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항공사 승무원 취준생 울리는 얄팍한 상술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2 15:58
  • 호수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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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의 외항사 승무원 채용대행 학원 ‘채용장사’ 논란 보도 후폭풍

  

시사저널이 “항공사 승무원 채용대행은 사실상 채용장사다” 기사를 보도한 후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시사저널은 4월25일 인터넷판을 통해 항공사 승무원학원의 ‘채용장사’ 논란에 대해 단독 보도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ㄱ승무원학원은 3월말과 4월초에 걸쳐 외국계 ㄴ항공사 채용대행을 맡았다. 채용대행이란 외국계 항공사에 입사할 한국인 직원의 선발을 대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채용대행사가 서류전형과 1차 면접 합격자까지 뽑으면, 항공사에서 국내로 직원을 파견해 최종면접을 실시한 뒤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는 과정을 거친다.

 

ㄱ학원은 ‘ㄴ항공사 입사대비 특별반’을 개설하고 수강생을 모았다. 수강생들은 학원 측의 “80%가량 합격시키려 한다”는 말만 믿고 학원에 등록했다. ㄱ학원의 특별반은 1인당 15시간 수업에 60만원의 수강료를 받았다. 기존 학원생에게는 30만원을 받았다. 수강생 중 한 명은 “외항사의 경우에는 최종면접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채용대행 학원에 등록한다. 수강료는 (면접) 기회를 얻는 셈 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특별반에는 150여 명의 학생이 등록했다.

 

ㄱ학원은 4월14~16일까지 1차 면접을 치른 후 4월17일 저녁에 합격자를 발표했다. 합격 결과는 학원 측 설명과 달랐다. 총 200명의 1차 면접 통과자 중 학원생은 절반이 되지 않았으며, 특별반 수강생 중에서는 50여 명만이 합격했다.

 

시중의 승무원학원들이 취준생들의 간절한 마음을 교묘히 이용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pixabay

이정미 의원, 승무원학원 부당 실태 고발

 

탈락한 수강생들은 4월18일과 20일 학원을 찾아가 항의하고 수강료 환불을 요구했다. 학원 측은 “우리는 (채용) 약속을 한 적이 없다”며 환불 요구에 불응했다. 이 학원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탈락한 학생들을 선동한 친구를 찾아 법적 조치를 취하려 하고 있다”며 “(탈락자들은) 이곳저곳에서 여러 번 떨어진 학생들이다. 능력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의 보도가 나간 후 많은 승무원 지망생들은 “언젠가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승무원 지망생들의 입사를 돕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승무원학원계가 사실상 ‘채용장사’로 변질됐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 현재도 승무원 지망생들의 간절함을 이용하는 학원 측의 횡포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4월2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승무원학원의 부당한 실태를 공개 고발했다. 이 의원은 회견에서 “청년들은 취업하기 어려워 한 번 울고, 속아주면서 두 번 울고, 사회의 농락에 세 번 울고 있다”며 “외항사에 면접서류라도 제출하려면 해당 학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 상황을 악용하는 학원들은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승무원학원들에 전면 세무조사를 제기해 적극 대처할 것”이라며 “교육청은 교육과정 및 수강비 신고 여부, 해당 학원에 대한 민원신고에 대한 즉각적인 지도점검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용 사기’ 의혹 추가 제보 잇따라

 

본지의 첫 보도가 나간 후 다른 승무원학원에 대한 새로운 의혹들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ㄷ승무원학원은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 ㄹ항공의 특별채용을 대행했다. 지원 자격은 ㄷ학원의 ‘정회원’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에 지망생들은 최대 180만원에 달하는 돈을 내고 이 학원에 등록했다. 한 수강생은 “외국 항공사 준비반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등록한 학원생 대부분이 ㄹ항공 채용대행을 보고 등록했다”고 말했다.

 

ㄷ학원은 3월까지 서류면접과 1차 면접을 진행했다. 여기서 통과한 지원자는 약 100명이다. 하지만 다음 전형은 중단됐다. 학원 측은 “사드 문제로 인해 최종면접이 연기됐다. 4월초에 (ㄹ항공 측과)다시 미팅한 후 일정을 정할 것”이라고 지원자들에게 설명했다.

 

지원자들은 학원 측 설명만 믿고 기다렸지만 4월초가 지났음에도 최종면접 소식은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지원자가 ㄹ항공 측에 직접 이메일을 통해 문의하자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2017년에 한국에서 어떤 채용도 진행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어 “ㄹ항공은 직접 채용하며, 어떤 에이전시나 기관에도 채용을 맡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재차 ㄹ항공사 인사담당자에게 이메일로 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이번에는 회신이 없었다. ㄷ학원의 한 수강생은 “학원 측에서 ‘일정을 잡으려 한다’고만 설명하고 더 이상 채용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는데, 사실상 있지도 않은 채용을 진행한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학원 측 관계자는 “ㄹ항공의 지분을 가진 주주 회사와 진행한 특별채용이며, 모든 근거가 있다”며 “만약(채용이)취소되기라도 한다면 우리도 피해자”라고 하소연했다.

 

4월18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ㄱ학원에 탈락한 수강생들이 항의 방문, 학원 관계자와 면담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채용이 1년 가까이 미뤄진 사례도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ㅁ학원은 지난해 6월 중국 ㅂ항공사의 채용대행을 맡으며 특별반을 운영해 1인당 80만원의 수강료를 받았다. 1차 면접까지는 진행됐지만 2차 면접부터는 채용 절차가 중단됐다. 심지어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서울에 있는 학원은 문을 닫았다. 지원자들은 2차 면접 소식을 기다렸지만 지금껏 채용 진행 소식은 없다. 학원 측이 입장을 내놓은 것은 4월26일 국회에서의 이정미 의원 기자회견 이후였다. ㅁ학원 원장은 “사드 문제로 채용이 늦어지는 것이며, 채용이 진행되는 대로 알려주겠다”고 밝혔다. ㅁ학원의 한 수강생은 “시간과 돈을 투입했는데, 돌아온 것은 속았다는 느낌뿐”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사정 당국 관계자는 “몇몇 학원의 경우에는 ‘취업 사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많은 이들은 “이런 문제는 학원 몇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일들이 승무원학원 업계에 만연한 문제라는 얘기다. 전직 항공사 승무원 김아무개씨(여·31)는 “승무원학원계의 ‘채용대행’ 문제는 비단 한두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승무원 지망생들이 학원의 꼬임에 넘어가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또 다른 전직 승무원 오아무개씨는 “워낙 드러나지 않은 업계라 보이지 않았을 뿐 부조리가 만연해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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