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가 등장하자 온 미국이 멈췄다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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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 전 FBI 국장의 청문회 증언과 보수파들의 ‘트럼프 고민’

 

미국의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볼과 같은 열기였다. 키가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사내가 등장하자 카메라 셔터 소리가 기관총처럼 울려댔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 6월8일 10시, 전 미국은 움직임을 멈췄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TV를 시청하는데 몰두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으로 재직하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한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이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FBI는 정치권력에서 독집적인 미국의 최상위 수사기관이다. 1908년에 만들어진 조직으로 역사가 100년이 넘었지만 FBI 국장이 임기 도중 경질된 경우는 단 2번에 불과했다. 수사의 중립성을 위해 의회는 FBI 국장의 임기를 10년으로 정해두고 정권 교체에 영향을 받지 않게 조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2번의 중도 해임 역사 중에 코미 전 국장이 포함돼있다. 

 

6월8일 미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 출석한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무집행방해 여부를 묻는 질문에 "매우 우려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 사진=EPA연합

그는 올해 1~4월 사이 트럼프 대통령과 5번에 걸쳐 접촉했다. 3번은 직접 만났고, 2번은 전화를 통해 대화했다.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 선거 캠프와 공모해 2016년 대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 코미 전 국장이 수사를 지휘하고 있던 때였다. 

 

청문회 출석 전날, 코미 전 국장 측은 시간 절약과 청문회 참가 의원들의 질의를 돕기 위해 답변서를 정리한 문서로 미리 공개했다. 문서에는 이런 내용들이 담겼다.

 

 

△ 2017년 1월6일, 트럼프 타워에서 정보기관이 브리핑한 뒤 1대1로 만났다. 정부 관계자가 미리 계획한 일이었다. 대통령은 FBI가 수사하고 있는 러시아 게이트 수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강의했다.

 

△ 1월26일 백악관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고 회담했다. 단 둘만 남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충성이 필요하다. 진심으로 당신의 충성을 원한다”고 말했다.

 

△ 2월14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브리핑을 한 뒤 대통령이 말했다. (러시아 게이트의 핵심 인물로 해임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 “그는 좋은 사람이다. 수사를 미뤄 달라.”

 

△ 3월30일, 트럼프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고, 4월11일에도 트럼프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5월9일, 갑자기 해임됐다. 

 

증언에 구체적인 정황이 충실하게 추가된 건 코미 전 국장의 메모 때문이다. 메모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솔직히 우리 만남에 대해 대통령이 거짓말을 할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서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부 내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수사를 지휘하는 FBI 국장과 혼자 만나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며, FBI 입장에서는 중대사다. 문서화할 필요가 있었다.” “내 상식에서 볼 때 대통령은 내가 FBI 국장 자리를 대가로 뭔가를 얻으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꼽은 이번 증언의 핵심이다.

 

Q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하나”

A “그것을 결정하는 건 특별검사인 로버트 뮬러의 몫이다. 나는 매우 우려스럽게 생각했다”

 

Q “대통령과 그의 측근이 FBI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A “간단명료하게 말해서 거짓말이다”

 

Q “플린에 대한 수사를 보류하라고 했을 때, 그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하지 않았나”

A “내가 더 강하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때는 그저 경악해 버렸다. 만약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다음에는 좀 더 잘 헤쳐 나갈 것 같다”

 

‘개입’ 보다 ‘공모’라는 단어 택한 미국 언론들

 

코미 전 국장의 증언이 나오면서 ‘탄핵’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절차는 의회가 담당하는 정치적 과정이기 때문에 여야 국회의원들의 구성과 여론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논의해야 할 점은 트럼프의 언행이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되는지 여부다. 

 

사건의 흐름은 점점 트럼프 개인을 향하고 있다. 원래 초점은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이었다. 이후 트럼프 진영 관계자가 러시아와 접촉한 것으로 넘어가더니 트럼프 본인이 사태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로 건너갔다. 이제는 러시아 게이트 수사 방해 여부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언론은 ‘러시아의 대선 개입’을 뜻하는 ‘meddling’(개입, 참견)보다 ‘트럼프 측과 러시아의 공모’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collusion’(공모, 결탁)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다. ‘공모’의 사용은 러시아 게이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 내 분위기를 선명하게 반영한다. 

 

탄핵의 두 가지 전제, 즉 여야의 국회 구성과 여론에서 좀 더 트럼프에 불리한 쪽은 여론이다. 미국 퀴니피액 대학이 5월31일부터 6월6일까지 13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4%였다. 4월4일 최저치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 1%p 더 떨어졌다. 한 달 전 조사와 비교해서는 3%p 더 하락했다. 퀴니피액 대학이 1월 이후 조사한 이래 최저치다. 

 

특히 러시아 게이트를 둘러싸고 일부에서 탄핵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걸 고려한 듯 “대통령이 임기 4년을 채울 수 있는가”를 물었는데, 40%가 부정적이라고 봤다. 퀴니피액 대학의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좋은 소식은 제로다”고 말했다. 

 

그나마 국회 구성이 트럼프 대통령의 버팀목이었다. 워싱턴의 관심은 이번 게이트가 트럼프 정부 존속에 끼치는 영향에 쏠린다. 이 문제가 터지기 전에도 공화당 멤버들은 대통령을 위험한 존재로 봤다. 여전히 탄핵은 생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대신 퇴임시키는 방법도 거론되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수정헌법 제 25조에 따르면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대통령을 퇴임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 조항을 발동하려면 부통령에 의한 절차 개시 및 각료 또는 의회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코미 전 FBI 국장의 상원 정보위 청문회를 시청하는 워싱턴 D.C.의 한 카페 모습. 이날의 청문회는 엄청난 관심을 끌면서 수많은 미국인들을 TV앞에 고정시켰다. ⓒ 사진=AP연합

 

보수파들의 걱정 “트럼프 정신 상태는 괜찮은가”

 

다만 보수층과 공화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현 상황을 이전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징조는 있다. CNN 프로그램 ‘New Day’에 출연한 워싱턴포스트 보수 칼럼니스트인 제니퍼 루빈은 “트럼프의 정신 상태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이 이렇게 불안정해 의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큰 문제다. 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트위터 내용이 대표적인 예다. 6월3일 런던 중심부에서 테러가 발생하자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도시 내 치안 시스템을 두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여기에 대꾸했다. 보안시스템 등의 전후 맥락을 다 자른 채 “사디크 칸 시장이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성명을 낼 때 재빨리 생각했어야 했다. 그건 한심한 변명이었다”고 비판했다. 루빈은 우려했다.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아 긴장 상태에 있는 도시의 시장을 공격하는 사람이 우리의 대통령이다”라고 말이다. 

 

뉴스위크는 칼 번스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공화당의 근심을 전했다. 번스타인은 1972년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냈던 기자다. 뉴스위크는 “번스타인이 지난 5월 다른 기자들과 함께 트럼프의 정신 상태와 판단력에 회의적인 공화당 의원 여러 명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미적지근하던 공화당이 ‘트럼프’라는 개인에 대해 고민하는 시점에 이미 변수는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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