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세계사 편)] ‘기후변화’ 새로운 역사보기의 실마리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0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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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범 교수의 천문관측지 지도는 지난 세기 말부터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일련의 새로운 질문들에 대해 확실히 긍정적인 답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까지 교육 받아서 알고 있는 것보다 우리 조상들은 훨씬 더 위대했고, 그 활동무대는 거의 동아시아 전역이라고 봐야 될 정도로 넓었던 게 아니냐는 질문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시대 만들어진 교과서에서부터 가르쳐 온 토끼 모양의 반도 지형이 한민족 땅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다가 지난 세기말부터 역사지도에서 토끼 머리 부분이 확 부풀었다. 많은 역사학자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 고구려와 발해가 대륙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제 한국 내에서는 어느 정도 공식적으로 인정되게 된 것이다.

 


 

대륙백제설․대륙고려설․대륙가야설, 한반도 역사를 둘러싼 설설설

 

그런데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대륙백제설, 대륙고려설, 심지어 대륙가야설 등의 근거가 될 만한 새로운 증거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 대륙백제설이란 백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듯이 충청도와 전라도 일부를 영토로 했던 국가가 아니라, 만주 요동 지역을 근거지로 중국 대륙과 한반도 서남부, 일본에까지 영토를 갖고 있었던 국가라는 주장이다. 대륙고려설은 고려의 영토가 만주를 포괄하고 중국의 황하 유역에까지 뻗어있었다는 주장이다. 백제나 고려나 해상활동이 활발해서 유라시아 대륙의 해안을 따라 아라비아 반도와 지중해까지도 진출했다는 얘기도 포함된다.

 

왼쪽으로부터 대륙백제, 대륙고려, 대륙가야 추정 지도. ⓒ 이진아 제공

 

이런 ‘설’들은 종합적으로 체계를 갖추어 제시된다기보다는 부분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주장되고 있으며, 각 주장에 대해서 사실이다 아니다 하는 논의가 있어서 아직도 의론이 분분한 상황이다. 공식학계의 입장은 일단 전반적으로 신중한 (때론 지나치게 신중한) 제스처로 보인다. 하지만 학계에서 견고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학자 중에서 이런 이론에 대해 꾸준히 연구 성과를 내어놓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 성과가 블로깅 등 온라인 담론 공간을 통해 대중에게도 확대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박창범 교수의 지도는 그 모든 가능성에 대한 탐구들 혹은 주장들에 확실히 ‘YES’라는 답변을 내려주고 있는 셈이다. 기록에서 왜곡되지 않고 말살되지 않았던 부분을 과학적으로 복원해보면 우리 민족의 강역은, X축은 우랄 산맥에서 일본 열도까지, Y축은 시베리아에서 동남아시아 일부에 이르는 엄청난 땅과 바다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왔던 ‘대륙○○설’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을 범위다. 

 

이 지도는 우리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는 중이다. 과거엔 이랬는데, 왜 우리가 모르고 있느냐고.

 

역사의 바퀴가 여러 번 돌아서 한참 뒤 후손인 우리는 모를 수도 있다. 앞서 보았듯이 역사의 어느 시기에 인접국과의 관계에서 정치공학적인 이유로 역사기록이 조작되어 그대로 전해지는 일은 인류 역사상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조작된 가짜 역사는 한동안 공식 역사 노릇을 한다. 후대 사람들이 노력을 해서 다시 원래 모습을 찾기 전까지는.

 

역사시대 동안 동아시아 정치 프레임 속에서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중국 대륙에 사는 사람들에게 눌리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시대부터인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의 국가로서 중국 대륙에 존재했던 국가보다 확실하게 낮은 국격을 가졌던 것은 조선시대였으며, 이어서 일제강점기가 있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현재 시점에서 아주 가까운 550년 정도 되는 세월동안, 대놓고 한민족의 위상을 깎아내리려는 노력이 지속되어 왔을 테다. 그 정도의 세월이면 민족으로서의 집단적 기억도 충분히 변형될 수 있을 것이다.

