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유통사 적폐 청산이 시장 정상화의 시작”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8 16:55
  • 호수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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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났던 송인서적 회생 소식이 그리 반갑지 않은 이유

 

모두들 소망을 이야기하는 새해 벽두에 출판계는 절망과 충격에 휩싸였다. 국내 서적 유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송인서적의 부도 사태 때문이었다. 송인서적은 지난 1월2일 만기가 돌아온 어음 중 일부를 처리하지 못해 1차 부도를 냈고, 이튿날 최종 부도 처리됐다. 송인서적이 부도를 내면서 출판사 2000여 곳, 서점 1000여 곳이 피해를 봤다. 채권단회의에서 송인서적 측이 밝힌 채무는 거래어음 100억원, 서점채권 210억원, 출판사채권 270억원, 은행융자 59억원 등 총 640억원에 달했다. 특히 송인서적하고만 거래하는 일원화 출판사들이 500군데에 달해 이들의 피해가 가장 컸을 것으로 보인다.

 

 

“과오 되풀이 않으려면 새 마케팅 시스템 연구해야”

 

이런 가운데 지난 5월23일 송인서적이 회생절차를 밟게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서울회생법원은 최근 개원과 함께 도입한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위장 말)’ 매각 방식으로 송인서적에 대한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인터파크는 수의계약으로 송인서적 지분 55%를 5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혀 스토킹 호스가 됐다. 이후 공개입찰에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참여자가 나오면 인터파크가 아닌 제3자가 지분을 인수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소식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반기는 출판사나 서점은 없는 분위기다. 《학교도서관저널》 등을 펴내며 출판에 뛰어들었다가 송인서적 부도로 큰 피해를 보았다고 털어놓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 소식을 전하며 출판의 미래도 걱정했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도매유통사 송인서적 © 시사저널 임준선

 

“송인서적의 부도어음을 모두 막아놓자마자 서울회생법원이 송인서적에 대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런 아이러니가 있나? 언론에서 출판사가 모두 망한다고 난리를 떨어놓았으니 회생절차 개시 신청 후 불과 일주일 만에 결정을 내려줬다. 고마운 일이다. 언론에서는 8월 중순쯤이면 회생절차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송인서적은 살아날 수 있지만, 앞으로 출판사는 살아날 수 있을까? 나는 도매 없이 4개월을 버텼다. 엄청난 빚까지 지며 간신히 현금흐름을 잡았다. 그러니 이제 정말 좋아지는 걸까? 나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도매상 없이 갈 예정이다.  평생 내가 걱정을 하지 않을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송인서적이 부도나기 전에 거래를 중단했다는 한 출판사 영업직원은 “경리부에 결제를 부탁하면 전무를 만나보라고만 한다. 전무를 만나러 가보면 출장이니 뭐니 하면서 만날 수 없어 헛걸음하기 일쑤였다. 난 어음이라도 받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출판사들이 서점에 기본으로 깐다며 최소 1000만원어치의 책들을 저당 잡힌 채 어음을 받거나 거래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늘어만 가는 외상 거래액을 지켜만 보고 있다. 지금은 송인서적이나 북센 등과는 현금거래 아니면 책을 더 이상 줄 수 없다고 통보하고 거래를 끊다시피 했다. 매달 제때 대금을 정산해 주는 인터넷 서점들 몇 곳과 현금거래 가능한 지역 서점들에만 책을 보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출판사들은 도매상들과 대등한 관계이거나 또는 갑을 관계가 뒤바뀐 상황에서 거래를 할 수 있지만, 중소 출판사들은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심정으로 거래를 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송인서적의 회생에 별로 기대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도매상에 의존 말고 출판 마케팅에 눈떠야” 자성론

 

