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드 감정 잦아드나
  • 중국 단둥=김지영·유지만 기자, 모종혁 중국 통신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3 11:02
  • 호수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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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서자 중국의 한한령 해제 징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때문에 장사하기 힘들다.”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단둥(丹東)에서 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필품 등을 판매하는 대형 상점 여주인이 한 말이다.

 

이 상점에선 한국산 압력밥솥부터 그릇 등 주방용품과 옷, 구두 등을 판다. 이 상점 여주인은 5월16일 취재진을 만나 “지난 3월쯤부터 한국에서 물건이 잘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 때문에 세관 통관을 어렵게 해 놨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됐으니까 사드 문제도 잘 해결될 것으로 본다”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사드 배치 후 중국의 대(對)한국 제재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중국 내 한국 기업 제재뿐 아니라 무역 장벽도 높여 놨다. 당장 북·중 교역의 중심지인 단둥 지역 경제에도 사드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한국 물건을 선호하는 북한 사람들에게 공급해야 할 물건이 제때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월16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평안북도 번호판을 단 북한 화물트럭 © 시사저널 유지만

 

대북 보따리상 대부분 ‘개점휴업’

 

2010년 천안함 사태로 취해진 대북 교역 중단 조치인 ‘5·24 조치’ 이후에도 한국 상품은 ‘음성적으로’ 북한에 들어간다. 그 역할을 하는 이들은 ‘보따리상’이다. 이들은 인천항에서 배로 중국 단둥항까지 물건을 싣고 와서 단둥 상인들에게 넘긴다. 이 물건들이 단둥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드 배치 논란이 일면서 중국 세관이 이전보다 엄격하게 통관 절차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세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단둥 현지인에 따르면, 사드 배치 논란 이전까지 한국인 보따리상은 한 번에 보통 100kg 이상씩을 단둥으로 갖고 왔다. 보따리상 100명이 한꺼번에 갖고 가는 한국산 가전제품과 생필품은 최소 10톤에 달했다.

 

하지만 사드 논란 이후 중국 세관이 물건 수량을 제한했고, 통관 절차도 까다롭게 하면서 보따리상이 중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물건 수량이 대폭 줄었다. 물량이 ‘대량’에서 ‘소량’으로 줄면서 수지타산이 안 맞자 대부분의 보따리상은 ‘개점휴업’ 상태다. 그 여파가 단둥 지역 경제에도 미치고 있다.

 

사드 여파는 경제 부문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 등 한류 문화도 차단하고 있다. 단둥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전에는 한국 드라마를 핸드폰으로 마음껏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볼 수 없다. 우리(중국) 정부가 보지 못하도록 막아놨기 때문이다”며 아쉬워했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 문화 제재 조치가 조금씩 해제되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5월13일 보석 전문기업 테시로(Tesiro)의 선둥쥔(沈東軍) 사장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다. 한국 배우 이종석과 중국 배우 정솽(鄭爽)이 주연한 한·중 합작 드라마 《비취연인(翡翠戀人)》이 조만간 정식 방영된다는 것이었다. 《비취연인》은 지난해 6월 촬영을 마쳤고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의 심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한·중 합작에다 대표적인 한류 스타가 출연해 방송이 계속 미뤄졌었다. 테시로는 《비취연인》 제작에 투자한 기업 중 하나다.

 

다음 날 제작사 씨에이치수박의 최세연 대표는 “창작 뮤지컬 《빨래》가 6월23일부터 7월9일까지 베이징 다인(大)극장에서 공연된다”고 발표했다. 《빨래》는 달동네를 배경으로 강원도에서 상경한 젊은이,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등 이웃과의 애환 어린 서울살이를 그린다. 최 대표는 “현지 배우와 중국어로 제작하되, 서울 달동네와 원작 인물은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틀 뒤에는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와 《빈센트 반 고흐》가 각각 8월과 9월 중국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하기로 확정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래 지속됐던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한국 문화콘텐츠 금지 조치) 빗장이 조금씩 내려지고 있다. 5월12일 중국 ‘차이나데일리’는 “한국인 재즈 피아니스트가 베이징에서 팬들을 매료시켰다”고 보도했다. 전날 배세진씨가 가진 연주회를 소개한 것이다. 차이나데일리는 중국의 대표적인 관영 영자지다. 사드 배치 결정이 난 뒤 관영매체는 한국 문화예술 관련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순수 예술인의 공연은 줄줄이 취소됐다. 2월 소프라노 조수미씨는 비자를 받지 못해 광저우(廣州), 베이징, 상하이에서의 공연을 접었다. 3월 피아니스트 백건우씨도 같은 이유로 구이저우성(貴州省) 구이양(貴陽) 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취소했다. 4월에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씨가 상하이발레단과 함께하려던 《백조의 호수》 공연이 무산됐다. 이처럼 한한령의 칼날은 한국을 겨눴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중국 내 기류가 급변하고 있다. 3월초 중국 3대 음원사이트에서 사라졌던 한국 차트가 다시 등장했다. QQ뮤직은 이전처럼 한글로 가수 이름과 노래명을 복원했다. 비록 최대 음원사이트인 바이두(百度)뮤직과 3위인 왕이(網易)뮤직은 여전히 케이팝(K-POP)을 빼놓고 있지만, 이들도 QQ뮤직의 전철을 따를 공산이 크다. 실제 중국 음악 업계에선 케이팝 가수들의 중국 공연을 암암리에 추진하고 있다.

