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커피가 인재를 만든다
  • 구대회 커피테이너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3 10:54
  • 호수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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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커피의 대명사 일본 ‘시루카페’, 한국서도 통할까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이 900원. 저가(低價) 열풍에 힘입어 커피 값이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렇게 팔아 뭐가 남을까 걱정이 앞선다는 사람과 그동안 커피 가격에 거품이 많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혼재하고 있다. 카페를 본업으로 삼고 있는 입장에서 설명하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900원에 팔면 부가세 82원 제외하고 순수한 매출은 818원이 된다. 여기에 임차료·인건비·전기세·수도세·원두·테이크아웃 컵과 리드, 그리고 홀더·에스프레소 머신 등 카페 장비의 감가상각비 등을 빼면 남는 것이 없다. 오히려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만약 900원짜리 커피만 판다면, 그 매장은 몇 달 못 가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일본 명문대 대학생 대상 커피 공짜 서비스

 

그런데 일본에서는 모든 종류의 커피는 물론 스낵과 티를 무료로 주는 공짜 카페가 생겼다고 한다. 시루카페(Shirucafé). 시루는 ‘알다’는 뜻의 일본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지식카페’ 정도가 되겠다. 이 카페의 운영 주체는 ‘엔리션(ENRISSION)’이라는 일본의 신생 기업이다. 안타깝게도 아무나 고객이 될 수는 없고, 일본의 상위 11개(도쿄대·교토대·와세다대 등) 대학생만 이 카페를 이용할 수 있다. 카페 위치도 해당 학교 앞에 있어서 학생증을 제시하고 음료를 주문할 수 있다고 한다. 테이크아웃뿐 아니라 널찍한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카페 안에서 공부를 하거나 팀 프로젝트 모임 등을 할 수 있다. 노트북을 이용할 수 있는 전원이 카페 곳곳에 있고,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는 시설 또한 갖춰져 있어 여느 카페 못지않은 쾌적한 공간과 편리한 시설을 자랑한다.

 

인도공과대(IIT) 하이데라버드 캠퍼스에 들어선 시루카페 © 시루카페 홈페이지 캡처

대학 내 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조차 시중보다 저렴하긴 해도 무료가 아닌데, 어떻게 시루카페는 공짜로 커피를 제공할 수 있을까? 답은 기업의 후원에 있다. 소프트뱅크·닛케이·마이크로소프트 등 약 78개 일본 국내외 굴지의 기업들이 스폰서로 있다. 일본에만 11개 매장이 있는데, 평균적으로 한 매장당 연간 30개 기업이 300만 엔씩 후원하고 있다. 한화로 환산하면 후원만으로 매년 약 9억원의 매출이 발생하는 셈이다. 초기 카페 세팅비·임차료·인건비·재료비 등을 감안해도 꽤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공익재단도 아닌 일개 회사에 이름도 쟁쟁한 기업들이 앞다퉈 후원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시루카페가 후원기업들에 제공하는 세 가지 이점 때문이다. 첫째, 이 카페는 테이크아웃 컵에 후원기업의 로고를 넣어 홍보해 준다. 둘째, 매장 내에서 후원기업에 대한 정보를 보여준다. 셋째, 대학과 함께 후원기업의 채용설명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일본의 명문대 학생들에게 기존 홍보비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지출하면서 다양한 채널로 기업을 알리고 현장에서 우수한 직원을 채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루카페를 후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프트뱅크가 11개 대학의 11개 매장 모두를 후원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약 3억30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것으로 11개 대학에서 시루카페와 함께 기업설명회를 개최하고, 매일 수백 명의 학생들에 후원기업의 로고가 노출된다면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것이다. 더불어 학생들은 재학 중 공짜 커피를 마시게 해 준 기업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보이지 않는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하겠다.

 

지난해 4월에는 해외 첫 지점을 인도공과대(IIT) 하이데라버드 캠퍼스에 열었다. 2013년 시작 이래 3년 만에 해외에서도 공짜 카페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일본에서와는 달리 대학 내에 카페를 열었다. 예상대로 인도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인도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차이라테를 메뉴에 넣어 현지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 파견한 학생들을 인턴십으로 채용함으로써 경비를 절감하고, 일본 특유의 호스피탈리티(환대·응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곧 우리나라에도 공짜 커피, ‘시루카페’가 상륙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카페 운영은 기업 홍보비로 충당

 

시루카페가 한국에 온다면 어느 대학에 1호점을 낼까? 필자라면, 대전과 경북 포항에 위치한 카이스트나 포스텍 인근에 1호점을 낼 것이다. 서울은 임차료가 비쌀 뿐 아니라 직원의 거주비 또한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지방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더욱이 카이스트와 포스텍은 국내 이공계 수재들이 모인 곳이기에 기업의 후원을 받기에 더없이 좋을 것이다. 시루카페가 인근 커피 상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시루카페의 등장이 주변 카페들에게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시루카페가 핵심 상권에서 벗어난 건물의 2층이나 3층에 위치한다면, 더욱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기존 카페 상권의 전체 매출이 줄기보다는 시루카페의 추가적인 매출만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시루카페는 기업의 후원으로 운영되며 제공되는 모든 음료, 스낵이 공짜다. © 시루카페 홈페이지 캡처

다만 한국에서의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일본인만을 직원으로 쓴다는 원칙 때문에 의사소통의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일본에 대한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반일 정서가 큰 장애가 될 것이다. 국내 기업이 일본 기업을 후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 아마 선뜻 후원에 나설 국내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의 후원을 받아야 한다는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시루카페가 국내에 상륙한다면, 국내 대표적 명문대 서너 군데 정도에 터를 잡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판 시루카페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전국의 주요 명문대 근처에 위치한 기존의 카페에서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필자 역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반 손님에게는 지금처럼 돈을 받고 음료를 제공하고, 해당 대학 학생에게는 후원을 받은 기업 로고가 새겨진 테이크아웃 컵에 공짜 커피를 제공하면 된다. 기존 카페를 활용하기 때문에 주변 상권의 반발도 있을 수 없다. 카페당 후원 금액은 매달 카페를 이용한 해당 대학생의 음료 잔 수만큼 사후적으로 지급되고, 이용자의 빅데이터는 후원 회사에 제공되는 등 얼마든지 우리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카페 수익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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