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모였던 ‘광화문 광장’, 다시 ‘붉은 악마’의 장으로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5.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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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포르투갈전 열리는 30일 서울 광화문 거리응원전 펼친다

 

15년 전 5월31일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 날이었다. 축구 변방으로 여겨졌던 한국 대표팀은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전통적인 축구 강호를 연달아 격파하며 4강 신화를 써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응원 구호를 현실로 이뤄낸 것이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한 채 붉은 티셔츠를 입고 광장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쳤다. 

 

당시의 설레였던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킬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이 현재 한국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 U-20 대표팀은 조 2위로 일찌감치 16강에 진출한 상태다. 오늘 저녁 8시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포르투갈과의 경기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선수들이 1983년 U-20 월드컵에서 기록한 ‘4강’이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넘어설지에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광화문 거리 역시 다시 붉은 티셔츠를 입은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한국 U-20 대표팀이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승리하기를 염원하는 거리응원이 오늘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

 

2017 U-20 월드컵 A조 조별리그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열린 5월2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거리 응원전에 참가한 시민들이 이승우의 선제골에 환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축구 거리응원의 역사 

 

탄핵정국에서 촛불을 밝히던 시민들이 축구 응원을 하기 위해 광화문을 찾고 있는 것이다. ‘문화축제의 장’이자 촛불집회의 배경이었던 광화문은, 다시 스포츠라는 문화를 공유하고 응원하기 위한 공간으로 돌아왔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광화문이 거리응원전의 본격적인 메카로 떠오른 시작점이 됐다. 거리응원전이 월드컵 행사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면서 관심이 집중됐던 것 중 하나가 옥외전광판 중계였다. 당시 거리응원전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옥외 전광판 중계행사에 고액의 중계권료를 요구하면서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002년 6·13 지방선거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에게도 월드컵 응원은 중요한 선거운동이 됐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광화문에서 한국과 프랑스 간 월드컵 국가대표팀 친선 평가전을 시민들과 함께 시청하며 응원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일 월드컵 이후 본격적 ‘응원의 메카’

 

한일 월드컵은 한국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월드컵이었다. 당연히 국민적인 관심도 지대했다. 16강이었던 한국-이탈리아전 당시에는 180만명의 ‘붉은악마’들이 서울시청 앞과 광화문 일대와 종로거리를 가득 채웠다. 8강전인 한국-스페인전이 열린 2002년 6월22일에는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에 80여만명이 모였다. 전국적으로는 340여 곳에서 500만명의 인파가 모여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이후 월드컵 경기 때마다 광화문과 서울시청 광장은 서울시민들이 모이는 응원의 공간이 됐다. 2004년 8월 아테네올림픽 8강 파라과이전 당시에는 새벽 2시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5만여 명이 모여 서울을 붉게 물들였다. 2005년에는 예선전에도 ‘붉은악마’들이 모였다. 2006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경기를 응원하는 시민들로 광화문을 가득 채웠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한 한국야구 대표팀이 세계 최강 미국 대표팀을 꺾는 등 연일 선전이 이어지자 야구 열기가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는 광화문 등에 응원전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WBC 4강 한일전에서는 광화문 길거리 응원이 다시 재연됐다. 경기시작 전 가수 이선희 등 대형 가수의 공연 등이 함께 열려 응원을 더 달아오르게 했다.

 

2010년 6월17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붉은악마를 비롯한 시민들이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조별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거리응원전, ‘월드컵 특수’로도 이어져

 

2006년 독일월드컵 때도 광화문에 30만명이 집결했고, 대규모 응원전이 펼쳐지는 광화문과 대학로 등 인근 상점들의 매상이 몇 배 이상으로 뛰는 ‘월드컵 특수 현상’까지 불러일으켰다. 특히 고공행진을 한 것은 편의점 매출이었다. 그러나 거리응원전을 마친 거리에 쓰레기 더미와 물병, 비닐봉지 등이 방치되는 등 쓰레기장을 방불케 해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에는 2002년부터 거리응원을 주도했던 붉은악마가 서울광장에서 펼쳐질 남아공월드컵의 응원에 참가를 고심하기도 했다. 서울광장에서의 응원이 대기업 주도로 이뤄져 자칫 기업의 마케팅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붉은악마는 애초 서울광장과 광화문 광장, 코엑스에서 거리응원을 펼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은 서울시가 개방불가 방침을 밝혔고, 코엑스에서는 거리응원을 주관하는 SBS와 기업 브랜드 노출 여부를 두고 마찰을 빚었다. 결국 ‘붉은악마’가 응원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거리응원은 계속 이어졌다.

 

2014년에 열린 브라질 월드컵 거리응원전은 모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이때부터는 개그맨들과 아이돌 등이 포함된 응원단도 응원전에 가세해 수만 명의 시민들과 함께 공연을 하는 등 응원전 자체가 하나의 축제의 장으로 거듭났다. 사상 최대의 성적에는 다시 미치지 못했지만,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붉은 물결을 흔들며 ‘AGAIN 2002’라는 구호로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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