 

중국 3대 음원사이트 QQ뮤직에 다시 등장한 한국 차트 © 시사저널 포토

 

한한령, 중국 문화산업 보호 조치

 

콘서트 기획업체 펑거성뎬(風格盛典)의 리샤오레이(李小雷) 회장은 ‘란징(藍鯨)TMT’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EXO, 방탄소년단 등 한류 가수의 콘서트를 추진 중이라 한한령이 풀리면 곧바로 콘서트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공연한 아이돌 그룹도 나타났다. 5월17일 한·중 합작그룹 바시티(VARSITY)의 유닛인 ‘바시티 파이브’가 베이징에서 쇼 케이스를 열었다. 비록 12명의 멤버 중 중국인 5명만 참여했지만, 쇼 케이스를 진행한 스태프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다.

 

그동안 한한령으로 인해 국내 문화산업계가 입은 피해는 막대했다. 4월16일 문화체육관광부는 “3월16일부터 4월15일까지 접수된 피해 사례는 사업계약 중단·파기 13건, 제작 중단 5건, 투자 중단 4건, 행사 지연·취소 3건, 기타 6건 등 총 31건”이라고 발표했다. 장르별로는 방송 10건, 게임 6건, 애니메이션 4건, 엔터테인먼트·음악 4건, 캐릭터 3건, 기타 4건 등이다. 문체부는 공공기관들이 운영하는 중국 사업 피해 신고센터를 통해 피해 사례를 접수했었다.

 

특히 중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제작됐던 드라마가 직격탄을 맞았다. 그 대표작이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사임당》)다. 《사임당》은 2004년 중국에서 드라마 한류 붐을 일으켰던 《대장금》의 히로인 이영애를 앞세워 사전 제작됐다. 한·중 동시 방송을 위해 지난해 6월 촬영을 마쳤고, 광전총국에 심의를 신청했다. 본래 SBS는 10월에 《사임당》을 방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광전총국의 심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편성을 미뤘다. 올해 1월부터 방송됐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은 떨어졌다.

 

이는 KBS 2TV 드라마 《화랑》도 마찬가지였다. 《화랑》은 중국 시장을 겨냥해 아이돌 스타들을 대거 주연과 조연으로 발탁했다. 비록 광전총국의 심의를 통과해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인 러스왕(樂視網)에서 동시 방영됐지만, 2회만 방송된 뒤 중단됐다. 결국 《화랑》은 종영될 때까지 중국 방영은 재개되지 못했다. 이에 반해 검증되지 않은 아이돌을 기용한 여파로 인해 한동안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게다가 지지부진한 스토리 전개까지 더해져 평균 시청률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현재로선 한한령이 완전히 해제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사라졌던 송혜교·전지현 등 한류 스타가 출연한 광고가 동영상 사이트에 다시 등장했으나 TV에선 여전히 이들을 볼 수 없다. 또한 드라마, 예능, 영화 등 한국 콘텐츠가 동영상 사이트에서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중국 업체들에서 문의가 자주 온다”면서도 “한한령의 해제를 전제로 한 사전 접촉일 뿐”이라고 말했다.

 

5월3일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차이나 리스크’ 염두에 둔 접근 필요

 

무엇보다 한한령은 사드 배치를 빌미 삼아 자국의 문화산업을 보호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림수였던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해마다 중국 내 인터넷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지난해 동영상 사이트 시장 규모는 전년대비 53.6%나 폭증한 615억9000만 위안(약 10조422억원)을 기록했다. 인터넷방송 플랫폼 시장 규모도 150억 위안(약 2조4457억원)에 달해 전년 대비 66.7% 급증했다.

 

급성장하는 자국 시장을 등에 업고 연 매출액 2000만 위안 이상인 문화산업 기업 약 5만 개가 거둔 매출액은 8조314억 위안(약 1309조원)에 달했다. 비록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갈수록 늘어나지만, 아직 우리 업계보다는 뒤처진다. 실제 한국에서 낮은 작품성으로 질타받았던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와 《달의 연인》이 중국 동영상 사이트에선 조회 수 각각 41억 뷰와 26억 뷰를 달성해 대박을 터뜨렸다. 따라서 한한령이 해제된다 하더라도 ‘차이나 리스크’를 항상 염두에 두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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