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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트럼프는 몰랐던 FBI 국장 해임의 위험성

제임스 코미 국장의 해임 후폭풍, ‘제2 워터게이트 사건’ 지적도

김회권 기자 ㅣ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3(Sat)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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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9일, 큰 키의 사내는 직원과 함께 출장을 가기 위해 로스엔젤레스를 찾았다. 미팅 자리에서 TV를 등지고 참가자들과 한창 일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 갑자기 직원이 TV를 흘깃 보고선 눈이 동그래졌다. 뉴스에서는 속보로 ‘FBI 국장 해임’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국장이 해고됐다는 뉴스가 나오는데요.” 얘기를 들은 거구의 사내는 “거 재미있는 장난이네”라고 웃으며 등을 돌려 TV를 봤다. 그의 표정은 이내 굳어졌다.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측근이 말했다. “옆 사무실로 이동하시죠.” 큰 키를 일으켜 세운 사내는 미팅을 급히 정리하고 참가자들과 악수를 한 뒤 옆방으로 이동했다. 혹시 워싱턴에서 뉴스와 관련된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 전화기를 꺼내놓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의 얘기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임스 코미 FBI 국장 해임은 단순한 인사권 행사가 아닌, 미국 헌법을 무시한 처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사진=AP연합


뉴스에서 경질 소식이 흘러나올 때 쯤,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호원 중 하나가 백악관에서 7블록 떨어진 FBI 본부로 서한을 전달했다. 코미 국장의 해임을 통보하는 문서였다. 하지만 정작 이 문서를 받아야 할 코미 국장은 4300km 정도 떨어진 로스엔젤레스에 있었다. 2미터가 넘는, 미국 주요 인사 중 최장신으로 유명한 제임스 코미 국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나 문자가 아닌, TV의 뉴스를 보고 자신의 해임을 알게 됐다. 워싱턴에서 아무런 말이 없자 코미 국장은 급하게 전용기에 올라탔다. 전용기가 착륙할 워싱턴의 활주로에는 이미 방송사들이 진을 쳤고 그들의 카메라는 코미 국장의 동선을 쫓고 있었다. 

 

대통령이 누군가를 해임할 경우 그 속사정까지 낱낱이 알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만은 미국의 시선이 러시아로 향했다. 트럼프 정부의 ‘러시아 게이트’에 무언가 다급한 사정이 생겼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을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날의 해임에 언론은 ‘화요일 밤의 학살’이란 이름을 달았다. 이번 해임건은 트럼프 정부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확대시킬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았다. 

 

 

포인트 1. ‘토요일 밤의 학살’과 닮은 꼴

 

미국 역사상 최대 정치스캔들 중에서 첫손에 꼽히는 건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여기에는 ‘토요일 밤의 학살’이 등장한다. 닉슨은 자신을 향해 수사의 칼끝이 다가오자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을 통해 아치볼드 콕스 당시 특별검사가 명령한 자신의 소환장을 취소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콕스가 거부하자 1973년 10월20일 토요일 밤, 닉슨은 콕스의 해임을 리처드슨 법무장관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리처드슨은 요청을 거부하고 스스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법무차관 역시 닉슨의 명령을 거부하고 사임했다. 법무차관보까지 내려가서야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할 수 있었는데 해임 뒤 기자들 앞에 선 닉슨은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변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물론 학살의 끝은 닉슨의 하야로 마무리됐다. 이번 코미 국장의 해임에 ‘화요일 밤의 학살’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워터게이트의 흐름과 유사해서다.

 

워싱턴포스트의 필립 래커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직원들이 해고 사실을 TV 속보로 알게 된 뒤 머리가 없는 닭처럼 뛰고 있었다”고 말했다. FBI가 대혼돈에 빠질 정도로 이번 경질은 전례가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FBI는 1908년에 만들어졌다.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은 이 권력기관은 나름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해왔다. FBI 국장이 임기 도중 경질된 경우는 단 1번에 불과했다. 미국 전역에 영향을 줄만한 심각한 범죄를 수사하고 나름 선악을 판별하는 기관이기에 수사의 중립성을 위해 의회는 국장의 임기를 10년으로 정해두고 정권 교체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코미 국장은 FBI 역사에서 2번째로 중도 하차한 사례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해임 이유는 단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좋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 오너가 임원을 경질하듯 이번 해임을 인사권의 행사 정도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정반대다. 코미 국장은 트럼프 정권이 출범한 뒤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의 커넥션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트럼프 측에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결국 이번 해임이 수사 방해를 노린 것 아니냐는 야당의 비난은 진실과 무관하게 설득력을 얻는 상황이 됐다. 

