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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문재인 정부 ‘유리 천장’ 깨트릴 수 있을까?

[시론]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8(Sun) 14:00:00 | 14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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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서자마자 ‘유리 천장’ 깨트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청와대 비서실 인사수석에, 외교부 장관 및 국토부 장관 후보에, 교육부 차관까지, 때늦은 감은 있지만 ‘최초의 여성들’이 유리 천장을 뚫으며 속속 입성하고 있다. 고위직에 여성 비율 30%를 채우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까지 실현된다면 진정 금상첨화이리라.

 

한데 왠지 지금 같은 방식이라면 여성들의 갈증이 해갈(解渴)될 것 같지 않다는 기우가 고개를 든다. 보수 정권 10년이 채 안 돼 원점으로 돌아간 걸 보면, 행여 전례를 반복할까봐 지레 겁이 나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유리 천장을 뚫은 최초의 여성들은 전형적으로 토큰(token)인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토큰이라 함은 ‘구색 맞추기 수준’이란 의미를 갖는다. 1~2명에 불과한 여성 장관이나 극소수의 여성 임원들은 토큰의 전형적 사례다. 물론 여성이 한 명도 없는 경우보다는, 토큰이라도 여성이 중요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최초의 여성 이후에 두 번째, 세 번째 계속해서 뒤를 이어 여성의 진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유리 천장을 깨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네 조직의 유리 천장은 실제로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지 않다. 여성 관리자 패널 데이터에 따르면,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경우가 대기업의 약 54%, 중소기업의 약 70%에 이른다. 여성 부장이 없는 비율도 대기업의 약 3분의 1, 중소기업의 약 절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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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흥미로운 건 직원→대리 진급 시에는 남녀 차이가 거의 없으나, 대리→과장 승진 시에는 30~40%의 여성이 노동시장을 빠져나가고,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할 때는 여성 비율이 약 7분의 1로 줄어든다. 여성에게는 임원으로 올라가기 직전 유리 천장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차장으로 승진하기 전 이미 두터운 유리 계단이 놓여 있는 셈이다.

 

믿거나 말거나, 여성은 차장→부장 승진율이 과장→차장 승진율보다 소폭이긴 하지만 높다. 조직에서 차장까지 살아남게 되면 ‘나름의 필살기로 내공을 쌓아 버티기에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증가하는 덕분이다. 역대 정부에서 차관을 역임한 여성 숫자가 여성 장관의 숫자에 훨씬 미치지 못함은, 그만큼 조직 밑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일이 여성들에게는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한데 우리에게는 좋은 선례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정당 추천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50%를 여성에게 할당한 이후, 걸출한 여성 정치인들이 배출되는 모습을 목격한 바 있다. 유리 천장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소수의 여성을 낙하산에 태워 내려보내기보다는, 차별 및 배제를 시정할 수 있는 체계적인 여성 충원 시스템을 도입해야 함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글로벌 기업 GE 사례는 귀감이 돼 준다. GE에서는 인사 담당자들의 고과를 평가할 때, 조직 내 여성 및 비(非)백인 등 소수집단의 역량 개발과 승진을 위해 얼마나 실질적 노력을 기울였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일례로 여성을 임원으로 승진시키는 데 기여한 인사 담당자는 고과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덕분인가. GE를 위시해 외국계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2~1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외국계 기업과 국내 대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여성 개인의 역량 차이라기보다는 조직 문화 및 승진 시스템과 밀접히 연계돼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너무 높은 곳에 자리한 유리 천장 못지않게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유리 계단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여성 충원의 지속성 및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 또한 서둘러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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