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데모 지시한 적 없다” 오리발 내미는 靑 행정관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7 09:19
  • 호수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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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데모’ 피의자 허현준 前 청와대 행정관, 검찰 조사에서도 ‘억지 주장’으로 일관

 

지난 5월24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재판에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을 지낸 오아무개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오 전 비서관은 이 자리에서 “허현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관실 행정관이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을 동원한 관제(官製)데모를 주관했다”며 “허 전 행정관이 2014년경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어버이연합 등을 지원하니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을 함께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허 前 행정관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

 

재판에서는 국민소통비서관실 강아무개 전 행정관의 업무수첩이 공개됐다. 2014년 8월10일자 기록에는 ‘산케이 보도 관련, 서울중앙지검/애국단체 시위 협조 요청(강약 조절)’이라는 문구 아래 ‘엄마부대 어버이연합 동원(허)’이라고 적혀 있다. 특검이 “‘허’가 누군가”라고 묻자 오 전 비서관은 “허현준 행정관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산케이신문은 같은 달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모처에서 비선과 함께 있었다는 소문이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는데, 이에 항의하는 관제데모에도 허 전 행정관이 연루돼 있다는 것이다.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오른쪽)은 관제데모를 직접 관리한 ‘지시자’로 지목되고 있다. © 사진=뉴시스

허 전 행정관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 방해에도 관여했다. 5월26일, 업무수첩을 작성한 강 전 행정관이 블랙리스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때 강 전 행정관은 “다이빙벨 상영 확산을 막기 위한 ‘액션 플랜’을 실행한 뒤 보고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면서 “다이빙벨 상영관 455석 전 좌석을 모두 예매하고 영화를 깎아내리는 내용을 언론에 내보낸 뒤 김기춘 전 실장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 작업을 도맡은 인물로 허 전 행정관을 지목했다.

 

허 전 행정관은 관제데모를 직접 지시하고 관리한 이른바 ‘실행자’로 지목되고 있다. 특검에 따르면, 허 전 행정관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월초까지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와 전화통화나 휴대폰 문자메시지, SNS 등을 통해 약 90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집중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시기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둔 시점인 3~4월에 절반 이상인 50여 회의 연락을 주고받았다. 시사저널의 ‘어버이연합 게이트’ 단독 보도 후 뜸해졌던 연락은 지난해 11월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의혹이 본격화하면서 재개됐다.

 

 

허 前 행정관 “문자 보낸 적 없다” 억지 주장

 

더 큰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인 올해 1월까지 탄핵 반대 주도세력과 빈번히 통화했다는 점이다. 탄핵 전의 관제데모가 탄핵 후에는 탄핵 반대 집회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날 청와대 허현준 행정관은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와 90차례나 통화를 했던 그가 말했던 ‘12척의 배’는 결국 극우 성향 단체들과 이를 지원한 전경련의 돈이었나보다”라면서 “탄핵 후에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아직 오만함에 취해 있던 허 행정관. 이제 그들에게 남아 있는 배가 있다면 그것은 검찰수사, 그리고 치러야 할 죗값의 배뿐임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허 전 행정관은 전경련 등을 통한 지원금으로 관제데모를 지시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허현준 행정관이 A4용지에 지원해야 할 단체 이름과 금액을 써갖고 와서 으름장을 놔가며 돈을 요구했다. 주로 극우 성향 단체들이다”면서 “단체 대표들이 직접 찾아와서 ‘청와대랑 얘기가 됐는데 왜 돈을 안 주느냐’고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허 전 행정관도 이 점을 인정했다. 허 전 행정관은 SNS를 통해 “전경련에 지원 요청한 거 맞다”면서도 “하지만 범죄행위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당당히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허 전 행정관은 시사저널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어버이연합에 집회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은 2016년 4월12일자 ‘어버이연합, 세월호 반대 집회에 알바 1200명 동원 확인’ 기사를 통해 ‘어버이연합 게이트’를 처음으로 보도했다. 어버이연합의 2014년 집회 회계장부를 통해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반대 집회에 ‘일당 알바’를 대규모로 동원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어버이연합의 집회는 단지 세월호 반대에만 그치지 않았다. 어버이연합의 2014년 집회 회계장부에 따르면, 어버이연합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산케이(産經)신문 등에 대한 규탄 집회와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지지 집회 및 KBS 왜곡 보도 규탄 집회에 탈북자들을 동원했다.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인물에 대해서는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규탄 집회를 연 셈이다.

