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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고려항공의 아찔아찔한 비행

[평양 Insight] 5월25일 베이징行 긴급회황…일부 에어컨 미작동, 구명조끼도 없어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4(Wed) 11:00:00 | 14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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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유일의 민간항공사인 고려항공이 위기를 맞고 있다. 위험천만한 사고 위기가 잇따르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대상에도 오르내리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집권 이후 고려항공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공항 리모델링이나 서비스 향상을 챙겨온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의도와는 달리 역주행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5월25일 북한과 중국의 영공 경계구역에서는 특이한 정황이 포착됐다. 평양을 출발해 중국 베이징으로 가던 북한 고려항공 소속 투톨레프(Tu)-204 여객기가 긴급 회항하는 항공 궤적이 나타난 것이다. 중국 영공에 막 진입하기 직전의 상황이라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당시 교신내용과 추후 첩보내용을 토대로 우리 정보 당국은 고려항공 동체에 심각한 결함이 나타나 운항이 불가능했기 때문으로 결론 내렸다. 평양 순안국제공항을 이륙한 문제의 항공기가 고도 9200m 상공에 접어들었을 때 동체가 심하게 요동치면서 날개 일부와 관련 부품이 떨어져 나가 정상적 운항이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해당 항공기는 순안공항에 무사히 착륙했고 다른 고려항공기로 대체 편을 마련해 뒤늦게 베이징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비행기 기종이 지난해 7월에도 아찔한 참사를 낼 뻔한 일이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던 Tu-204 고려항공기는 기내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중국 선양 타오센국제공항에 긴급 착륙했다. 당시 이 항공기에는 60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 15명이 타고 있었고, 공항요원들이 긴급 출동해 구조작업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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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고려항공에 7년 연속 운항 제한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비행기는 평양을 출발한 지 30분 만에 객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목격됐고 안내방송과 함께 긴급 착륙했다. 일부 승객은 호흡 곤란 등을 호소했고 산소호흡기를 이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선양공항 관계자들은 “항공기에 다가가 문을 열자마자 그을음과 연기 등 화재 흔적이 느껴졌고 승객 좌석의 산소마스크는 모두 내려와 있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이런 긴급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고려항공 승무원들은 내부 사태 수습과 화재 진압을 지원하려는 공항직원들의 기내 진입을 거부하면서 자신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고 고집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 같은 열악한 상황 때문에 서방국가나 기구들은 고려항공 탑승을 금하거나 자국 취항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7년 연속으로 북한 고려항공에 대해 운항 제한 항공사로 지정하는 조치를 지난 5월 결정하기도 했다. 눈길을 끄는 건 EU의 제재 대상에는 Tu-204 기종은 제외돼 있다는 점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개정 고시한 ‘EU 항공안전 목록’을 통해 “러시아산 Tu-204 항공기 2대를 뺀 고려항공 소속 여객기의 EU 역내 운항을 계속 금지한다”고 강조했다. 2010년 북한이 새로 도입한 Tu-204 기종 2대는 국제안전기준을 그나마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북한 고려항공의 열악한 상황은 이용객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무엇보다 노후한 기종이 문제로 꼽힌다. 경제난으로 항공기 도입이 어렵기 때문에 1960~70년대 옛 소련제 기종이 주를 이룬다.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잦은 고장을 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노후기종의 경우 에어컨도 작동하지 않아 찜통인 데다 구명조끼도 하나 없이 운항하기도 한다는 게 탑승객들의 전언이다. 우리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 집권 이후 새로 도입한 기종들이 말썽을 잇달아 일으키고 있다는 건 정비나 유지보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에 대한 이 같은 우려와 열악한 서비스 때문에 고려항공은 여행객들이 탑승을 꺼리는 항공사 1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떠안기도 했다. 지난해 온라인 여행 전문지 ‘이스케이프히어(Escapehere)’는 타고 싶지 않은 항공기 1위로 북한 고려항공을, 2위는 불가리아항공, 3위는 터키의 페가수스항공을 선정했다.

 

고려항공은 대북제재 대상으로도 꼽힌다. 지난 5월에는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 국면 속에서 중국 당국이 평양~단둥 간 고려항공 전세기 취항 허가를 갑자기 중단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동참하기 위한 움직임이란 분석이 나왔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 차원에서 지난해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결의가 나온 이후 북한의 민항기가 취항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뿐이라는 점은 고려항공이 처한 현실을 말해 준다. 여기에다 대북 항공유 공급중단까지 대북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민수 목적의 항공기 운항까지 당장 제재를 가하는 건 아니지만 해외공항에서의 고려항공에 대한 급유가 더욱 깐깐해지는 등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노후기종 교체 않고 공항만 리모델링

 

이런 상황 속에서도 김정은은 항공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6월4일에는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투비행술 경기대회를 개최했다. 곧 해외 관광객들을 초청한 에어쇼도 열겠다는 구상이다.

 

평양과 원산의 공항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하라는 지시에 따라 수억 달러를 들여 공사를 벌였다. 이를 두고 국제선 운항이 하루 몇 편 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보여주기식 과잉투자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김정은은 또 고려항공 승무원들의 유니폼을 새로운 스타일로 바꾸도록 하는 등 이미지 변신도 꾀하고 있다. 기내식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서방 탑승객들로부터 “최악의 기내식”이라고 비판받아온 평양식 햄버거는 더 이상 제공하지 않고 국제기준에 맞는 식사 서비스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고려항공은 북한을 외부세계로 연결하는 통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잇단 핵 위협과 미사일 도발로 인한 대북제재는 북한의 고립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공항 리모델링이나 항공사 직원의 옷차림을 바꾸는 수준의 변화만으론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대북압박과 경제난, 신뢰의 추락 속에서 고려항공은 아찔한 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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