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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문 대통령, 서둘러 미국 가면 낭패당할 수도…

한·미 FTA 재협상 추진하는 트럼프의 속셈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6(Tue) 14:01:00 | 14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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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야말로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을 가장 잘 사용하는 사람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논란과 관련해 미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가 내뱉은 말이다. 대체로 ‘벼랑 끝 전술’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이용해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전술로 통하는데, 트럼프 대통령 또한 이 전술로 재미를 톡톡히 보는 스타일이란 평가다. 미국 언론들이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전략을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의미다. 상대에게 미치광이처럼 보이게 해서 공포를 준 다음 원하는 수준을 높여서 협상에 임하는 전술이다.

 

지난 4월28일, 트럼프 대통령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미 FTA를 “끔찍한 협정이고 받아들일 수 없으며, 재협상을 하거나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는 한·미 FTA는 물론이고 한국에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서도 10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트럼프의 이 두 가지 주장에 한국은 벌집 쑤신 듯 뒤집어졌다. 그런데 트럼프는 같은 인터뷰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협상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실토했다. 트럼프는 “어제 멕시코 대통령과 캐나다 총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나프타 폐기 말고 협상할 여지가 없느냐고 해서 ‘좋다. 나는 일관적이지만, 폐기하지 않고 공정한 무역 거래를 할 수 있다면 해 보자’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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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式 ‘벼랑 끝 전술’

 

4월26일,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프타 폐기를 위한 행정명령을 준비하고 있으며 곧 행정명령 초안이 공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멕시코 페소화는 달러 대비 2%, 캐나다달러는 0.3%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트럼프의 전술에 시장이 크게 흔들린 셈이다. 미국이 나프타에서 탈퇴할 경우 경제적 타격을 우려한 캐나다와 멕시코 정상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협상의 상대방을 극단의 궁지로 몰아넣은 다음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캐나다와 멕시코 측에 “트럼프 대통령을 한 번 더 설득해 보라”고 슬쩍 귀띔을 해 줬다. 결국 멕시코 대통령과 캐나다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모양새를 취했고, 백악관은 4월27일 성명을 통해 “애초 2~3일 안에 나프타 폐기를 선언하려고 했으나, 캐나다 총리와 멕시코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와 재협상을 요청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곧바로 트위터를 통해 “모두를 위해 공정한 협정을 타결하지 못할 경우, 그때 가서 나프타를 폐기하는 데 동의했다”며 쐐기를 박았다. 일단 재협상하지만, 미국에 유리하지 않을 경우 얼마든지 다시 폐기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나프타를 ‘무역 적자의 원흉’으로 규정해 온 트럼프가 재협상에서도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미국 경제에도 타격이 불가피한 협정의 폐기를 선언하지 않고도 유리한 위치에서 재협상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트럼프의 ‘벼랑 끝 전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 셈이다.

 

이제 다시 트럼프의 칼끝은 한국을 향하고 있다. 나프타 재협상에서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째를 맞은 4월29일, 한·미 FTA를 비롯해 교역국은 물론 세계무역기구(WTO)와 맺은 모든 무역협정을 전면 재검토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는 180일 안에 미국 내 일자리를 빼앗고 무역적자를 심화시키는 무역협정을 조사한 뒤 이에 관한 해결책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한국 때리기 나선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4월28일 워싱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한·미 FTA에 관해 “힐러리 클린턴이 협상한 이 협정은 미국에는 아주 나쁜 협상이었다”고 밝혔다. 전날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주 ‘끔찍한(horrible)’ 협상이라고 말한 데 이어 연일 ‘한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또 “나프타 재협상을 마무리하면 한·미 FTA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말해 한국과도 협상 전쟁을 개시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전례가 없는 대통령 탄핵 사태와 맞물리면서 권력 공백 상태에 빠진 한국 정부의 대응은 무뎠다. 연일 “공식적으로 통보를 받은 바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한국 때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의 칼날을 피하고 있다. 미국이 가장 날을 세웠던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국 방문을 통해 중국의 대미(對美)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한 ‘100일 계획’을 제시하며 환율조작국 지정과 관세 보복을 일단 피했다. 시 주석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와 중국 금융기관에 대한 미국 투자자의 주식 보유 한도 증액에도 합의했다. 일본도 아베 총리가 미국 방문을 통해 미국에 4500억 달러 규모 투자와 70만 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는 선물 보따리를 트럼프에게 안겼다. 또 양국 간 협력 강화를 위한 고위급 채널인 ‘미·일 경제대화’도 출범시켰다. 대선 캠페인 기간 “미국의 경제적 굴종 시대를 끝낼 것”이라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당한 ‘당근’을 안긴 셈이다.

 

중국과 일본의 사례는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한국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대선 기간에 “2012년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한·미 FTA를 밀어붙였다”며 “그 여파로 대(對)한국 무역적자가 두 배로 늘었고 미국 내 일자리도 10만 개나 사라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의 통계에 의하면, 2012년 3월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의 대(對)한국 상품교역 적자가 2011년 132억 달러에서 2016년에는 277억 달러로 늘어났다. 당장 트럼프가 재협상을 내걸며 관세율을 높일 경우 우리의 수출 손실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본격적으로 ‘한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트럼프의 칼끝을 방어하고 우리의 이익을 챙겨야 할 막중한 임무가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그대로 안긴 상황이다. 트럼프는 단순히 ‘주고받는’ 협상이 아니라, 파국으로 몰고 가는 협상의 ‘달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곧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적절한 보따리를 풀지 않는다면, 한·미 FTA 폐기라는 파국도 각오하겠다는 ‘미치광이’ 전략으로 나올 것이 분명해지는 이유다. 단순히 미국이 협정 폐기라는 최악의 상황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으로는 상대방에 대응할 수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워싱턴을 방문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가 쉽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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