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뒷전, “미술시장의 주인공은 화상”
  • 전준엽 화가·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4 09:05
  • 호수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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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문화적 가치보다 유명세로 매겨진 가격이 미술시장 지배해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화상(畵商)이다. 그들이 찾는 것은 훌륭한 그림이 아니다. 성공할 수 있을 만한 화가를 찾아 나선다. 그래서 천재가 아니라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자기 연출에 능한 거짓말쟁이를 찾는다. 안목 있고 교양이 풍부한 컬렉터를 시장에서 소외시키고 새로운 컬렉터 층으로 시장을 바꾸어버렸다. 이들이 시장으로 끌어들인 새로운 컬렉터는 돈은 많지만 그림에는 문외한인 사람들이다. 화상은 이들에게 ‘지금 사면 앞으로 몇 배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부추겨 작품을 판매한다. 마치 주식 팔 듯이.”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미술계를 비꼰 글이지만, 마치 지금 우리네 미술시장을 얘기하는 것 같다. 세잔의 친구이자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에밀 졸라가 묘사한 화상의 모습이다. 지금 국내 미술계는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위 논란과 이우환 화백 작품의 위작 논란이 한창이다. 진짜냐, 가짜냐 판단 하나로 수억원이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들과 대다수 평범한 미술작가들의 시선은 불편하다. 그림이 그림으로 보이지 않고 돈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2016년 6월30일 ‘위작 논란’에 휩싸인 이우환 화백이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네 미술시장, 돈을 추종한 미술이 중심

 

자본주의가 역사의 승리자가 된 오늘날, 돈의 힘은 신의 능력에 버금가고 있다. 예술의 가치 역시 돈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대중 예술이 이 시대 문화를 주도하게 된 것도 돈의 힘이다.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것은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고 앞서 나가는 예술가의 몫이다. 그러나 예술이 역사의 텃밭에 뿌리내리고, 한 시대를 주도하는 흐름으로 자리 잡도록 이끄는 힘은 역시 돈이다. 자본이 풍부한 곳에서 문화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얘기다.

 

다른 예술에 비해 재화(財貨)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큰 미술에서 자본의 힘은 언제나 흐름을 주도하는 가장 큰 변수였다. 따라서 돈을 추종한 미술은 타락해 스러졌지만, 지원을 슬기롭게 이용한 미술은 역사를 만들었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미술사를 세운 르네상스 미술이다. 300조원이 넘는 재산을 가졌던 메디치가(家)는 1420년부터 100년 넘게 미술을 지원해 본격적인 서양미술사의 기반을 다졌다. 돈의 힘이 바탕이 됐겠지만, 예술을 중심에 두었던 당대 인문학적 시대정신이 이룬 업적이다.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오늘날 우리네 미술시장은 돈을 추종한 미술이 중심에 있다. 에밀 졸라가 비판한 19세기 파리 미술계의 혼탁한 현실이 바로 현재 우리 미술시장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인문적 사고를 바탕 삼아 자라나야 하는 미술계에 물신적(物神的) 한탕주의가 성장동력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문화 창조의 핵심 추진력은 평가절하되고 시장 논리를 따르는 가치가 우위를 점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물신지상주의를 자양분으로 하는 미술시장은 비대해졌고, 그 중심축이 돼야 하는 미술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져 버렸다. 결국 정신의 영토를 넓히고 기름지게 하는 미술은 외면당하고, 돈이 되는 미술, 그래서 비싸야 하는 미술이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압축된 고도 경제 성장이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지고(至高)의 가치로 떠올랐고, 이를 위해 우리는 지난 20세기 중반부터 물적 생산에만 매달렸다. 옆을 돌아보거나 숨 쉴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 결과 우리는 경이적인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정신적으로 황폐한 자화상을 받아들여야 했다.

 

시장 논리가 미술계를 주도하게 된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1980년대 불어닥친 강남 개발은 아파트 붐을 불러왔다. 한국 경제력의 핵심 동력인 강남, 그곳 대형 아파트의 새로운 실내 공간은 인테리어 개념을 대중화시켰다. 비싼 그림은 차별화된 인테리어를 위한 훌륭한 장식물이었다. 이름 있는 작가의 고가 그림은 부를 과시할 수 있으며, 정신적 사치를 충족시켜주기도 했다. 그림에 대한 안목이 없는 사람도 유명 작가의 그림을 집에 걸어놓고 부와 문화적 위선으로 포장된 교양을 과시할 수 있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미술시장은 빠르게 살을 불려 나갔다. 미술에 식견이 없던 사람들도 폼 나게 돈 버는 방법으로 화랑업에 뛰어들었다. 시장 구조의 양 축인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모두가 물건의 질에 대한 안목이 없는데 좋은 그림이 유통될 수 있었을까. 그러니 미술의 문화적 가치보다 명성과 그 이름값으로 매겨진 가격이 거래의 가장 좋은 조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미술계의 오피니언 리더, 미술 언론, 미술 권력 집단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빈약한 컬렉터 층과 기형적 성장의 옥션 등도 원인

 

지난해 가짜 그림 유통 파문으로 더 유명해진 이우환 화백 그림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고 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위작이 나오는 것은 커다란 캔버스에 찍힌 손바닥만 한 점 하나가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과 맞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확실한 재테크가 보장되는 그림으로 인식돼 해마다 가격이 올랐던 것이다.

 

이 화백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20세기 서양 현대미술사에 능통한 지식과 동양 사상에 대한 조예를 두루 갖춰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나라 현존 작가 중 가장 비싼 그림이 됐을까. 대형 화랑의 프로모션과 미술 언론의 역할이 컸지만, 배경에는 국내 최대 컬렉터로 알려진 인물의 개인적 취향도 한몫을 했다.

 

미술을 재테크 수단으로 여기게 된 데는 안목이 빈약한 컬렉터 층이 시장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한 점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기형적으로 성장한 옥션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린 옥션은 비정상적으로 운영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술시장의 건강한 질서를 찾으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작품성이 뛰어난 작가를 시장으로 끌어들여 상식에 맞는 가격으로 거래될 수 있는 기회를, 신진작가 데뷔 무대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좋은 작가를 찾아내 홍보와 전시, 판매까지 추진해 진정한 작가 발굴 로드맵을 보여준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일요신문사 기획)나 신진작가의 본격적인 데뷔 프로그램을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은 ‘플래시 아트전’(일조원 갤러리 기획) 등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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