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통증 ‘CRPS’ 軍 환자들의 비명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3 13:32
  • 호수 14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상 후 방치돼 난치병 확진 판정…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죽음보다 무섭다는 난치병인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들 중에는 유독 군인들이 많다. 군대에서는 훈련, 격렬한 운동, 전투체육, 작업 등이 수반되다 보니 팔이나 다리에 강력한 충격으로 외상을 입기가 쉽다. 이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거나 치료시기를 놓쳐 CRPS 환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CRPS는 한창 꿈 많은 20대 초반인 군인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서울 구로구 대림동에 사는 홍인표씨(23)는 CRPS 환자다. 홍씨는 지난 2015년 6월 군에 입대했고, 그해 9월 경기도 이천의 7군단 공병여단에 배치됐다. 그는 자대 배치 후 실시한 유격훈련을 받다가 왼쪽 무릎 부상을 당했다.

 

홍씨는 이틀간 자대 의무천막에서 얼음팩 하나를 지급받고 진통제를 한 번 맞는 데 그쳤다. 그런데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고, 갈수록 더 심해졌다.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군의관은 ‘단순 염좌(삠, 접질림)’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홍씨는 수도병원에

 

© 일러스트오상민


홍씨는 한 달 반 만에 다시 수도병원에 입원했고 병명은 ‘상세 불명의 무릎 통증’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통증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아들의 상태가 더욱 심해지자 그냥 볼 수 없었던 부모는 민간 병원에서 제대로 된 진단을 받아보기로 했다.

 

홍씨의 어머니는 “수도병원에서는 마약성 진통제만 줄 뿐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비로 부담한다는 서약서를 쓰고 서울성모병원에 갔는데 CRPS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홍씨 측은 초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결국 난치병 환자가 된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군 병원 중 시설이 최고라는 수도병원에 CRPS를 진단할 수 있는 장비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홍씨는 이후 6개월 동안 마약성 진통제와 교감신경차단술 시술을 받았으나 역시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척수신경자극기’ 삽입 시술을 받았다. 배와 등 쪽을 절개해 척수신경자극기 배터리를 삽입하고, 척추 쪽과 그 옆쪽까지 절개해 전선을 연결했다. 이를 통해 미세한 전기 자극을 줘서 심각한 통증 신호를 적게 느끼도록 한 것이다. 홍씨는 이것을 평생 몸속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어딜 가나 기계장치를 신경 써야 하고, 리모컨과 충전기를 갖고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됐다.

 

홍씨는 의병전역을 미룰 수 없다는 담당 군의관의 말에 따라 의무심사를 받고 상병 때인 지난해 9월 전역했다. 군에서는 장애보상금으로 530만원을 주고 척수자극기 시술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으로 끝냈다. 현행법상 사병이 복무 중 부상 등을 입으면 전역 후 6개월까지만 군 병원에서 무상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 이후에는 모두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홍씨의 경우 지난 2월에 군 병원 무상치료가 끝나 모든 것을 자비로 부담하는 상황이다.

 

홍씨는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하루 네 번씩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고, 척수자극기를 온종일 틀어놓아야 한다. 각종 부작용과 합병증으로 이중 삼중 고통을 받고 있다. CRPS가 오른쪽 발로 전이돼 일어서는 것도 힘들어 소변통에 소변을 보고 있다. 또 약물 부작용으로 체중이 40kg이나 불어났고, 우울증도 심해졌다. 사실상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게 됐다.

 

가정도 풍비박산 났다. 홍씨의 어머니는 아들 병간호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아버지는 치료비를 벌기 위해 새벽 3시에 출근해 일을 하고, 동생(21)은 대학 가는 것을 포기한 상태다. 지금까지 들어간 치료비만 4000만원에 이른다.

 

홍인표씨가 몸에 척수신경자극기 시술을 받은 후 고통을 억제하고 있다. © 홍인표 가족 제공

국가유공자 지정 ‘하늘의 별 따기’

 

유일한 희망은 국가유공자로 지정받는 방법밖에는 없다. 홍씨의 경우 지난해 의병제대 후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으나 탈락했다. 이에 따라 홍씨 부모는 1000만원을 들여 별도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국가를 상대로 ‘국가유공자 비해당 취소처분’ 행정심판을 진행 중이다.

 

보훈처가 국가유공자 대신 보훈대상자로 지정받으려면 신체검사를 받으라고 해서 받았지만, 이것도 확실하지 않다. 보훈대상자의 경우에는 국가유공자의 70% 선에서 보상금이 지급된다. 최하 등급인 7급을 받으면 부양가족수당 지급이 안 되고, 자녀는 취업지원과 진료비 감면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홍씨의 어머니는 “국가유공자가 아닌 보훈대상자의 경우 CRPS 환자는 보통 5~7급을 주는데, 이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그나마 급수를 받지 못하면 비보험 빼고 진료만 가능하며 다른 혜택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입대해서 훈련 중 부상을 당했고, 군이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난치병이 됐는데, 국가는 책임지지 않고 나 몰라라 버려두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육진훤·진솔 형제도 군 복무 중 당한 부상을 방치해 CRPS 환자가 됐다. 형인 진훤씨는 2014년 11월, 동생 진솔씨는 4개월 후인 지난해 3월 군에 입대했다. 진훤씨는 상병 때 5분대기 비상근무 중에 부상을 입었고, 진솔씨는 논산훈련소에서 행군훈련을 하다 돌부리에 넘어지면서 코뼈가 골절되고 무릎 부상을 입었다.

