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상 ‘추행죄’라 쓰고, ‘차별’이라 읽는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7.04.2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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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용 기자의 차별을 말하다] 군 당국, 동성애자 처벌 논란

 

“나도 잡아가라.”

 

4월21일, 국방부 앞에 수백명의 시민이 모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최근 “나도 잡아가라”는 대학가의 대자보도 붙었습니다. 서강대학교에 걸린 한 대자보는 “나도 잡아가라. 나는 나라를 지키는 동성애자다”라고 썼습니다. 또 다른 대자보는 “나도 잡아가라. 나는 남자랑 연애랑 섹스를 즐기는 의경(의무경찰) 게이다”라고 적었습니다. 

 

대자보와 많은 시민들이 “나도 잡아가라”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최근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하고 처벌하려는 군 당국 수사에 항의하기 위해서입니다. 4월13일과 17일 군 인권센터는 육군에서 ‘게이 색출․처벌 작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군 인권센터의 발표를 보면, ‘게이 색출․처벌 작전’의 경과는 이랬습니다. 육군 중앙수사단(중수단)은 올해 초 병사 한명이 간부 한명과 성관계를 맺는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수단은 수사 대상 피의자에게 사건과 관계없는 다른 동성애자 군인의 신상을 따져 물었습니다. 중수단은 이렇게 강압적 방식으로 성소수자 군인 명단을 확보해 수사에 나섰고, A대위(SNS 게시 사건과 무관)를 구속하기도 했습니다. 군 인권센터는 육군 법무실 고등검찰부가 3월23일 일선부대에 하달한 ‘군형법상 추행죄 지침’을 공개하며 이 수사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이뤄졌다고 주장했습니다.

 

4월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군내 성소수자 인권침해 및 처벌 반대를 위한 집회가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군 당국, ‘성소수자’ 이유로 색출 작전 논란

 

이 뿐 아닙니다. 폭로와 함께 공개된 녹음 파일과 문자내용을 보면, 중수단은 SNS 사건과 무관한 동성애자 색출 작업을 하며 불법 수사를 자행했습니다. 중수단 수사관은 입건한 G중사(SNS 게시 사건과 무관)에게 지시해 ‘게이 데이팅 앱(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 군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성관계를 제의 하도록 하는 등 ‘함정 수사’를 했습니다. 영장 없이 동성애 입건자의 휴대폰․차량을 압수수색 하는가 하면, 입건 당사자에게 “너희 부모가 알면 어떻게 되겠냐?”는 등 당사자들에게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 협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수사 대상자에게는 “굳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자기 방어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법으로 수사관이 개인의 방어권 행사를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육군은 장 총장의 수사지시와 불법 수사 등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군대 내의 ‘게이 색출․처벌’논란의 배경에는 법 조항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로 군형법상 추행죄인 제92조의 6항입니다. 이 조항은 군인․군무원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합니다. 

 

법 조항 이름이 ‘군형법상 추행죄’인 만큼, 이 조항은 군대 내 성범죄를 처벌하자는 얘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법이 금지한 ‘항문성교’가 ‘강제에 의한 행위’라는 전제가 없습니다. 게다가 군 형법은 제92조6과는 별도로 성범죄 처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군형법 제15장 강간과 추행의 죄) 다시 말해 이 조항은 폭행․협박 없이도 동성 간 합의에 의한 성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사실상 동성애자를 표적으로 삼는 조항입니다. 군은 ‘동성애자 수사’를 할 때 항상 이 조항을 강조합니다. 

 

 

유엔·인권위·​학계서 ‘폐지 권고’한 군형법상 추행죄

 

군형법상 추행죄는 비인권적이며 위헌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선 이 법은 성소수자 편견과 혐오를 조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성애자와 달리 동성애자가 군대에 가면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되는 셈인 탓입니다. 이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개인을 차별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엔 국가별보편적정례인권검토(UPR)도 폐지권고를 해왔습니다. 

 

“동성애자의 군 입대를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군내 동성애 행위를 형사처벌 하는 것은 국가의 군대 병영생활 관리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며, 성적 소수자의 헌법상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를 해태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도중진 충남대학교 교수,《군형법상 추행죄에 관한 소고》 -

군 인권센터는 4월17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 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럼 이 법 조항의 존재를 떠받치는 논리는 무엇일까요. 바로 군 생활의 ‘특수성’과 ‘전투력 보존’을 끌어오는 주장입니다. 이 법을 옹호하는 이들은 군대 내 공동생활의 특성상 성소수자를 차별적으로 관리 하지 않으면 ‘군기문란’이 발생하고, 이는 ‘전투력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헌법재판소가 세 차례(2002·2011·2016년)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린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도 반론이 제기됩니다. 군형법상 추행죄를 적용할 때, ‘군기문란’과 ‘전투력 상실’을 고려해서 처벌하지는 않는다는 반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이 조항(군 형법상 추행죄)이 적용된 사례를 살펴보면, 합의하의 동성 간 성행위로 인해 부대 업무에 차질이 생겼거나 명령 체계에 문제가 생겼거나 부대의 기강이 약화되고 전투력 보존의 위해가 발생하였는지의 여부는 판단하지 않는다. 오로지 동성 간 성행위 자체만을 문제 삼아 동성 간 성행위 자체에 대해 비난과 혐오만이 표출된다. 폭력적이지 않고 일방적이지도 않은 동성 간 성행위를 ‘비정상’이라고 바라보는 차별적인 관점이 문제다.”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10문10답》-

 

해외서는 오래 전에 폐기 처리된 ‘군 동성애 처벌법’

 

더구나 해외 사례를 보면 오히려 군대 내 동성애자 차별 금지 정책을 시행하는 곳도 다수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세계일보 기고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군대 내 동성애 차별금지정책을 채택한 영국·캐나다·호주·이스라엘 등에서의 연구들은 동성애자의 존재로 인해 군 작전 수행이나 기강, 사기에 부정적인 영향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대다수 군인이 동성애자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이나 적대감은 동성애자의 권리제한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세계 국방력 상위국가인 일본과 미국 사례도 주목할 만합니다. 일본에서는 1872년 ‘남성 간 성행위’를 비하하는 ‘계간(鷄姦)’을 처벌하도록 규정했다가 인권 문제로 1881년 폐지했습니다. 미국은 1920년 미 전시법을 통해 ‘동성애 성행위’를 처벌 조항으로 뒀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채 유지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3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이른바 이 조항을 위법이라고 최종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미군의 경우, 한국 군 당국이 동성애자를 색출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성소수자 군인 입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성소수자 군인들에게 성적지향을 말하지도 말고, 타인도 이들에게 성적지향을 묻지도 말라는 원칙이 적용됐습니다. 이른 바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이하 DADT)’는 조항입니다. 이마저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애 입대자들의 ‘커밍아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DADT’조항을 폐기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원칙을 폐기하며 이런 연설을 했습니다. 

 

“오늘부로, 우리 군대는 더 이상 게이․레즈비언 장병들의 훌륭한 기술력과 전투경험을 잃지 않게 됐다. …(중략) 나는 이 조항을 폐지하는 데 서명한 것이 자랑스럽다. 이 조항 폐기가 국가안보를 강화하고, 군사 준비태세를 증대시키며, 우리에게 공정과 평등의 원칙을 가져다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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