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최전방의 도시, 평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까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 연구실 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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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평화누리·율곡습지공원·캠프그리브스 등 시민 곁으로 한 발 다가선 파주

 

한국전쟁이 끝나던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제1조에는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약칭 DMZ는 글자 그대로 무장이 금지된 곳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비밀의 땅이기도 하다.

 

군사분계선의 남쪽 2km 지점이 남방한계선이다. 이 남방한계선을 접하고 있는, 소위 ‘접경지역’은 군사적으로 예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60여 년의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접경지역에서는 자유로운 통행도, 개발도 금지되어 있다. 이 지역을 찾을 때마다 ‘비무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지 깨닫곤 한다.  

 

경기 파주는 DMZ접경지역 중에서도 일반인들에게 친근한 도시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가깝다. 유명한 안보관광지도 많다.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으로 경비하는 유일한 지역으로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더 잘 알려진 ‘판문점’이 바로 파주에 있다. 1972년에는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북한 실향민들을 위한 임진각이 세워졌다. 1978년에는 북한의 남침용 땅굴 중 서울에서 가장 가까워 더욱 소름끼치게 했던 제3땅굴이 발견되었고, 1986년에는 북한의 개성공단이 훤히 보이는 도라전망대가 만들어졌다.

 

파주시의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들어가는 초소. 출입하는 사람들의 신분증과 사전 신고여부를 확인하는 곳이다. ⓒ 김지나 제공

 

 

 

파주의 대표 장소 DMZ

 

DMZ는 훌륭한 관광상품이다. 특히나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 DMZ는 꼭 가봐야 할 매력적인 장소로 꼽힌다. DMZ관광이라고 하면, 전망대에 올라 희미하게 보이는 북한땅을 바라보거나 북한이 파놓은 땅굴을 구경하는 일 정도를 떠올리기 쉽다. ‘안보관광’이라고도 불리는 이 특별한 경험들은 북한을 한낱 구경거리로 만들고 악랄한 적군 정도로 기억하게 하는 장치다. 외국인들에게는 군인들의 살벌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구시대의 유물과도 같은 이 DMZ를 체험하는 것이, 그저 외국여행 중의 특별하고 재미있는 오락거리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DMZ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안보’보다는 ‘평화’를 강조한다. 엄숙하고 공포스런 이야기보단 유쾌한 프로그램들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선사하기도 하고,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상상과 시도가 펼쳐지는 장이 되기도 한다. 파주는 DMZ의 이 참신한 변화의 중심에 있는 도시다. 아니, 선두에 서서 변화를 이끌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5월 어린이날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의 전경.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구성되는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 김지나 제공

 

2005년, ‘세계평화축전’이라는 행사가 파주에서 개최된 적이 있다. ‘평화, 상생, 통일, 생명’이라는 가치들을 주제로, 총 42일 간 파주시 곳곳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펼쳐졌었다. 그 때 만들어졌던 ‘임진각 평화누리’라는 공원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DMZ관광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다. 경기관광공사에서는 이 임진각 평화누리를 ‘일상 속의 평화로운 쉼터’라 소개하고 있다. 언제든지 가벼운 마음으로 평화누리를 찾아달라 말한다. 경기도와 파주시가 꿈꾸는 DMZ는 철저하게 분리되고 통제되는 곳이 아니라, 이렇듯 도시의 일부로서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장소인 듯하다.

 

 

작년 1월에는 임진강을 따라 생태탐방로가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지 40여년 만이었다. 개방 1년만에 1만명이 이곳을 찾았고, 이 길을 따라 걷는 걷기행사에는 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렸다. 생태탐방로가 시작되는 파주시 파평면 일원에는 ‘율곡습지공원’이 있다. 버려졌던 습지를 시민들이 나서서 공원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라 더 정감가는 곳이었다. 필자가 찾은 5월의 율곡습지공원은 바람을 따라 물결치는 청보리밭이 싱그러웠다. 바로 옆이 남방한계선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철책선이 무색해지는 것, 그게 평화의 시작이 아닐까.

 

파주 임진강 생태탐방로 걷기행사에 참여한 사람들 ⓒ 김지나 제공

 

 

 

유스호스텔로 탈바꿈한 미군사병 숙소 '캠프그리브스'

 

최근에는 파주시 군내면, 민간인 통제구역 내에 있는 전 미군기지 ‘캠프그리브스’의 변신이 이슈다. 2013년 사병숙소 건물을 유스호스텔로 리모델링한 것을 시작으로, 작년 9월에 이어 올해 5월에는 예술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셔틀버스를 타고 도착한 캠프그리브스에는 허락되지 않았던 장소에 처음 발을 내딛는 설렘과 긴장감이 있었다. 건물의 건축적 가치라든가, 이 일대의 생태적 가치라든가 하는 이야기들은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그보다, 완전히 자유롭게는 아직 어렵더라도 일반 민간인인 우리가 이 장소를 경험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도 과거에 행해지던 고리타분한 안보투어가 아니라 보다 참신한 여가활동으로서 말이다.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아야겠다는 교훈을 얻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꼭 과거의 상처를 들추어내고 역사를 박제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고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을 ‘다크투어리즘’이라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대표적인 예다. 이 장소들은 분노와 슬픔, 공포의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제 DMZ는 그런 감정들로부터 벗어나, 즐겁고 일상적인 장소가 돼야 한다. 그것이 이 잃어버린 땅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평화로운 촛불시위가 과격한 집단행동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수십 년간 금지되어 왔던 이 땅을 평범하게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평화’라는 것이 실현되지 않을까. 파주시를 시작으로, 더 넓은 DMZ가 시민들에게 허락되기를 바래본다.

 

예술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파주 캠프그리브스의 옛 군사건물들 ⓒ 김지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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