 

형 진훤씨는 무릎에 금이 갈 정도였지만, 군 의료진은 파스 한 장 붙여준 것이 전부였다. 부상 부위가 점점 더 악화됐지만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진통제만 투여했다. 동생 진솔씨도 부상을 당한 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한동안 방치됐다. 그러다가 민간 병원 외래진료를 통해 CRPS 판정을 받았다. 전문의들은 “군이 약을 빨리 쓰고 신경차단 치료를 했으면 CRPS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간단하게 치료해서 끝낼 수 있는 것을 방치해서 난치병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이후연씨도 군에서 CRPS 환자가 됐다. 이씨는 2005년 1월 군에 입대했고, 그해 6월 연대 전술훈련을 받다가 그만 3m 높이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추락했다. 처음에는 전신 타박상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통증이 가라앉기는커녕 날로 심해졌고, 결국 군 병원에서 CRPS 진단을 받았다.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었지만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현재 국내에는 약 1만5000명에서 2만명 정도의 CRPS 환자가 있다. CRPS는 슬쩍 스치기만 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옷이나 양말을 걸칠 수도 신을 수도 없다. 바람만 불어도 극심한 통증에 시달릴 정도다. CRPS 환자들은 칼로 살을 베는 듯하고, 살가죽이 찢기는 듯한 느낌, 몸이 불에 타는 것 같은 고통이라고 말한다.

 

 

이중 삼중 고통 겪는 환자들

 

CRPS 환자들은 발이 벌겋게 부어오르거나 피부 괴사가 오는 등 부작용과 합병증으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 홍인표 가족 제공
CRPS 환자의 고통은 24시간 지속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현대의학으로는 완치가 어렵고, 치료약도 치료방법도 없다. 마약류로 잠시 고통을 멈춰주는 방법과 고통을 완화시켜주기 위해 몸에 척수신경자극기를 설치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도 임시방편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CRPS 환자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직장생활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고통’과 ‘생활고’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매사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증에 시달려야 한다. 자신의 형편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CRPS 환자들이 적지 않다.

 

대한통증학회가 CRPS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환자의 44.2%에서 우울증이 동반됐고, 환자의 40%는 통증으로 인해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20%의 환자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CRPS 환자들은 통증만 계속되는 게 아니다. 부작용과 합병증에 시달려야 하는 등 평생 ‘고통의 감옥’에 갇혀 살아야만 한다.

 

고통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상(公傷)으로 인정받거나 국가유공자로 지정받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CRPS 환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할 수 있다. CT나 MRI 같은 첨단 기기로도 통증의 원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보상, 배상, 보험금 청구를 위한 객관적 평가를 받기도 어렵다. 심지어는 ‘꾀병’으로 인식될 정도다. 때문에 홍인표씨의 경우처럼 보훈처에 공상이나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면 ‘비해당’ 판정을 받기 일쑤다. 한번 ‘비해당’ 판정을 받으면 이를 뒤집기는 더 어렵다.

 

설사 가까스로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았다고 해도 상이등급 심사에서 등급이 낮아질 수 있다. 이후연씨의 경우 보훈병원 검사에서 정상 수치가 나왔다고 해서 상이등급이 두 단계나 떨어지는 불이익을 당했다. 2011년 국가보훈처는 ‘주요 질병별 국가유공자 요건의 기준과 범위’를 좀 더 구체화한 ‘국가유공자 예우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여기에는 CRPS 환자도 공무상 질병에 포함시켰지만, 여전히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지나가는 것만큼 어렵다.

 

군인 CRPS 환자와 가족들은 “젊은이들을 방치하다 버린다면 누가 국가에 충성을 하겠는가.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할 이들을 나 몰라라 한다면 아들을 군에 보내고 싶은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국가는 내 아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마라” 

홍인표씨 어머니 강주영씨 인터뷰 

 

© 홍인표 가족 제공

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같은 또래의 다른 청년들처럼 사회생활을 하기는 힘들다. 간단한 보행조차도 힘들고 마약진통제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을 척수자극기로 달래며 힘겹게 살고 있다. 거의 방 안에서 누워서 지내고 있다.

 

 

국가유공자 지정에서 탈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 아들은 군 생활 중 일과시간 이후에 개인적으로 다친 게 아니다. 유격훈련 PT체조 중 부상을 입었다. 그럼 당연히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보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보훈처는 우리 가족의 고통 따위는 관심이 없다.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국가유공자나 보훈대상자로 지정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가족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군에서 평생 장애인이 된 것도 서럽고 억울한데 알아서 살라는 것이니 정말 너무한 처사다. 보훈대상만 되고 급수를 못 받으면 치료비 부담과 생활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답답하다. 이렇게 되면 우리 가족에게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젊은 아들들을 ‘병역의무’라는 명분으로 불렀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군인들이 부상당하면 방치하다 병을 키우지 말고, 바로바로 병원에 보내줘야 한다. 다친 병사에 대해서는 보훈심사도 공정하게 해 주길 바란다. 국가는 내 아들과 우리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지 마라.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