 

 

기후가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여기 덧붙여서 이 시리즈에서 특별히 조명하고 싶은 부분은, 그 550년은 기후변화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시기였다는 점이다. 정확히 1300년대 말 고려가 패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던 시점에서, 1800년대 말 조선이 망하고 일제 강점이 시작되던 때까지의 500년간을 기후변화 역사에서는 ‘소빙하기’ Little Ice Age라고 부른다. 기후변화 주기 중에 한랭기에 속하며, 1만2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이후 가장 추웠던 한랭기였다. 

 

과거 1만년간의 지구평균기온 변화 (출처: earthscience.com)


 

이 사실은 역사왜곡 문제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왜냐 하면 온난기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살아갔던 인간 집단과 한랭기에 그랬던 집단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몇 백 년에서 길게는 천 년 이상의 주기를 갖는 기후의 변화에 따라 온난기의 주류 집단과 한랭기의 주류 집단 사이에 권력 교체가 일어났다. 따라서 500년 이상의 한랭기가 비교적 최근에 있었다면, 지금 전해져오고 있는 역사는 한랭기에 주류를 이루었던 사람에게 유리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세계사의 대부분을 규정하고 있는 근현대 유럽의 역사인식 경우는 일견 예외인 것처럼 보인다. 한랭기에 주류 집단을 이루었던 유럽인이 온난기 주류 역사인 그리스와 로마를 적극 연구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역사가 근대 유럽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나중에 적절한 맥락에서 좀 더 얘기가 나올 것이다.)

 

두 집단을 아주 거칠게 구분하자면, 육지를 주 활동 무대로 삼아 살았던 사람들과 바다를 주 활동 무대로 해서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하 ‘육지 사람’, ‘바다 사람’이라고 간단히 지칭하겠다. 물론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 두 집단은 필연적으로 섞이게 되며, 상황에 따라 다른 성향들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크게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온난기 동안에는 바다 사람들에게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다. 큰 나무가 잘 자라 배를 만들 수 있으며, 강과 바다 입구의 수심이 깊어져 배를 타고 움직이기 좋고, 때로는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한랭기동안에는 배를 이용해서 활동하기 어려우며, 위도가 높은 곳엔 강이 얼어붙어 일종의 고속도로를 제공하기 때문에 육지 사람에게 유리하다. 

 

육지 사람과 바다 사람의 파워 시프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역사담론에서 간간히 설명이 되곤 했었다. 예를 들어 동양에서는 중국 명나라의 환관 정화 및 그와 관련되는 환관 세력 집단은 이 글에서 ‘바다 사람’이라고 부르는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기술되며, 그와 맞서서 세력 각을 세웠던 관료 집단은 ‘육지 사람’으로 분류되는 특성을 갖는 것으로 기술되고 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알프스 산록을 기반으로 성장한 에트루스카 인과, 그보다 남쪽으로 바다에 연해 있는 아펜니노 산록 및 지중해를 기반으로 성장한 일리리아 인이 각각 육지 사람과 바다 사람의 특성을 갖고 세력 교체를 해왔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세력 교체가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지극히 최근에 와서야 인지되기 시작하는 상황이다. 당연한 것이, 기후변화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가시적으로 복원해내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말부터이기 때문이다. 과거 기후변화에 대해 복원된 자료는 기록된 역사에서는 물론, 기록되지 않은 오래 된, 종종 망각됐던 역사 시대의 흔적을 새롭게 분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지질학적 자료를 토대로 충분한 연구노력만 기울인다면 아주 오래 전의 기후상황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알 수 있게 됐고, 그런 연구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과거의 기후 상황 그 자체는 우리에게 별로 쓸 만한 메시지를 주지는 못한다. 그걸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의미로 읽어내려면 또 그 분야의 훈련을 받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역사학과 기후학의 접목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 두 과학의 콜라보가 과거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인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하다. 어쨌든 이런 연구가 인간에 의한 역사 왜곡의 가면을 깨뜨릴 수 있는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역사 왜곡을 극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돌파구가 일견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도 생겨나고 있다. 바로 유전과학 분야다. 지난 세기 말부터 첨단학문 중에서도 최고의 화두 중 하나로 주목 받아온 ‘게놈’genome 연구가 인간의 세포 속 깊숙한 곳 DNA에 새겨져 내려온 인간의 역사를 말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학문의 변화와 발달로 인해, 지난 세기까지 진리로 간주되던 인간에 관한 지식이 빠른 속도로 바뀌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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