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민심’ 딜레마에 빠진 국민의당
  • 김현 뉴스1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12 09:12
  • 호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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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 호남 지지율 90%…“국민의당, 문재인 정부 도우미” 관측

 

20대 국회의 여소야대 정국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의당의 고심이 깊어 보인다. 이른바 협치에 대한 ‘딜레마’ 때문이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지만, 당의 지지기반 등을 감안할 때 문재인 정부에 협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다. 국민의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부·여당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면서도 견제와 감시라는 야당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강조해 왔지만, 아직까진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발휘하기는커녕 ‘문재인 정부의 도우미’ 역할에 머무르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은 대선 패배 이후 박주선 비대위원장 체제로 전환하면서 당을 추스르고 있는 상태다. 국민의당은 20대 총선 당시 거대 양당제의 폐해를 비판하고 다당제를 주장하면서 출범했던 만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다당제를 기반으로 한 ‘협치’를 재차 강조하고 있다.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협치의 정치구도는 국민의 작품이고 국민의 명령”이라며 “이것은 인위적으로 어떤 특정 정치세력이나 사람에 의해 깨트려질 구도가 아니다. 더 발전시키고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는 게 국민의 명령에 부응하고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문재인 정부에 협조하는 모양새

 

그러나 국민의당이 ‘협치’를 기치로 보수야당인 자유한국당 등과 차별화를 꾀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협조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안 처리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국민의당은 당초 인준안 처리와 관련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특히 이 총리와 관련한 각종 의혹이 문재인 대통령의 ‘병역면탈·세금탈루·부동산투기·위장전입·논문표절 등 5대 비리자 고위 공직 원천 배제’라는 인사원칙에 다수 해당된다면서 인사원칙 위배 논란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표명을 요구했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에 이어 국민의당까지 이 같은 입장을 밝히면서 이 총리 인준안 처리는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문 대통령이 인사원칙 위배 논란에 대해 야당 의원들의 ‘양해’를 직접 구하고 나서자, 여전히 반대를 고수한 보수야당과 달리 국민의당은 총리 인준에 ‘대승적으로’ 협조했다.

 

국민의당은 또 6월8일 의원총회를 열고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버스 운전기사에 대한 사형판결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위장전입 의혹이 제기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등에 협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당초 김상조 후보자에 대해선 부적격 입장이었지만, 이를 변경한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선 아직은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내부에선 “외교부 첫 여성 수장 후보자니만큼 유리 천장을 깨는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국민의당 딜레마의 핵심은 ‘호남’이다. 국민의당은 야당으로서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대한 견제와 감시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자 하지만, 자신들의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임기 한 달을 갓 넘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90%대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호남 민심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 셈이다.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갤럽이 5월30일~6월1일까지 전국 유권자 1004명을 상대로 실시해 6월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 19%)에 따르면,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도는 전체 84%를 기록했지만, 호남은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96%로 집계됐다. 이 같은 수치는 야당으로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상황으로 읽힌다. 호남지역의 한 의원은 6월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역에 가면 문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상당히 높다. 각종 인사의 문제점을 얘기하지만, 호남 유권자들은 ‘지금은 문 대통령을 도와줘야 한다’는 얘기만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총리 인준안 처리 당시 김동철 원내대표 등 호남지역 의원들이 이 총리 인준안 처리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궤를 같이한다.

 

 

당내 “야당 역할 해야 한다” 목소리도

 

이와 달리 당내에선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협력보단 야당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의 진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대선에서 얻은 41%가 아닌 60%에 가까운 국민을 겨냥하는 것으로 당의 기조를 잡아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당직자는 “호남 의원들이 지금은 지역 여론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올 연말 정도 가면 상당부분 수그러들 것”이라며 “당장 당의 기조를 바꾸긴 어렵겠지만, 서서히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문 대통령에게 호평을 쏟아내고 있는 박지원 전 대표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바람이 불면 잡초는 드러눕지만 바람이 그치면 다시 일어선다. 이제 산들바람은 다 불었다”고 국민의당 역할론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달라진 기류로 읽힌다.

 

국민의당이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우호적인 여론이 강한 문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제동보단 정책을 중심으로 각을 세워나갈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또 다른 당직자는 “정책을 중심으로 민주당은 물론 보수야당인 한국당 및 바른정당과 차별화를 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핵심 당직자는 “캐스팅보트라는 말은 남의 당 일을 기준으로 우리가 따르느냐 마느냐의 문제”라며 “캐스팅보터라는 지위로 우리 것과 우리가 하고 싶은 정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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