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인수에 쓴 SK 3조, 효과는 ‘미지수’
  • 변소인 시사저널e. 기자 (byline@sisajournal-e.com)
  • 승인 2017.06.26 09:49
  • 호수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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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도시바 전환사채 3000억 엔 인수에 ‘갸우뚱’

 

일본 반도체 업체 도시바 인수와 관련해 SK하이닉스가 헛돈 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조원 이상 투자하지만 SK하이닉스가 경영권을 확보할 방법은 보이지 않고, 도시바가 보유한 낸드플래시 분야 첨단기술에 접근할 수단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탓이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전환사채 3000억 엔(약 3조원)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참여한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이 6월21일 도시바 인수 관련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낸드플래시 메모리 분야에서 2위인 도시바(시장점유율 17.2%)와 4위 SK하이닉스(11.4%)를 합쳐 절대강자인 삼성전자(시장점유율 36.7%)에 맞선다는 전략을 가질 만하다. 실제 도시바와 SK하이닉스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1위 삼성전자를 바로 턱밑에서 위협할 수 있다. 또 도시바의 첨단기술과 SK하이닉스의 양산기술을 합치면 삼성전자에 대해 갖고 있는 기술적 열등감을 짧은 시간 안에 극복할 수 있다. 최 회장이 꿈꾸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 시사저널 고성준·freepik

 

도시바 경영권 확보도, 기술 접근도 어려워

 

그런데 이 시나리오를 실현하려면 SK하이닉스가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도시바 경영권 확보다. 또 다른 하나는 도시바가 보유한 낸드플래시 기술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두 조건 모두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한 형편이다. 우선 SK하이닉스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도시바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조건대로라면 SK하이닉스가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을 확보할 방법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도시바 반도체사업부문을 인수할 특수목적회사 지분 57%는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민관산업혁신기구가 보유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 정부가 도시바를 국유화했다는 해석이 나올 정도다. 또 SK하이닉스가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도 경영권에 개입할 지분을 확보할 수 없다. 이사회에 이사 한 명가량 추천할 수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재무적 투자자 베인캐피털 지분을 인수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과반 지분은 확보할 수 없다.

 

일본 민관산업혁신기구가 과반 지분을 포기하고 지분 일부를 팔아야 SK하이닉스가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혈세를 투입해 확보한 과반 지분을 SK하이닉스에 팔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일종의 공적자금이므로 유리한 조건이라면 팔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일부 기대가 없지는 않다. 일본 정부가 매각 조건만 따졌다면 대만 훙하이그룹이 주도하는 컨소시엄 KKR에 도시바를 넘겼을 가능성이 크다. KKR 컨소시엄은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이 제시한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도시바가 보유한 낸드플래시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 지금 조건이나 분위기로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 기술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은 딱히 없어 보인다. 도시바 이사회는 한·미·일 컨소시엄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한 이유로 고용유지와 함께 ‘일본 밖으로의 핵심기술 유출 방지’를 꼽았다. 그만큼 기술 유출에 대한 경계심리가 강하다. SK하이닉스가 경영진에 기술제휴 협약을 강제할 수 없는 터라 별도 협약을 맺지 않는 한 도시바 기술을 얻기가 어렵다. 이민희 흥국증권 투자분석가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하지 않고 지분 투자에 그친 터라 도시바의 기술을 습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게다가 삼성전자의 3D낸드플래시 기술은 도시바보다 훨씬 앞서 있어 이번 지분투자로 삼성전자를 제대로 견제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인수는 과장된 얘기, 기회의 끈 잡은 수준”

 

SK하이닉스는 이번 투자와 상관없이 오래전부터 도시바와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공동개발하고 있다. 2011년부터 차세대 반도체 STT-M램(스핀주입자화반전메모리), 2015년부터 나노 임프린트 리소그래피(NIL) 기술 공동개발이 대표 사례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투자를 계기로 도시바와 SK하이닉스 간 공동개발 등 기술 제휴의 범위가 늘 것”이라고 기대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이번 기회에 양사 간 기술을 교류하면 분명 시너지 효과가 있다. 작은 세미나라도 열어 서로 공유할 수 있다면 긍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핵심기술까지 SK하이닉스와 공유할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6월21일 경쟁입찰에 참여한 내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기술 유출과 관련해 일본 내 경계심리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이 계약이 정말로 도시바 기술을 보호하려는 의도였다면, 일본 국민 혈세가 궁극적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지위를 강화하는 데 사용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일본 정부와 민관산업혁신기구는 충분히 해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도 “도시바와 유지해 온 연구·개발 협력 관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희성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국내 언론은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한 것처럼 보도하는데 일본 입장에서는 국책 펀드를 통해 낸드플래시 기술을 보호한 조처였다”며 “(SK하이닉스가 이 건을 계기로) 삼성전자를 견제할 수 있다는 시각은 과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일본은 산업 주도권을 한국에 뺏긴 경험이 있는 터라 기술을 공유하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다 보니 최태원 회장이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투자 가용자원 6조원 중 3조원을 헛돈 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전문가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에 투자할 3조원을 낸드플래시 개발에 투입해 독자적으로 기술경쟁력을 키우는 게 낫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도 “일본이 기술 유출 방어를 준비해 놓은 상태에서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며 “SK하이닉스가 일부 자금을 대는 수준으로 들러리를 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SK하이닉스의 도시바 지분 투자는 앞으로 올 수도 있는 기회의 끈을 잡고 있는 수준이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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