출판사 관계자들로 새 경영진이 꾸려졌기에 기대를 해 달라는 장인형 송인서적 대표는 “올해 초 부도가 났던 기업이기 때문에 국민·출판계 등으로부터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 있다. 영업을 재개하면서 차츰 이런 부분을 해소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창업해 북센과 거래하고 있는 한 출판사 대표는 “조달시장 교육 때 이런 말을 들었다. 나라가 어음을 주면 망한 것이다. 국가 조달시장은 무조건 현금거래라는 점을 강조할 때 나온 소리다. 그런데도 관행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있더라. 송인서적과 거래를 안 한 것이 천만다행이지만, 북센이 그렇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가시방석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송인서적이 회생절차를 잘 밟아 어려움을 겪게 한 출판사들에 외상대금을 정산해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출판사들의 떠난 마음을 돌리기에는 늦은 것으로 보인다. 출판 유통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바뀐다면 모를까 최근 중소 출판사들은 도매상에 책을 넘기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지난 시절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벌을 받은 셈이라고 자책하기도 한다. 한 출판인은 출판 마케팅에 눈을 떠야 한다는 출판마케팅협회의 세미나를 다녀온 소감을 들려준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도매상에 의존하는 분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지금 구조가 도매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출판사들만 피해를 입고 있는데, 다른 방법이 있다면 배워서 그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도매상에 의존하며 간신히 버티다 지난해 문을 닫은 출판사를 나와 새 출판사로 자리를 옮긴 한 영업직원은 모든 것을 ‘직거래’ 하듯이 발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에도 몇 번이고 직접 찾아가 담당자에게 신간 소개를 부탁한다. 발품을 판 것이 효과가 꽤 있다. 유통에 있어서도 도매상에 의존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개인 판매 루트 확보에 힘을 쏟을 시기가 아닌가 한다.”

 

이처럼 송인서적 부도 사태 이후 출판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출판마케팅협회는 출판만 보고 달려왔던 점을 지적한다. 유통이나 마케팅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했던 이들만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또 유통이 파괴되고 있는 지금은 유통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유통 이상의 것을 보는 것이 좋겠다고 지적한다. 

 

 

New Book

 

거대한 불평등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열린책들 펴냄│576쪽│2만5000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저자가 지난 10년간 주로 뉴욕타임스 등에 불평등을 주제로 발표한 내용을 모은 칼럼집. 오늘날의 이른바 1%를 위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거짓으로 가득 찬 자본주의인지,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로 되돌리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 

 

 

여성의 진화: 몸, 생애사 그리고 건강 

웬다 트레바탄 지음│에이도스 펴냄│446쪽│2만2000원

 

 


인류 진화사에서 남성에 가려져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던 여성의 생애를 진화론적 입장에서 다뤘다. 사춘기와 생리에서부터 성적 행동, 임신과 출산, 산후 우울증, 수유와 양육, 그리고 폐경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일생 동안 겪는 몸의 변화와 건강을 인류학·내분비학·심리학·의학·진화생물학에서 나온 연구 성과를 토대로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 

 

 

살아요

케리 이건 지음│부키 펴냄│288쪽│1만3800원

 

 

 


삶의 끝에 선 사람들이 전하는 인생의 진실. 수술 중 투여받은 진통제의 후유증으로 얻은 정신병으로 인해 깊은 우울감과 상실감에 빠져 있던 저자가 호스피스에서 일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담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어떠한 위인이 전하는 명언보다 강력한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음을 알게 해 준다.

 

 

토끼의 아리아 

곽재식 지음│아작 펴냄│340쪽│1만4800원

 

 

 


KAIST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거쳐 현직 연구원으로 활동해 ‘소설 쓰는 과학자’로 유명한 저자의 다섯 번째 단편집. 인터넷에 게재한 작품만으로 드라마화가 되었던, 작가의 기념비적인 데뷔작 ‘토끼의 아리아’를 필두로 ‘맥주 탐정 시리즈’로 불리는 단편들의 초기작 ‘흡혈귀의 여러 측면’과 함께 특히 SF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가려 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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