 

MSNBC와 인터뷰를 가진 리처드 블루멘털(코네티컷) 민주당 상원의원은 “대통령은 큰 실수를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미국 헌법의 붕괴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고 정부로부터 독립해야 할 사정기관의 수장이 갑자기 경질된 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라는 해석이 워싱턴을 지배하고 있다. ‘헌법조차 트럼프는 가볍게 여긴다’는 인식만 확산된 꼴이다. 그 덕에 오히려 특별 검사 임명을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마치 워터게이트 때처럼 말이다. 

 

미국 민주당 의원들은 코미 국장의 해임 이후 트럼프의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위한 특별 검사 임명을 강하게 요구 중이다. ⓒ 사진=EPA연합

 

 

포인트 2. 묻으려던 ‘러시아 게이트’의 부활

 

러시아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5월10일, 코미 국장이 경질된 지얼마 뒤 워싱턴에서 끝난 미-러 외무장관 회담 자리에서 미국 CBS 기자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물었다. “코미 국장이 해임됐는데 미국-러시아 회담에 영향이 있나?” 라브로프 장관은 금시초문이란 표정으로 답했다. “해임? 거짓말이죠?”

 

이처럼 모두가 모르는 사이 FBI 국장이 해임됐다. 미국의 심야 코미디쇼는 이 사건을 단골 소재로 다루고 있다. 코미디언들은 “FBI 국장을 해고했다고? 그럼 누가 ‘러시아 게이트’를 수사하는 거지?”라며 익살스럽게 말하며 국민을 대신해 묻고 있다. 

 

3월20일 코미 국장은 하원 정보위원에 출석해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정부 관계에 대해 지난 해 7월부터 수사하고 있다”는 깜짝 발언을 했다. 의원들은 “왜 그걸 수사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코미 국장은 답했다. “미국이 세계에서 빛나고 있는 건 때로 혼란도 있지만 자유롭고 공정한 민주주의와 그것을 지지하는 선거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가 미국의 선거에 간섭하고 더럽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국장 ‘해임’을 위해 보낸 문서에는 주목되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내가 3번이나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알려준 것에는 감사하고 있지만, FBI를 잘 이끌 수 없다는 법무부의 판단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 

 

해임 통보를 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알려준 것’이라는 표현. 의외로 트럼프 대통령의 본심이 들킨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러시아 게이트’ 수사 대상에 자신이 포함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냐는 거다. ‘나는 아니라고 하더라’고 항변하는 이 대목이 주목받는 이유다. 게다가 FBI 수사의 주요 인물이 될 수 있는 사람이 FBI 국장에게 사실 여부를 묻고 답을 요구하는 것은 넌센스다. FBI 범죄수사에 관한 규정과도 맞지 않다고 한다. 코미 국장 측은 트럼프의 이런 이야기를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의혹을 문서에 등장시키면서 거꾸로 ‘러시아 게이트’를 독립 수사 기관에 맡겨야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는 건 역설적이다. 공화당 중진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찬성하는 등 여야에 걸쳐 동의하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코미 국장을 경질하면서 러시아 게이트 수사는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사건이 됐다.

 

 

포인트 3. ‘러시아 게이트’에 묻힌 트럼프의 정치

 

‘러시아 게이트’가 아니더라도 트럼프는 충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의기양양하게 백악관에 입성했지만 감세안이나 인프라 지출안, 무역협정 개선, 탈규제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나마 오바마케어(오바마 정부의 의료보험 제도)와 차별화를 꾀한 새로운 건강보험 개혁안, ‘트럼프케어’가 5월 들어 하원을 통과했다. 그의 주요 사회 공약 중 하나였다. 게다가 5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이탈리아 등을 순서대로 방문할 계획을 잡고 있었다. 대통령이 된 뒤 첫 해외 순방이었다. 이슬람교와 유대교, 그리고 천주교의 성지가 있는 국가를 찾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 특히 미국의 새 대통령이 취임 뒤 중동 국가를 첫 해외 방문국으로 정하는 건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트럼프는 사우디에서 “이슬람 동맹국과의 협력과 지원에서 새로운 초석을 구축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려고 했다.

 

이렇게 희망차게 그렸던 정국 운영의 청사진을 찢어버린 건 트럼프 자신이었다. 스스로 코미 국장을 해임하면서 앞선 그림들을 땅속에 묻어버렸다. 게다가 트럼프의 업적에 협력해야 할 공화당과의 관계도 틀어졌다. 공화당의 주요 포스트에서도 “이번 (해임)결정은 계산 실수다”라며 강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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