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은행의 ‘무덤’ 되는 한국
  • 이용우 시사저널e. 기자 (ywl@sisajournal-e.com)
  • 승인 2017.05.11 15:54
  • 호수 14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씨티은행·SC제일은행 등 소비자금융 사업 철수 사실상 국내 시중은행과 경쟁 포기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들의 철수가 이어지고 있다. 지속적인 경영 악화가 원인이다. 철수를 준비하는 외국계 은행들은 으레 지점을 줄이는 등 영업망을 축소했다.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한 리테일(소매금융) 영업망을 줄이는 건, 결국 국내 시중은행과 경쟁하지 않겠다는 걸 뜻한다. 갈수록 국내 시장에서 이익이 줄어드는 외국계 은행이 늘면서 철수는 눈에 띄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외국계 은행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손을 떼는 분야는 리테일이다. 지난해 영국계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즈와 미국 골드만삭스가 은행 영업에서 손을 떼며 국내를 떠났다. 스위스 대형 은행 유비에스(UBS)도 은행 부문 철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5년에는 영국 국영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가 일본과 싱가포르를 제외한 한국 등 7개국에서 모두 사업을 철수했다. 꾸준한 영업 하락으로 인한 경영난이 문제였다.

 

최근엔 스페인의 1·2위 은행이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스페인 내 자산 규모 1위 은행인 산탄데르은행(방코산탄데르에스에이)이 서울에 둔 사무소를 철수하기로 했다. 방코빌바오비즈카야아르젠타리아(BBVA)도 서울지점을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두 은행은 소매금융을 중심으로 유럽과 중남미 지역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선 생각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며 문을 닫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영업 실적 부진으로 최근 영업점을 대규모 축소하거나 일부 사업을 철수한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 © 시사저널 고성준

 

외국계 은행 순이익, 최근 하락세로 돌아서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외국계 금융회사의 국내 진·출입 및 경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43개 외국계 은행이 기록한 당기순이익은 6893억원이다. 전년(1조1312억원)보다 4419억원(39.1%) 줄었다. 외국계 은행 순이익은 지난 3년(2013~15)간 꾸준히 증가세를 이어왔지만 최근 들어 하락세로 돌아섰다. 2015년 순이익 증가율이 3.6%로 낮아지더니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바클레이즈·골드만삭스·UBS 등 일부 은행들의 철수와 저금리 영향으로 은행권 순이익이 감소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정희수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외은 지점의 이탈 원인과 시사점’에서 외국계 은행들이 소매금융을 접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최근 국내에 진출한 해외 은행들이 지점이나 사무소를 폐쇄하는 등 국내에서 철수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며 “앞서 2013년 HSBC는 소매금융 사업을 접고 10개 지점을 폐쇄했으며, 현지법인 형태인 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도 소비자금융 사업에서 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연구위원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씨티캐피탈을 매각하고 SC제일은행은 SC펀드서비스·SC저축은행·SC캐피탈 등을 매각했다. 또 주식파생상품거래 감축을 통해 국내 사업을 축소한 바 있다.

 

 

씨티은행, 영업점 126개 중 101개 폐점키로

 

국내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외국계 은행의 영업 포기가 내부 문화에서 온다고 설명한다. 한 국내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 임원을 만나보면 은행 문화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며 “외국계 은행은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움직일 수가 없다.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단기 실적을 올려야 하는 외국계 은행의 임원들이 임기 내에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은행 이익을 해친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보통 시중은행의 경우 행장이나 부행장이 당기에 부실을 털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충당금을 쌓는 등 실적 회복을 위한 장기 플랜에 힘쓰는 경우를 볼 수 있다”며 “외국계 은행은 이 점이 불가능하다. 본사에서 발령받아 온 외국인 임원 임기는 보통 2년이다. 자기 임기 내에 실적이 악화되면 본인 입지에 문제가 생긴다. 결국 건물을 매각하고 수수료를 올리는 등 한국 금융시장에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무리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국내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도 최근 이러한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씨티은행은 부유층만 공략하는 자산관리(WM) 부문에만 집중하는 등 리테일은 사실상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씨티은행은 3월13일 기존 영업망을 WM센터·WM지역센터·여신영업센터·여신지역센터(지방)·서비스영업점으로 구성된 대면 채널과 고객가치(집중)센터 중심의 비대면 채널로 이원화한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라 영업점 126개(출장소 4곳 포함) 중 무려 101개를 폐점하기로 했다. 남는 점포 25개는 서울 13개, 수도권 8개, 지방 4개(광주·대전·대구·부산)로 재편된다. 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영업점에서 25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까지 사실상 콜센터에 배치하면서 국내 영업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며 “소매금융을 대폭 축소하고 부자 고객 위주 WM과 기업금융을 강화하는 전략은 국내에서 통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씨티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121억원이다. 전년인 2015년 2257억원보다 136억원(6.02%) 줄었다. 영업이익도 줄었다. 지난해 씨티은행 영업이익은 27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3896억원)보다 30.68%나 줄었다. 반면 씨티은행은 지난해 실적 악화에도 이익의 절반 이상을 배당으로 지출했다. 지난해 주주에게 지급한 현금배당금 총액은 1145억원이다. 한국씨티은행 최대주주는 ‘씨티뱅크 오버시즈 인베스트먼트 코퍼레이션(COIC)’이다. 소유주식 지분율은 99.98%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씨티은행은 미국 본사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하영구 전 행장(현 은행연합회 회장) 때만 해도 직접 미국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하 전 행장은 미국 씨티은행 본사에서 열리는 보드미팅(Broad Meeting) 이사회 멤버였다. 하지만 박진회 현 행장은 이 멤버에 소속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모든 외국계 은행이 마찬가지 상황”이라며 “은행장과 외국인 임원의 위치가 동등하다. 행장이 주관을 가지고 은행 경영을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씨티은행 관계자는 “이번 계획은 고객의 거래 중 95% 이상이 비대면 채널에서 일어나는 등 변화하는 고객 요구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며 “전략 변화를 통해 영업망은 더 최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