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존재감이 없는 지도자를 꿈꾸며
  • 남인숙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2 10:47
  • 호수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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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이고, 그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이며, 가장 좋지 못한 것은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이다. (중략) 훌륭한 지도자가 할 일을 다 하여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모두가 우리에게 저절로 된 것이다.”’

 

《도덕경》의 말씀이다. 노자의 주장대로라면, 현재 소탈하고 인간적인 행보로 80%를 웃도는 지지를 받고 있는 새 대통령은 두 번째쯤의 좋은 지도자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현인들이 요순시대에서 유토피아를 찾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두 번째 좋은 지도자가 현실적으로 최선의 지도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좋지 못한 지도자’를 가졌을 때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돌이켜보면 존재감 없는 지도자의 미덕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21일 오후 경남 양산시 매곡동 사저에서 편한 차림으로 한 방문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우리는 취업이 안 되면 내 스펙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고, 아이 낳아 키우기가 벅차면 능력이 충분하지도 않으면서 부모가 된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아파트 숲은 날로 빽빽해져 가는데 거기에 내 집은 없다는 것에 대해 무력감을 느낀다. 간혹 ‘헬조선’이라는 말로 세상 탓을 해 보기도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더 깊은 곳에 ‘내 잘못이야’라는 자기 원망이 깔려 있다는 것을.

 

산업사회 이후 개인의 힘이 커지면서 오히려 우리는 각개 삶의 질에 대한 고통은 물론 죄책감마저 떠안게 되었다. 계급이 명확히 나누어져 있는 사회에서 일방적인 지배를 받던 중세의 백성들에게는 자신들이 잘살고 못살고의 책임소재가 명확했다. 백성이 못살면 무조건 군주가 덕이 없어서였다.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나는 것마저 왕의 탓이었기에 흰옷을 입고 하늘에 용서를 빌며 제를 지냈다.

 

현대의 나쁜 지도자는 국민들을 자기 힘만으로 잘살기 힘든 환경으로 몰아넣고서도 스스로를 원망하게 만든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자살률 부동의 1위라는 통계는 그간 우리가 어떤 지도자들을 만났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의 새 대통령은, 최소한 현재까지는 그게 우리 잘못이 아니었다고 위로해 주고, 진짜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려 하는 듯하다. 지금은 이전 정권과 다른 행보에 관심과 환호를 보내고 있지만, 그 노력들이 어렵게 성공으로 이어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오히려 좋은 지도자의 존재를 잊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노력했더니 성공했어.” 

“내가 열심히 일하니까 이만큼 사는 거야.” 

원래 대중의 속성이란 게 그렇다. 길은 멀고 산은 높으며 강은 깊다. 오로지 따라갈 수 있는 빛만 있을 뿐인 이 정국에서 대통령이 더 이상 의식되지 않고, 또 그래도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올 수 있다면, 그건 기적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모든 발자취들이 기적이기에 또다시 꿈을 꾸어본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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