는 듯한 인식은 부적절해 보인다”며 “개혁위원회가 우선적으로 할 일은 경찰이 엄중한 자기반성을 이끌어 내 국민의 공감을 얻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용산 참사 유가족들과 생존 철거민들도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에 대한 사과와 진상규명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6월26일 경찰개혁위가 있는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 참사를 경찰 인권침해의 대표사례로 기록화하고, 재조사를 통한 책임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할 것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경찰개혁위에 전달했다.

 

2016년 1월23일 오후 용산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 건물터에서 열린 용산참사 7주기 추모집회에서 유가족들과 집회 참가자들이 살인진압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서울역으로 행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09년 1월20일 발생한 용산 참사는 당시 재개발에 따른 적정 보상비를 요구하며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에서 밤샘 점거 농성을 벌이던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40여 명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지고, 철거민 6명과 경찰 17명이 부상당했다. 

 

검찰은 사건 발생 3주 만에 철거민의 화염병 사용이 화재의 원인이었고, 경찰의 점거농성 해산작전은 정당한 공무집행에 해당한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의 과잉진압 책임은 묻지 않았고, 철거민 대책위원장 등과 용역업체 직원들은 기소됐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용산 참사에 대해 “경찰의 (진압) 조처는 국내 법령 규정을 비롯한 각종 기준 및 경찰 규칙의 취지에 어긋나, 단순한 당·부당의 수준을 넘어 위법의 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결정문을 낸바 있다. 인권위는 특히 “국가가 공권력을 행사함에 있어서 위법한 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는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국가에 의한 범죄행위의 불처벌 현상이 발생해 법치주의에 대한 심대한 장애가 발생하게 된다”며 김석기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등 경찰 간부들의 기소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8년이 지나도록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용산 참사 피해자들은 “김석기 뿐만 아니라 경찰은 단 한명도 기소되지 않았고, 김석기와 경찰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사과조차 없었다”고 비판했다. 또 “경찰 개혁이 수사권을 받기 위한 쇼가 아니라면 대표적 경찰인권침해로 인한 사망사건인 용산 참사의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용산 참사 피해자들은 백남기씨에 대한 과도한 물대포 살수가 경찰 매뉴얼을 어긴 무리한 진압이었다는 질책에 강신명 경찰청장이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용산 참사 진압도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됐다”고 발언한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해왔다. 용산 참사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국가와 경찰에게 ‘면죄부’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도 “용산 참사에 대한 ‘여기까지 해도 괜찮다’는 경찰의 면죄부가 또 다른 살인진압과 인권침해의 명분이 돼 왔다”고 언급했다.

 

공권력감시대응팀을 비롯한 30여 시민단체 회원들이 6월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경찰 인권과제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인권침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사과 및 책임자 처벌,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수집 통한 사찰과 감시 근절, 국제인권기구 및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조속히 이행 등을 촉구했다. ⓒ 사진=연합뉴스

 

경찰, “인권경찰 되겠다” 수차례 언급

 

경찰은 과거에도 인권경찰에 대한 다짐을 수차례 한 바 있다. 2010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강력팀 형사 5명이 22명의 피의자를 고문한 사건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경찰청은 “인권보호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그간 경찰 편의적인 집회시위 제한, 무차별 일제 검문검색 등 제반 경찰권 행사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재검토, 개선하는 한편 인권위 권고사항 등을 수용한 인권침해 종합 방지대책을 마련하여 강도 높게 추진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또 “경찰 치안행정의 최우선 순위를 국민들의 인권보호 및 경찰 인권향상을 최우선으로 두고 인권경찰로 거듭날 것을 재확인했다”고 언급했다.

 

2012년 12월에는 세계인권선언일(12월10일)에 맞춰 전국 250개 경찰서를 인권 중심 경찰서로 바꿔가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당시 김기용 경찰청장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경찰이 가장 중요시해야 할 불변의 진리이자 가치"라며 인권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과잉진압으로 인한 백남기씨 사망 사건이 일어나는 등 인권침해로 인한 역사가 반복됐다. 경찰은 백남기씨 사망사건 재조사에 관해 '거부' 의사를 밝혔고, 사건 당시 작성한 청문 감사보고서도 법원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이 용산 참사부터 백남기 사건 등 인권 침해를 자행한 과거에 대해 사과하거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또 다시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는 경찰 개혁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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