 

2016년 4월 어버이연합이 시사저널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어버이연합에 데모를 지시한 윗선을 추적했고, 2016년 4월20일자  ‘[단독] 어버이연합 “청와대가 보수집회 지시했다”’ 기사를 통해 허 전 행정관이 관제데모를 지시한 사실을 밝혀냈다. 허 전 행정관은 이 기사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현재 허 전 행정관의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다.

 

허 전 행정관은 재판 과정에서 기사에 게재된 내용이 아닌, 사실과 다른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허 전 행정관이) 위안부 집회를 2016년 1월4일에 열어 달라고 문자를 보내왔는데, 내가 이를 거절하고 1월6일 개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허 전 행정관은 “내가 추 사무총장에게 1월4일 보낸 문자는 단 1개뿐인데, 그 문자의 내용은 1993년 발생한 남매간첩단 사건 관련 자료다”면서 “따라서 내가 추 사무총장에게 ‘위안부 합의안 체결과 관련한 집회를 1월4일에 열어 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보도는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사저널 기사에는 허 전 행정관이 추 사무총장에게 2016년 1월4일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 기사는 허 전 행정관이 위안부 집회를 1월4일에 열어 달라고 추 사무총장에게 요구했는데 추 사무총장이 이를 거절하고 1월6일에 개최했다는 것이지, 허 전 행정관이 문자를 1월4일에 보냈다는 게 아니다. 추 사무총장은 시사저널 보도 이후 가진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이같이 주장하며 관제데모 지시에 대해 오리발을 내밀었다.

 

 

“지시 안 들으면 예산 지원 다 자르라 했다”

 

최순실 국정 논단 사건에서 밝혀진 것처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부터 청와대 내부의 비서관이나 행정관 등 상당수의 청와대 공무원들, 심지어 청와대를 드나들었던 소위 비선이라고 불리는 민간인들까지 여러 개의 대포폰을 사용해 왔다. 따라서 허 전 행정관이 제출한 통화·문자메시지 내역만으로 관제데모 지시 여부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실제로 허 전 행정관의 문자를 받은 추 사무총장의 전화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번호가 아닌 다른 번호였다.

 

2016년 4월 시사저널 항의시위에 참석한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 © 시사저널 임준선

또한 허 전 행정관은 “추 사무총장과 단지 의견을 교환했을 뿐”이라면서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버이연합 측은 허 전 행정관이 자금 지원을 통해 보수단체를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어버이연합 측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앉아 있으면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을 해야지, 어떤 개인감정을 가지고 자기(허 전 행정관)가 집회 지시를 이렇게 이런 방향으로 지시하는데, 총장님(추 사무총장)은 ‘그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이게 오히려 역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더니 이 X이 ‘자기 말 안 듣는다. 반말 찍찍한다’ 그래가지고 ‘예산 지원하는 거 다 잘라라. 책정된 것 보류시켜라. 못 준다’ 이런 식으로 허현준이가 다 잘랐다”고 밝혔다.

 

허 전 행정관은 시사저널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외에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심우정)에서 관제데모 피의자로 조사를 받고 있다. 허 전 행정관은 검찰 조사에서도 이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고 본인 스스로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 변호사는 “허 전 행정관이 검찰 조사에서도 억지 주장을 펼치는 것은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이 별개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어버이연합에 관제데모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형을 감형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특검 조사를 통해 상당 부분 혐의가 밝혀진 만큼 법의 엄정한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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